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걸그룹에게 더 많은 목소리를 Part.1 - (여자)아이들 [음악]

글 입력 2020.07.0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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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제작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아이돌 그룹 시장에서 더 이상 차별화된 전략으로 통하지 않게 된 지는 꽤 오래다. 즉, 과거엔 유명 작사가나 작곡가의 곡을 부르고 유명 안무가의 안무를 배워 추던 아이돌 그룹들은 이제 직접 곡을 쓰고 안무를 창작하며 앨범의 전체 프로듀싱까지 맡게 되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티스트가 직접 앨범제작에 참여하는 요즘의 추세는 그들의 음악뿐만 아니라 아티스트 자체의 서사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 가운데서도 여전히 걸그룹은 보이그룹에 비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그들만의 서사를 갖지 못하는 중이다. 이는 음악과 스타일링, 크게는 두 가지로 구현되는 아티스트의 콘셉트에서 그 차이를 찾을 수 있다. 보이그룹과 걸그룹은 같은 콘셉트를 노래해도 사회의 성차별적인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이름 붙여졌고, 이는 곧 이후의 또다른 콘셉트와 서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계속하여 이어져왔다. 보이그룹과 걸그룹 각각에게 붙는 수식어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보이그룹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를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섹시’, ‘소년’, ‘청량’, ‘성장’, ‘칼군무’, ‘싱어송라이돌’, ‘자체제작’ 등.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걸그룹에게 자주 붙는 수식어를 나열하자면 ‘섹시’, ‘청순’, ‘소녀’, ‘걸크러쉬’, ‘실력파’ 등이 있을 것이다.

 

나열된 수식어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사실은, 보이그룹에겐 ‘칼군무’, ‘싱어송라이돌’, ‘자체제작’처럼 구체화되고 다양한 이름으로 설명되는 ‘음악적 능력’에 대한 수식어가 걸그룹에게는 ‘실력파’ 정도의 이름 하나로 납작하게 생략되어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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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음악적 ‘능력’에 대한 수식어 ‘자체제작’, ‘전곡 프로듀싱’ 등으로 이름 붙여지는 그룹 또는 멤버는 남성이었다. 반면 걸그룹이 음악적인 능력으로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실력파’라는 납작한 방식의 이름 안에서도 실력파 걸그룹으로 화제가 된 그룹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걸그룹이 화제가 되거나 주목을 받는 경우는, 외모나 몸매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성적 대상화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유투브로부터 성희롱식의 움짤(걸그룹 멤버 신체의 한 부분을 슬로우 걸어 부각하는 방식)이나 치마가 들린 상태를 캡처해 썸네일 사진으로 쓴 직캠 영상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나아가 그렇게 클릭한 직캠 영상엔, 춤을 추기엔 너무나도 불편한 의상을 입고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치마를 내리는 걸그룹의 멤버들이 있다. 이는 비단 소비과정에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며, 성적으로 상품화되고 또 포르노적으로 소비되어온 걸그룹의 맥락을 잘 설명해주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행한 결과가 걸그룹의 음악적인 능력과 서사가 보이그룹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걸그룹에게 더 많은 목소리를’에서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도 마땅할, 걸그룹의 다채로운 음악과 서사들을 소개한다.

 

Part.1에서는 앞선 서론에서 음악적능력보다는 성적 대상화의 방식으로 주목을 받는 걸그룹의 현재에 대해 설명했듯, 이러한 현재를 시정하는 데 이바지할 ‘자체제작’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음악과 서사를 소개한다. (여자)아이들은 2018년에 데뷔한 걸그룹으로, 독보적인 컨셉 그리고 걸그룹 가운데 이례적으로 ‘자체 프로듀싱’ 능력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는 그룹이다.

 

 

 

‘나’와 ‘우리’의 서사 : I am, I made, I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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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은 작사와 작곡, 그리고 편곡과 프로듀싱 능력까지 갖춘 리더 전소연을 필두로 재작년 데뷔했으며, 데뷔앨범을 포함해 가장 최근의 세 번째 미니앨범까지 이른바 ‘I’ 시리즈를 이어왔다. 데뷔곡 가 수록된 첫 번째 미니앨범 [I am]에 이어 2019년엔 Señorita가 수록된 두 번째 미니앨범 [I made]를 발매했으며, 2020년 4월 발매한 가장 최근엔 세 번째 미니앨범 [I trust]를 발매한 바 있다.

 

그들의 ‘I’ 시리즈 앨범은 기존의 납작한 걸그룹 음악에 I, 즉 내가 중심이 된 서사가 새롭게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단순 ‘걸크러쉬’ 트렌드에 합류함으로써 덕을 보기 위한 피상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여자)아이들이라는 그룹의 진솔한 서사가 그것도 아티스트 본인에 의해 직접 쓰였다는 점에서 더욱이 설득력을 갖게 된다.

 

‘나’와 ‘우리’를 정의 내린 첫 번째 미니앨범, 보이그룹에 한정된 수식어였던 ‘자체제작’의 의미를 부각하여 능력치를 입증한 두 번째 미니앨범, 그리고 ‘거부, 혼란, 인정, 당당함의 감정을 겪으며 현실과의 부딪침을 통해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곡’인 타이틀곡 Oh my god를 중심으로 한 세 번째 미니앨범까지. (여자)아이들은 충실히 ‘나’와 ‘우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서사를 실현해나가는 중이다.

 

 

 

장르 (여자)아이들 : <싫다고 말해 (Nightmare Version)>



 

 

그중에서도 이 무대를 빼놓을 수 없다. 작년 이들이 출연했던 Mnet의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퀸덤(Queendom)>에서 선보인 무대 <싫다고 말해 (Nightmare Version)>.

 

<싫다고 말해>는 본래 (여자)아이들의 두 번째 미니앨범 [I made]에 수록된 발라드 장르의 곡으로, <퀸덤>에서 ‘Nightmare Version’으로 재탄생했다. ‘싫다고 말해 그냥 솔직히 전부 말해줘 그니까 변한 거 맞지’ 의 가사로 미루어 알 수 있듯, 상대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아파하는 감정을 노래한 곡이다. 오늘 소개할 ‘Nightmare Version’은 기존의 곡에 담긴 슬픔에 분노라는 감정을 더한 버전으로,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함으로 기존의 발라드곡을 재해석함으로써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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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들은 이 무대에 원색의 레드를 주컬러로 사용했는데, 아이돌 그룹의 무대로부터 레드는 대개 단순한 포인트 컬러 또는 불과 같은 특수효과와 함께 정열적인 느낌을 더하기 위한 색으로 활용되어왔다. 특히 걸그룹에게는 장미 또는 섹시 코드 정도로 더욱이 제한되어왔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은 걸그룹 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아이돌 그룹에서 레드를 활용해온 전체적인 방식을 아예 뒤집고 빨간색을 ‘피’를 표현하기 위한 색으로 활용했다. 이들은 붉은 미니 드레스를 입고 풀립(Full lip)의 방식으로 원색의 레드를 장착하며 레드 그 자체를 무대 전반에 녹여냈는데, 이 무대 전체를 기획한 전소연은 인터뷰를 통해 피로 물든 흰 드레스를 표현하기 위해 붉은 드레스를 의상으로 택했다고 밝혔다.

 

무대는 붉은 조명 아래 빨간색의 테이프로 입이 막혀있는 남성이 죽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한쪽 눈썹은 찌그러뜨리며 입으로는 웃고 있는 채로 ‘내가 싫다고 말해’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섬뜩함과 공포의 최정점을 구현해냈다. 이를 보는 타그룹과 관객들이 공포영화를 보는듯한 표정으로 무대를 관람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흐트러진 머리와 망가진 메이크업을 의도했다고 생각하던 찰나, 멤버들은 손등으로 입술을 뭉개며 립스틱을 지웠고 이로써 입술 근처에 번진 립스틱 자국은 관객과 시청자로 하여금 몰입의 최고조를 달리게 했다. 그리고 연이어 광기 어린 표정으로 달려 나오는 전소연이 “날 떠나면 이렇게 이렇게 될텐데 날 떠나갈 수가 있어?”라고 외치는 장면은 ‘광기어린 분노’ 그 자체였다.


 

“저는 (여자)아이들이란 팀이 편견에 도전하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드레스에 어울리는 신발은 구두라는 편견을 깨고 맨발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항상 도전하는 (여자)아이들인 만큼 이번에는 발라드도 이런 편곡을 하면 충분히 무대를 멋있게 만들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고요. 분노를 표현하는 팀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 <퀸덤> 내 <싫다고 말해 (Nightmare version>에 대한 전소연의 인터뷰 중에서

 

 

이 무대가 의미 있었던 지점은 (여자)아이들이라는 그룹의 캐릭터와 콘셉트의 확장에 있다. 그리고 이는 걸그룹의 서사 확장으로도 나아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자)아이들은 ‘슬픔 속의 분노’라는 구체적인 감정을 스타일링 그리고 멤버 개개인의 몰입과 연기, 춤과 노래를 통한 개성을 담아 표현했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걸그룹에게 한정되어 있던 감정과 서사를 분명히 깨는 지점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여자)아이들의 음악은 걸그룹에게 주어진 단 네 개의 컨셉 ‘섹시’, ‘청순’, ‘큐티’, ‘걸크러쉬’ 중 어느 곳에 속할 수 있을까.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이라는 독보적인 콘셉트를 여전히 이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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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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