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사랑 ③ [영화]

글 입력 2020.12.28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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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누아르, 범죄, 액션 장르로 대표되는 남성 영화에서 로맨스와 여성은 제한된 재현방식 내에서 나타난다.

 

영화 브이아이피(2017)에서 여성은 시체이거나 시체가 될 예정이며 혹은 폭행의 피해자로 등장했다. 여기에 선정성을 위해 적나라하게 살해 장면을 표현하고, 등장한 여성 캐릭터를 ‘여자 시체 1’ 따위로 표기해 몰매를 맞기도 했다.

 

또 가끔은 주인공의 연인이자 피해자로 등장해 주인공의 각성을 돕거나 동기를 제공한다. 리얼(2018)에서 장태영(김수현 분)이 자아분열을 겪게 된 것은 자신의 연인에게 벌어진 끔찍한 사고 때문이고, 새로운 연인 송유화(최진리 분)은 분열된 자아와 대결 구도를 형성하게 되는 원인이다.

 

이처럼 극 초반에 여성은 남성에게 굉장히 중요한 인물처럼 서술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사에서 제외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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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의 경우 감정적 교류보다 섹슈얼리티가 부각된 형태로 나타난다.

 

황제를 위하여(2014)에서 술집 마담으로 등장하는 연수(이태임 분)는 누아르 장르의 가장 보편적인 여성 캐릭터의 관습을 따른다. 상하(박성웅 분)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연수는 이환(이민기 분)의 환심을 사 사랑으로 이끈다.

 

하지만 미스터리를 가진 팜므파탈의 여성으로 인해 파멸에 이르는 기존의 누아르 서사와 달리 이환은 조직의 회장이 되며 성공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연수와의 관계는 적나라한 베드신만을 남기고 엉성하게 마무리 된다.

 

이처럼 한국 남성 영화에서 여성은 피해자 혹은 로맨스 관계에 위치하면서도, 남성적 세계에서 철저히 배제된 형태로 나타났다. <불한당>은 여기서 조금 독특한 방법을 선택한다.

 

기존 누아르 서사를 그대로 따르면서, 기존 여성 캐릭터의 역할을 현수에게 부여한다. 그리고 영화 속 유일한 여성인 천팀장은 남성적 세계 속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인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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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호에게 현수는 필름 누아르의 특징적 캐릭터인 ‘미모를 앞세워 남성을 파멸로 이끌어 내는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재호만이 둘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재호와 현수가 서로에게 동화되는 과정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엔딩을 앞두고 경찰들 사이에서 혼자 책상에 앉아 있는 현수의 모습과 전화를 끊고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긴 재호의 뒷모습은 동시편집을 통해 둘의 동기화를 강조하고 있다.

 

보통 파국적 결말을 맞이하는 남주인공과 달리 여기서 재호가 맞이하는 결말은 오히려 해피엔딩에 가깝다. 감정이 결여된 채 살아온 재호는 현수를 통해 사랑에 대해 알게 되고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룬다. 하지만 재호로 인해 이미 모든 것을 잃은 현수에게 혼자 살아남은 현실은 무간지옥에 불과하다.

 

그렇게 실질적 파국을 맞이하는 인물은 현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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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을 젠더적으로 무결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성 영화 속에 퀴어 서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으면서 장르물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여기에 사랑에서 시작해 사랑으로 귀결되는 서사의 개연성은 불한당의 예외점이자 매력이 된다.

 

또 변성현 감독은 장르의 관습을 피하기 위해 스타일로 차별점을 두고자 했다. 특히 세 가지 색을 활용한 연출은 스타일리쉬한 화면을 구성함과 동시에 인물들의 관계성과 감정의 변화를 영화적 문법을 통해 서사에 녹여내고 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인물의 감정이 관객들로 하여금 서사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안 봐도 뻔했던 암청색 영화는 그 외피를 벗기자 멜로 영화의 진가를 드러냈다. 불한당은 복잡한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사랑이 가진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철저히 마음의 플롯을 따르고 있는 이 영화는 당위성이 필요하지 않은 맹목적 감정을 통해 사랑과 믿음의 파괴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다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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