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정령(陈情令) [드라마]

글 입력 2021.01.01 11:4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4개 국어를 하겠다며 소리만 지르던 때가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중국어 전공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의무감이 된 순간 내 지적 호기심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빠졌다. 강제적인 학습이 계속되자 내가 먼저 지쳐버렸다.

 

결국 고등학생 시절 중국어 수업은 내게 낮잠 시간이었고 애초에 대입과는 관련 없을 거라 생각해 완전히 포기했었다. 오히려 전공도 아닌 일본어 회화가 훨씬 능숙할 정도였으니. 당시에는 차라리 일본어 전공으로 고등학교를 다닌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은 하루아침에 뒤집힌다고 했던가. 나는 올해 초 한 중국 드라마를 보고 말았다. 단순히 주위 친구들이 추천했고, 원작 소설을 꽤나 흥미롭게 읽었기도 하다. 중국어 회화 능력이나 키우고, 현재 인기 있는 중국 드라마를 보는 것도 전공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1화를 재생하고 나서 정신차려보니 무려 50부작 드라마를 삼일 만에 끝내버렸다. ‘꽤 재밌네.’라고 생각했던 나는 어느새 중국어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었다.

 

 

 

드라마, 진정령


 

[크기변환]love.jpg

 

 

“남씨, 온씨, 금씨, 강씨, 섭씨 다섯 가문이 천하를 지배하던 시기. 그중 온씨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음모를 보이자, 그를 눈치챈 강씨 가문의 위무선과 남씨 가문의 남망기는 이를 막기 위해 힘을 합치게 된다.”

 

 

<진정령>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로 2019년 6월에 방영한 무협 장르의 웹드라마이다.

 

주인공 위무선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가문을 배신하고 인간이길 포기한 이릉노조(夷陵老祖)로 불린다. 그는 다른 가문들이 협심하여 난징강 대토벌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죽은 후 16년이 지났지만, 그의 악명은 여전하여 사람들은 혹시 위무선이 살아있을까 두려워했다.

 

오랜 세월 위무선의 혼백이 떠돌다가, 누군가의 금지된 주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 위무선은 새로이 살아가려 했지만, 결국 과거 그와 인연이 있던 인물들과 다시 만나게 되며 과거에 얽힌 사건들을 남망기와 함께 해결한다.

 

 

 

진정령 속 캐릭터성


 

[크기변환]샤오잔.jpg

 

 

사실 위의 서사만 보면 잔혹하기 그지없는 위무선을 어떻게 몰입하여 바라보아야할지 의문이 들 것이다. ‘인간이길 포기했다.’라거나, 거의 망태할아범 전설처럼 ‘울면 이릉노조가 찾아온다!’라는 식의 평판이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진정령>에서 위무선은 이 평가와는 상당히 다르다. 오히려 정의롭고 활발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규칙을 따분하게 여기고 종종 어기는 등 장난스러운 면모가 있지만, 타인에게 쉽게 호감을 사며 남들보다 능력도 뛰어났다. 그와 함께 자랐던 ‘강징’이 그를 보며 꾸준히 열등감을 느낄 정도였다.

 

자신만의 ‘선’을 추구했기 때문일까. 16년 전, 그가 한 번 죽기 전까지 그의 삶은 평탄하지 못하다. 자신의 능력을 믿었으나 제어하지 못해 친누나처럼 함께하던 자의 배우자를 죽게 했고 그 후에는 위무선을 보호하려다가 그녀 또한 죽는다. 결국 위무선은 절벽에서 손을 스스로 놓아 거의 자살과도 비슷하게 생을 마감했다.

 

16년 후 ‘모현우’의 몸에 의식이 들어서는 다시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살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으로 살아갔으나 결국 비극으로 끝낸 과거가 있음에도 그는 여전히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정을 쉽게 준다. 그리고 결국은 주변 인물과의 오해가 풀리면서 그의 삶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누군가에겐 답답하게, 혹은 이상에 젖어 살아가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그의 삶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마찬가지로 이어질 것이다.

 

 

[크기변환]왕이보롱보롱.jpg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유쾌한 위무선과는 전혀 다르지만, 결국 위무선과 동행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남망기’이다. 남망기는 그의 표정을 그의 최측근이 아니면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냉담하다. 융통성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원칙주의자인 그에게 위무선의 존재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왔다.

 

처음에는 규칙을 전혀 지키지 않는 위무선을 보며 치를 떠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어떤 대응도 하지 않는, 거의 무시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과 달리 규칙을 어지르고 활발한 위무선이 그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끌린다.

 

타인에게는 위무선과의 관계가 원수지간처럼 보였으나 그 실상은 전혀 달랐다. 위무선이 죽고 나서는 그의 혼을 부르려고 했고 심지어 위무선이 ‘모현우’의 몸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를 가장 먼저 위무선이라고 알아본다. 명랑한 인물에 동요하는 모범생처럼 굴었던 과거와 달리 다시 위무선과 재회하고 나서는 마치 죽마고우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정 그 이상의 관계로 그려지는 위무선과 남망기의 관계는, 실제로 <진정령>의 원작소설은 위무선과 남망기가 연인이 되었으나, 드라마에서는 그들을 브로맨스로 다루었다.(중국의 검열 때문에 애초에 퀴어 드라마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정이든 사랑이든 결국 이 드라마의 결말 이후로도 인연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들의 관계를 응원하게 된다.

 

 

[크기변환]왕샤오찐.jpg

 

 

[이승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