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패션 훈수 두기에 훈수 두기 [예능]

나영석 피디의 두 번째 '옷입기 예능'을 보면서
글 입력 2020.12.2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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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피디의 두 번째 ‘옷입기 예능’이 잔잔한 인기를 끌며 방영 중이다.

 

첫 번째 패션 예능이었던 [마포멋쟁이]에서는 옷 잘 입는 송민호와 피오가 친구 간의 경쟁에 유머를 섞어 옷을 갖고 노는 식이었다면, 두 번째 패션 예능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는 놀이에서 확장해 배정남을 필두로 본격 ‘패션 피드백 프로젝트 숍’을 열었다.

 

현대 사회에서 한 사람의 패션을 사적으로나 공개적으로나 피드백하는 것은 사상검증만큼이나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다. 변명의 여지 없이 개인의 표현수단을 평가와 판단으로 휘감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대부분의 패션 훈수들은 본인의 자발적인 훈수 요청 선에서 제한된다. 자신의 아웃핏을 직접 올린 뒤 패션 유튜버에게 조언과 지적을 받는 콘텐츠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패션 유튜브 포맷의 주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흔했다.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는 그런 포맷을 기반으로 해 훈수를 두는 사람을 연예인으로 설정하고, 다수가 아닌 소수를 대상으로 해 스토리를 더한 뒤, 자극성을 배제하고 감동과 기쁨을 주된 무드로 잡은 경우다. (예능 속 배정남의 가게 이름이 [기쁨라사]인 것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패션 훈수의 장점을 극대화한 방송이지만, 그런 콘텐츠가 가지는 맹점을 온전히 피하기는 힘들었다.

 

 


1. 배정남 스타일 이식이 능사는 아니다.



배정남 씨가 많은 사람의 우상이 될 정도로 패션 아이콘이었다는 점, 그가 옷을 굉장히 잘 입고 패션에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이 두 가지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명실상부 ‘배정남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고, 분명 그 스타일은 세련됐다.


그의 옷가게 [기쁨라사]에도 배정남이 직접 고른 옷들이 좌르륵 펼쳐져 있다. 기쁨라사의 손님들은 배정남이 스타일링한 착장을 입고, 어색한 듯 한 발짝 한 발짝 탈의실에서 걸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사람들의 애프터 모습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배정남의 손길을 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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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남과 비슷한 나이나 체형의 경우에는 이식된 스타일이 잘 어울렸다. 하지만 젊은 손님들의 모습이 다소 올드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옛스러운 스카프를 두르거나 중절모가 씌워진 젊은 게스트들의 표정이 난처해 보였다. (살면서 중절모를 쓴 사람을 직접 본 것은 종로나 동묘의 멋쟁이 할아버지 몇 명이 전부였다.)


한 때 ‘손민수’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오르내렸다. 가상 세계 속 손민수가 홍설을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충격적으로 와 닿았다. 손민수는 대명사가 되어, 그리고 비꼬는 밈이 되어 여러 현실 속 간증들과 함께 떠올랐다 가라앉길 반복했다. 그와 비슷한 시점에 누군가의 패션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것도 덜해졌다.


이제는 패션을 접할 수 있는 채널도 다양해지고, 참고할만한 패션 인플루언서의 수도 수없이 많아졌다. 그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요즘 사람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개인의 취향을 살려 옷을 잘 입는 사람을 리스펙한다. 예를 들어 아메카지를 잘 소화하는 이동휘의 패션을 응용해보고, 스트릿 패션의 선두인 래퍼들의 코디를 살피는 식으로 말이다.

 

예전처럼 모든 사람이 우르르 달려가 한 사람의 패션을 그대로 이식하던 복제시대는 이미 지났다. ‘배정남 스타일’은 배정남이 해서 멋있는 것일 수도 있다.

 

 


2. 자진과 구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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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라사에 방문하는 사람은 대체로 두 명씩이다. 한 명은 직접 패션 코디를 받게 될 ‘패알못’손님이고, 다른 한 명은 그 사람의 구제를 대신해서 신청해준 사람이다. 즉,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의 패션 훈수는 자발적인 요청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의뢰인의 누나, 매니저, 동료, 아내 등 주변인이 그들의 패션에 난색을 보이며 데려온 것이다.


직접 그 사람의 패션센스를 비웃거나 무시하는 등의 자극적인 행동은 없어 다행이지만, 옷 못 입는 사람을 추천해서 데려오는 방식 자체가 갸우뚱하게 느껴졌다. 본인이 패션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강한 의지나 계기가 있는 것이 아닌데 기쁨라사에 가는 것이 최선일까.

 

방송을 보다 보면 패션수준을 바꾸겠다는 의지는 본인보다 그 옆 사람이 더 강해 보인다. 기쁨라사에서의 경험이 뒤늦게라도 패션에 관심을 두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는 이상, 일회성 조언과 함께 강제로 입게 된 옷에 관한 관심이 방송이 끝난 뒤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3. 존중 혹은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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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의 다양한 표현수단을 갑피처럼 두르는 한 단어, 바로 취향존중이다.

 

하지만 [악마는 정남이를 입는다]는 존중과 강요 사이를 아슬하게 타고 있었다. 옷이 손님의 체형에 맞지 않을 때 고군분투하며 다시 찾아보는 열정, 또 올블랙 코디에 익숙한 손님이 다양한 색의 코디를 보며 우물쭈물할 때 그의 취향에 맞게 세련된 올블랙 코디를 들고 오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렇지만 수많은 훈수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패알못의 구제라는 분위기에 이어서, 손님은 옷을 입고 나와 사람들 앞에 서서 평가를 한마디씩 들어야 한다. 서울에 상경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옷가게 점원들에게 둘러싸여 듣다가 결국에 멍하니 옷값을 결제하고 나오던 옛 기억이 방송을 볼 때마다 떠오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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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패션에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깊은 일이고, 생각보다 많은 주의와 조심성이 필요한 일이다.

 

위와 같은 갖가지 세세한 포인트들이 눈에 띄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패션을 통해 기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을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 움트게 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기능을 다하고 있는 예능이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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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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