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걸그룹에게 더 많은 목소리를 Part.2 – 걸그룹과 걸크러쉬 [음악]

편협한 정의로서 공유되는 현재의 걸크러쉬 트렌드에 관하여
글 입력 2020.12.2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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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Opinion] 걸그룹에게 더 많은 목소리를 Part.1 - (여자)아이들 [음악] 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걸크러쉬가 확장한 여성 서사


 

현재의 걸그룹 산업 내 대세를 이루는 키워드는 단연 ‘걸크러쉬’다. 걸크러쉬 콘셉트가 걸그룹 음악 서사의 확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 의의는 ‘섹시’, ‘청순’, ‘큐티’에 새 국면의 선택지가 더해졌다는 데 있다. 걸크러쉬 콘셉트는 크게 세 가지 코드를 전복시킨다. ‘걸그룹 화자는 사랑에 주체적이지 못하다’, ‘걸그룹은 착하고 상냥하다’, ‘걸그룹은 성적으로 대상화될 위험에 노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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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사랑에 진취적인 여성 화자를 걸크러쉬의 기호로 들 수 있다. 또 몸선을 강조하지 않고 노출이 과하지 않은 의상으로의 변화에도 주목할 수 있겠다. 이처럼 걸크러쉬 콘셉트는 여성에 관한 여러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깨부수는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의의를 갖게 된다. 즉 걸그룹 음악에서의 걸크러쉬 콘셉트가 넓게는 여성의 서사를 확장하는 것과도 맞닿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앞선 스타일링의 변화는, 걸그룹의 의상에 여러 선택지를 더했다. 수트부터 승마복, 제복, 그리고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힙한’ 바지까지. 또 걸그룹 화자에게 사랑을 시작하고 끝내는 것에 관한 선택권이 주어진 것, ‘I’m so Bad( 이달의 소녀, < So What > ) 라 외치는 여성 캐릭터는 모두 여성의 서사로 귀결된다.

 

하지만 큰 호응을 등에 업고 일종의 트렌드가 된 걸크러쉬 콘셉트의 방향에 대한 재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재의 걸그룹 산업을 ‘걸크러쉬 홍수 사태’라 이름 붙이는 게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걸그룹이 걸크러쉬 콘셉트를 취하는 요즘, 걸크러쉬가 상업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은 단어 본연의 의미와 의의를 해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으로 또 다른 여성의 서사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걸크러쉬에 관한 납작한 인식


 

걸크러쉬에 관한 납작한 코드의 생산과 소비는 납작한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 책임은, 콘셉트를 기획하고 이를 음악적으로 또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기획사와 그릇된 코드를 비판 없이 소비 및 재생산하는 언론·방송과 대중, 모두에게 있다.

 

2019년 2월, JYP엔터테인먼트는 ‘원더걸스’, ‘미쓰에이’, ‘트와이스’를 이을 새 걸그룹 ‘ITZY’를 런칭했다. ITZY는 데뷔 앨범 [IT’z Different]를 시작으로, [IT’z ICY] 그리고 올해 3월 발매한 [IT’z ME]까지의 3부작 기획 앨범을 발매한 바 있다.

 

3부작의 공통키워드는 ‘IT’z’. 지칭어 ‘It’과 그룹명 ‘ITZY’를 한눈에 떠올리게 하는 키워드는, ITZY가 말하는 ITZY 즉 ‘나’의 서사에 집중하겠다는 그룹의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ITZY의 음악은 ‘나는 내가 알( ITZY, < 달라달라 > )‘너의 틀에 날 맞출 맘은 없( ITZY, < ICY > ) 으며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 ITZY, < WANNABE > ) 다고 말하는 당당하고 솔직한 여성 화자를 일관되게 내세우고 있다.


 

가사는 세상의 중심에 선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내용으로, 존재 이유와 의미를 찾는 이 시대 개성들의 취향을 정조준한다. 그간 대중이 기대했던 ‘틴크러쉬’, ‘걸크러쉬’ 매력을 제대로 충족시킬 사운드와 메시지를 지녔다.

 

- [IT’z Different] 앨범소개글 중에서

 

 

하지만 ITZY의 음악이 ‘그간 대중이 기대했던 ‘틴크러쉬’, ‘걸크러쉬’의 매력을 제대로 충족’시켰는지에 관해서는 시원하게 동의하기 어렵다. 3부작 앨범의 중요한 첫 단추가 된 곡 <달라달라>를 살펴보자. <달라달라>는 ‘ I love myself  하면서 ‘고개를 들고 네 꿈을 쫓’ 으라는 메시지가 인상적인 곡이다. 하지만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겠다는 주요한 메시지를 ‘난 너랑 달라’ 라는 문장이 방해한다. 화자가 자신의 비교 대상으로 지칭하는 ‘너’는 다름 아닌 ‘언니들’ 그리고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 이기 때문이다.


 

언니들이 말해 철들려면 멀었대

I’m sorry sorry 철들 생각 없어요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 난 달라 달라 달라

 

- ITZY, <달라달라> 중에서

 

 

곡의 킬링 파트 ‘난 너랑 달라 달라 YEAH’  그리고 제목을 통해 강조되기까지하는 두 여성 캐릭터 간의 적대적 구조는, ITZY가 노래하는 걸크러쉬의 치명적인 맹점이 되었다. 이 대목은 ‘여성은 예쁜 여성이나 성공하는 다른 여성을 적극적으로 시기한다’는 여성 혐오적 시각의 ‘여자의 적은 여자’코드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달라달라> 속 여성 화자는 3부작 앨범 전체를 관통하기에 ITZY의 음악은 여성 혐오적 코드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하게 된다.

 

이는 걸크러쉬가 편협한 방식으로 정의되고 공유되는 것의 부작용이다. 여성의 강한 이미지나 숏컷 헤어 같은 스타일링 자체를 걸크러쉬의 요건처럼 여기는 납작한 인식이 트렌드로 생산되고 소비되면, 걸크러쉬 본연의 의미와 의의가 쇠퇴한다. K-POP을 주도하는 한국의 3대 기획사에 속한 대형 기획사면서 ‘걸그룹 명가’라고도 불리는 JYP엔터테인먼트가 야심차게 기획한 차세대 걸그룹 ITZY는 이로써 큰 오점을 남겼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실은 기획사보다도 ITZY의 음악 속 여성 화자와 동일시되는 ITZY의 멤버들 또는 그룹에게 돌아가는 실정이다.

 

 

 

걸크러쉬 홍수 사태와 청순 가뭄 사태


 

나아가 걸크러쉬 트렌드가 공유하는 코드가 객관적 사실인지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올해의 걸그룹 음악은 이전보다도 더 걸크러쉬의 콘셉트로 편향되어 있었다.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기획사들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걸크러쉬 홍수 사태’의 다른 이름은 ‘청순 가뭄 사태’라는 사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걸크러쉬 콘셉트와는 대척점에 놓여 청순 콘셉트의 걸그룹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곧 청순 콘셉트 걸그룹의 서사 확장을 제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청순 콘셉트 ‘안에서’ 다채로운 선택지가 제공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순 걸그룹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음악을 하지 않는다’, ‘청순 걸그룹은 도전적이지 못하다’라는 부정적 코드의 생산과 소비를 가속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순한 이미지 자체를 한계 짓고 문제 삼는 실정에 반해, 청순 콘셉트의 걸그룹이 걷는 실제 행보는 걸크러쉬 본연의 의미와도 분리되지 않는 것이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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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바다

저기 끝이 난 아득해

널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깜짝

발이 닿지 않아 겁이 나지만 처음 느껴보는 떨림이야

손을 저으면 네가 느껴져

가만히 눈 감으면 빨라진 심장만 들릴 뿐

이제부턴 맘껏 나아가볼 거야

너의 마음과 만날 때까지 난

 

- 오마이걸, <심해 (마음이라는 바다)> 중에서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 표현이 돋보이는 그룹 ‘오마이걸’의 음악에는 진정성 있는 성장의 서사가 있다. <비밀정원>의 화자는, ‘내 안에 소중한 혼자만의 장소가 있’ 고 그곳엔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 게 될 거’ 라며 꿈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는 모종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읽어낸다.

 

<다섯 번째 계절 (SSFWL)>의 화자는 사랑에 빠진 감정을 ‘다섯 번째 계절’에 비유해 표현한다. 또 자신이 경험하는 감정을 능동적인 태도로 성찰하고, ‘이제 난 그 사람이 누군지 확신했’ 다며 주체적으로 사랑을 선택한다. 나아가 후속 앨범의 타이틀 곡 < BUNGEE (Fall in Love) >의 화자는 ‘때가 왔을 때 ‘고민하면서 망설이지 않’ 고 ‘네 마음 위로 번지’ 하겠다는 결심을 내비치며 직설적으로 마음을 표현한다.

 

 

 

 

2020년 데뷔한 신인 걸그룹 ‘위클리’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위클리는 플레이엠 엔터테인먼트가 ‘에이핑크’ 이후 10년 만에 런칭한 청순 콘셉트의 걸그룹이다. 위클리라는 그룹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다. 책상이나 주사위 같은 소품을 활용한 다채로운 무대 구성과 안무의 역동성을 표현하기에 ‘편한’ 의상은 위클리의 에너지를 뒷받침한다.

 

그중에서도 무대 의상에 주목하고 싶다. 위클리는 데뷔 앨범 [We are]에 이은 두 번째 앨범 [We can]을 통해 기존의 걸그룹 교복 코드를 전복시켰다. 걸그룹의 교복 콘셉트에는 ‘크롭 셔츠에 짧은 치마’라는 성적 대상화적인 코드가 존재했다. 하지만 위클리가 선보인 교복은 멜빵 바지나 무릎과 발목 사이로 잘라낸 7부 바지 스타일로 기존의 걸그룹 교복 스타일과는 판이했다.

 

멜빵 바지를 걸그룹의 단체 의상으로 활용한 사례는 굉장히 드물다. 심지어 위클리의 7부 바지는 걸그룹의 무대 의상으로 소비된 것의 최초라고도 볼 수 있다. 또 커다란 주사위를 굴리는 < Zig Zag >의 안무에도 안성맞춤인 의상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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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편견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저희가 퍼포먼스 연습을 진짜 좀 많이 해요. 거의 매일매일 출근하면서 그렇게 연습을 하는데 열심히 준비한 퍼포먼스가 나갔을 때 칭찬이라고 해주시는 말들 중에 ‘너희 춤은 걸그룹 치고 너무 어렵더라’, ‘너희 춤 걸그룹 치고 진짜 힘들겠더라’, ‘걸그룹 치고 너무 멋있더라’ 이런 식으로 말도 많이 해주시는데 그게 칭찬처럼은 안 들리더라고요. ‘그냥 걸그룹 치고 라는 게’.

 

(중략)

 

그래도 엄청 큰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여자이니까 이 정도 하자고 만든 퍼포먼스가 아니다 보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하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멋있게 봐줬으면 좋겠다 그런 거보다는, 뭔가 추가적인 거는 넣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생각하고 느껴주셨으면 하는. 좀 상대적인 것 없이 칭찬받고 싶어요.

 

- 영상 Letters to MIDZY 중 ITZY 류진의 인터뷰

 

 

앞서 소개한 청순 콘셉트 걸그룹 오마이걸과 위클리의 음악 그리고 위 인용한 ITZY 류진의 인터뷰는 현재의 걸크러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보도록 한다.

 

걸그룹의 파워풀한 안무가 선을 활용한 부드러운 안무보다, 또 수트 복장이 레이스가 달린 긴 치마보다 우월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걸크러쉬 ‘트렌드’는 청순이나 큐티 콘셉트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조장하는 쪽으로 공유되고 있다. 이는 걸크러쉬 본연의 의의와는 달리 역으로 또 다른 여성의 서사를 제한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비판해야 할 것은 청순이나 큐티한 이미지 자체가 아닌 걸그룹을 둘러싼 관음증적인 시선과 수동적이기만 했던 걸그룹 음악 서사가 아닐지 그 의미와 의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ITZY, < WANNABE > ) 라는 문장이 와 닿는 요즘이다. ITZY 멤버들이 말한 문장이 영감이 되어 완성됐다는 이 가사에 현재의 모든 걸그룹에게 필요한 서사가 담겨있다는 생각이다. 많은 걸그룹이 다른 무엇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중받고 사랑받기를 바란다. 나아가 어떠한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무궁무진한 이름으로 다채로운 음악과 서사를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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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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