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올해를 위로한 음악들

글 입력 2020.12.2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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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보다도 많은 음악을 들은 한 해였다.

 

밖을 나가지 못하고 무언가를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하나둘 사라질 때, 그럼에도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기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준 음악인들이 있었다.

 

모두의 집으로 무사히 가닿은 노래들은 한 해의 직면이었고, 그에 따른 허무와 탄식이기도 했으며, 떠날 수 없는 곳에 대한 아득한 소망이었고, 그것은 결국 회상이 되기도 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고립 속에서 같은 시간을 지나는 이들과의 대화는 소중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새겨지고 있는 상처인 만큼, 지워지지 않을 위로로 기억될 음악들이다.

 

 

 

스텔라장 'Reality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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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pretty lie

먼 곳에 가도 다 괜찮아지지 않아

괴로운 건 다시 나를 따라와

 

 

스텔라장의 첫 정규앨범 [Stella I]에 수록된 타이틀곡이다. 올해 2월에 쓰인 이 곡은 한 해 동안 많은 이들이 당면한 우울을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노래이다.

 

무언가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고 떠난 여행에서 돌아왔으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노래한 가사는, ‘현실의 우울’은 무언가가 바뀌지 않을 때 가장 쉽게 찾아온다는 사실을 피력한다.

 

앨범은 중앙에 위치한 인터루드(Interlude) 트랙을 기점으로 비교적 경쾌한 곡과 차분한 곡의 경계를 가르는데, 이 곡은 인터루드 트랙 바로 전에 위치하여 쉼을 앞두고 여태 동안의 빠른 걸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쉼 이후의 보다 섬세하고 내밀한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하는 이정표가 되어 바뀌지 않는 현실의 우울을 지나 새롭게 가야 할 곳을 넌지시 제시하기도 한다. 앨범 마지막 트랙의 제목처럼, 걸음을 멈추고 여태까지 달려온 날들의 ‘밤을 모으는’ 조용한 시간으로 우리는 향해야 할 것이다.

 

 

 

우효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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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ary to popular belief, I don’t mind being called a nobody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상관없어)

So cross me out

(그러니까 나는 빼 주길)

 

 

우효의 EP [silence]에 수록된 타이틀곡이다. 나 자신의 일부로 느껴질 만큼 소중히 여겼던 것이 무너지는 순간의 감정을 담아낸 앨범은 시종 섬세하게 기록된 쓸쓸함과 우울함이 가득하다.

 

‘2020년엔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다’며 마찬가지로 크게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허무의 정서를 담은 노래는 ‘어떤 이들은 상대성이라고 부르는 위선’을 꼬집으며 탈피할 수 없는 불가능의 상황을 통렬하게 꺼내 보인다. 끊임없이 나름의 의미를 찾았고, 그래야 할 것 같았던 한 해는 사실 누군가에겐 도무지 그럴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생사가 갈리는 비극은 숙제처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는 않았고, 그러한 상황에 더욱 쉽게 처해져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낙관도 사치였으리라. 칸을 늘려가는 삶이라는 과정에 아무것도 채울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공간 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2020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가사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채움에 대한 강박에 분명 ‘무언가가 될’ 위안으로 건네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아이유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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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춰

정해진 안녕 따위는 없어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어떤 나이를 지나는 순간을 세밀히 기록하는 아티스트 아이유가 자신의 스물여덟을 노래했다.

 

올해를 ‘반복되는 무력함과 무기력감’으로 기억할 것 같다는 설명은 앞에서 소개한 노래들과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는 듯 보이나, 이 곡은 거기서 탈피하여 어떤 슬픔과 우울도 없이 자유로웠던 시공간에 대한 그리움으로까지 정서를 거세게 뻗어낸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이며 또한 애처롭다.

 

단 한 줄기의 빛조차 보기 어려우나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며, 유일하게 작열하는 순간을 향해 뒤를 돌아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더 이상 현재로 가져오지 못해도 과거에 고스란히 남겨져 빛을 내는 순간이 있다.

 

어떤 미래가 닥쳐도 훼손되지 않는 그 순간은 단지 그리워할 수밖에 없기에 슬프도록 자유롭고 아름답다.

 

 

 

자우림 '우리들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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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남은 건

밤하늘에 새겨진 검은 무지개처럼

반짝이며 썩어가는 꿈

우리에게 남은 건

 

 

자우림의 EP [HOLA!]의 수록곡이다. 어두운 분위기의 곡을 주로 작업하다가, 코로나가 유행하자 대중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즐겁고 경쾌한 곡으로 새롭게 앨범을 구성했다고 한다.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HOLA!’에서 이제는 아득한 꿈처럼 되어버린 소풍과 여행의 들뜬 정서를 맑게 표현하고, 두 번째 트랙의 ‘모닝 왈츠’에서는 지금의 슬픔을 밤으로 받아들이고 아침을 소망하기를 용기 내어 다짐한다면 세 번째 트랙인 ‘우리들의 실패’에서는 실패가 모여 이루는 어떤 것의 존재를 드러낸다.

 

별과 같이 ‘썩어가는’ 실패는 동시에 ‘반짝임’의 과정이다. 반짝임은 영원하지 않고, 심지어 어떤 것은 아름답지도 않지만 무언가의 존재를 알리기에 더없이 소중하다. 존재하여 아름다운 우리들의 실패를 잊지 못할 반짝임으로 기억하자. 아무것도 수식하지 않고 끝나는 가사처럼, 그것이 무엇도 남기지 않을지라도.

 

 

 

Lucia(심규선) '생존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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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삶의 한 가운데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가 버린다

그렇게 죽고 싶을 만큼 아팠던 것은

그만큼 살고 싶다는 증거

 

 

같은 시대를 지나는 너와 나의 공통의 기록으로서 작업에 임했다는 아티스트는 올해의 명암을 기억하기 위한 앨범을 두 개로 나누어 발표했다. ‘생존약속’은 [월령]의 ‘上’편에 수록된 곡으로, ‘우리’라는 주어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커다란 공감대를 형성한 후 ‘이토록 불안한 시대’에 모두의 생존을 당부하는 새끼손가락을 내민다.

 

생과 삶을 구분하는 화자는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삶과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충만해지는 생의 필연적인 공존을 밝히고, 그것을 모두 떠안은 채 죽고 싶을 만큼의 아픔에 직면하는 이들의 선명한 삶의 이유를 기린다. 당연히 주어지는 삶이란 없다. ‘늘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매 순간을 기꺼이 싸우며 생을 쟁취하기에 삶은 지속된다.

 

이 노래는 한 해를 그렇게 채워낸 모든 생에 바치는 찬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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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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