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음식영화 좋아하세요? : 카모메 식당 [영화]

글 입력 2020.12.2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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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영화를 좋아한다. 뛰어난 기승전결이 없어도 좋다. 두 시간 내내 지루하게 음식만 만들고 먹더라도. 개연성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더라도. 이 슴슴하고 밋밋한 영화들을 무슨 재미로 보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음식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음식이라는 소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보편성’이 아닐까? 세상 사는 누구라도 음식이 주는 뻔한 행복을 안다. 익숙한 맛과 향, 든든한 포만감이 약속하는 기쁨이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일생의 소소하거나 커다란 순간에 함께했던 음식에 대한 추억이 있다. 생에 음식에 대한 기억이 단 하나도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음식이라는 소재는 우리의 감각과 기억을 더듬어 익숙한 행복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소재다.

 

그래서 음식은 누구나 아는 소재다. 반드시 특별한 경험이 요구되지 않는다. 화면 속 음식이 조금 낯설더라도, 맥락을 통해 그걸 치환할 다른 음식을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음식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각자에게 새로 써지는 개인적인 이야기인 셈이다. 음식영화들이 보여주는 서사는 대단하고 웅장하진 않지만, 편안하고 따뜻한 감정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밋밋한 이야기라면 더욱더, 나눌수록 풍성해질 것 같아서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음식에 삶을 제대로 옮겨 담은 영화 <카모메 식당>이다.


 

 

사치에의 주먹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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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사치에는 낯선 핀란드 땅에 식당을 차린 장본인이다. 누군가 잘 먹는 모습을 좋아해서 식당을 차렸다. 식당의 이름은 갈매기라는 뜻의 카모메 식당. 주메뉴는 매실장아찌를 넣은 주먹밥이다. 일식조차 생소한 핀란드에서 주먹밥이라니. 잘되는 게 더 수상한 메뉴구성이다. 덕분에 가게에는 손님 한 명 없지만, 사치에는 기죽지 않고 매일매일 정성스럽게 요리를 준비한다.

 

 

"좋아 보여요.

하고 싶은 일하고 사는 게.“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에 대한 의심일 것이다. 몇 달째 손님은 없고, 그런 가게를 지켜보며 행인들은 쑥덕댄다. 가게 일을 도와주는 미도리는 관광안내 책자에 일본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내자고 하거나, 청어나 순록 고기로 현지인들을 위한 주먹밥을 만들자고 한다. 손님이 하도 없어 생각해낸 대책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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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치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누구든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돌아갈 수 있는 카모메 식당을 만들기 위해 그럴듯한 임시방편은 접어 둔다. 그녀는 걱정도, 의심도 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열심히 하다 보면 손님이 늘 것이라 믿는다. 그녀가 하는 것은 무례한 행인들에게 매일 반갑게 눈인사를 건네고, 정성스레 요리를 준비하면서 손님들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미련하다면 미련하다고 할 시간들이 흐른다. 그녀는 간간이 찾아주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최선을 다한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며칠 몇 달 해보고 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실망하고 포기하고 싶을 것이다.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어서 오세요를 외치는 사치에가 단단해 보이는 건,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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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꾸준히 상냥하고 정성스러운 그녀의 가게에는 차차 손님들이 늘고, 그 어느 날에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 찬다. 사치에는 핀란드 땅에 그녀가 원하던 카모메 식당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고, 그녀의 주먹밥에 대한 소신을 알아줄 때까지 기다린 결과였다. 성실함과 친절함으로 목표를 이루어 내는 건 동화 같은 일일까. 무엇보다 버거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아주 허망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사코의 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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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는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잃어버렸다. 일생을 아픈 부모님 병시중을 하며 살아오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신 뒤 무작정 떠난 여행이었다. 비로소 다른 사람의 인생에서 해방된 마사코는 솔직히 후련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잃어버린 짐은 도통 돌아오지 않는다.

핀란드는 에어 기타 대회 때문에 왔다. 에어 기타 대회, 사우나 오래 참기 대회, 부인 업고 달리기처럼 고작 그렇게 시시한 것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좋아 보였다고 했다.


오랜 기간 심각하고 묵직한 책임감 속에 몸담아야 했던 그녀는 가볍고 자유로운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꿈꿨을 것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사치에를 보며, 아직 벗어버리지 못했던 과거에서 걸어나가고자 한다. 짐을 잃어버려 핀란드에 온 내내 입고 있던 옷을 보며 새로 쇼핑을 하러 갈 결심을 한 마사코는 말한다.


 

"계속 이 옷만

입고 지낼 수는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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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그녀의 새로운 삶의 시작을 보여준다

 

 

핀란드에는 숲이 있다. 가게에 맨날 공짜 커피만 마시러 오는 핀란드 청년 토미는 숲이 있어서 핀란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알려준다. 마사코는 그 길로 숲으로 떠나 버섯을 한가득 줍는다. 마사코는 숲이 정말 좋았다고 말하지만, 버섯은 어느새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고 말한다.

그렇게 잃어버린 버섯들은 되찾은 마사코의 짐 속에 한가득 있었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애타게 찾기 바빴던 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숲에 널려 있던 버섯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뒤쫓기곤 한다. 그게 뭔지 알았다면 매일 항공사에 전화하느라 진을 빼는 대신에, 숲 속을 돌며 버섯을 따는 거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마사코는 더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에 내년에 열릴 에어 기타 대회를 나갈 생각이다. 그녀는 무엇도 쫓지 않는 현재의 자신을 위한 삶을 찾아 나갈 것이다.

 

*

 

소박한 일본 요리들이 분주하게 조리되고 나가기가 화면 대부분을 채우는 영화이지만, 식당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이모저모에 스며들어 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은 이들을 묶어주는 매개이다. 함께 모여 앉은 테이블 한 자리에는 나의 삶도 올려 두고 함께 지켜보게 된다.

 

우직하고 상냥하게 요리를 내어주는 카모메 식당이 정말로 핀란드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그 안에서 씩씩하게 식당을 운영하는 사치에도 있고, 행복을 찾아가는 마사코씨도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길을 잃는 게 무서울 때, 마음의 허기를 달래 줄 카모메 식당이 누구나 마음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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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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