[Review] 의심하라, 질문하라, 사고하라. - 이언의 철학 여행 [도서]

글 입력 2021.01.06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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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줄곧 생각을 메모해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들이 어지럽히는 게 답답해서, 정리를 위해 시각화하던 게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어느 날 펼쳐본 메모장에는 수없이 많은 물음표들이 있었다.

 

물음표는 또 다른 물음표를 낳는다.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의문을 불러오는데, 신기하게도 마지막 질문은 보통 비슷했다. 어떤 질문으로 시작하든 끝에서 마주하는 건 조금 더 본질적인, 그러니까 조금 더 솔직한 무언가였다.

 

질문 하나에 돌아올 수 있는 답은 무한하다. 질문은 하나의 열쇠 같아서, 볼 수 없던 세계로 안내한다. 내 메모장에는 답이 쓰여 있지 않았지만, 마지막 질문은 정답보다 더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표면적인 것들로는 충족할 수 없던 진정으로 묻고 싶던 무언가. 아마 그 마지막 질문에 닿기 위해 계속해 물었는지도.

  

 

"이언, 너는 모르고 있구나. 너의 여행은 방금 시작됐어. 이제 종종 대답을 찾기보다는 질문을 하게 될 거야. 그리고 의문이 너의 호기심을 꺾어 놓지 않는 한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게 될 거야."

 

- 2장 '자아, 이성, 정신' (p.111)

 

 

<이언의 철학 여행>을 읽으며, '이언'을 따라 여행했다. 순식간에 13장을 지나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어린 시절의 메모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언의 철학 여행>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들은 '이언'을 향한 것이기도 함과 동시게 독자인 나에게 던져진 질문들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다시 보고, 의심하고, 사고하는 것. <이언의 철학 여행>은 여러 주제를 놓고 그 과정을 반복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늘 그랬듯 당연히" 그랬던 것들에 의문을 던지고, 믿어오던 것들에 균열을 만든다. 그리고 그 사이로 답을 쏟아내 보게 한다. 균열 속 펼쳐지는 낯선 세계에서, 철학이 피어난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실제라고 믿을 수 있을까?'부터 '꼭 올바르게 살아야 할까?'까지, 소설 속 노인은 '이언'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사라진다. '이언'이 기존에 갖고 있던 세계를 깨부수는 작업이다. 그리고 아침이 오면 '이언'은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깨어진 세계 속 또 다른 세계를 엿본다.

 

그렇게 13장에 이르기까지 계속해 기존의 틀을 부수는 작업을 하는데, 그렇다고 새로운 세계를 재건해주지는 않는다. 깨 부서진 세계의 재건은 온전히 '이언' 그리고 독자의 몫이다.

 

*

 

철학은 사고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사고하는 방법이라니,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은 후 그 말을 이해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최대한 다각도에서 바라보는 법을 훈련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주석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노인과 '이언', 그리고 그의 부모님과의 대화가 가진 확장력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수많은 철학자를 소환했으며, 대단해 보이는 이론들을 풀어냈다. 노인이 던진 질문에 조금 더 밀도 있는 답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인생에도 너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

 

- 5장 '신' (p.241)

 

 

조각조각 쌓인 답변들이 모이면, 새로운 세계를 재건할 건축 자재들이 된다. <이언의 철학 여행>은 그 자재들을 모아주고, 삶의 의미를 담아 새로운 세계를 재건할 것을 당부한다. 의미는 부여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임을 증명하고,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지 되묻는다.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궁극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향한다. 눈앞의 것을 의심하는 것에서 시작해, 과학과 종교를 넘어 다시 철학으로 오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태도를 논한다. 마치 나의 메모장이 궁극에 묻고 싶던 것이 늘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던 것처럼, 결국 '이언'은 사고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

 

애써서 해야 하는 깊은 생각들을 하는 뇌 근육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무기력증과 함께 사고에 소홀해지다 보니 자꾸 그 근육이 죽어가는 게 느껴진다. 운동이 전혀 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코로나19 탓을 해보지만, 사실상 내가 게을러진 게 맞기에 자극이 필요하던 찰나였다.

 

<이언의 철학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꼭 필요하던 책이었다. 소설을 따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하는 근육을 움직이고 있다. 오랜만에 운동한 것처럼 처음엔 조금 뻐근했지만, 갈수록 스트레칭이 되는 것을 느꼈다. 대상을 다각도로 보는 것을 그간 많이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나만의 의미부여 과정을 "의미의 사칙연산"이라 부르며 나름의 철학적 사고를 해왔는데, 이 책을 읽고 그 과정 역시 재고할 수 있었다. 등장인물 누구도 내게 정답을 말해주진 않지만, 덕분에 나는 답을 하나둘 찾아가고 있다. 묻지 못했던 질문들을 다시 꺼내어보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운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언젠가 다시금 자극이 필요할 때 꺼내 보아야겠다. 매번 새로운 자극이 되어줄 것 같다.

 

 


 

 

이언의 철학 여행

- 세상의 모든 사유를 경험하다 -

 

 

지은이

잭 보언

 

옮긴이 : 하정임

 

출판사 : 도서출판 다른

 

분야

교양철학

 

규격

147*215mm

양장

 

쪽 수 : 576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28,000원

 

ISBN

979-11-5633-304-3 (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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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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