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책을 리뷰하는 책 [도서]

잡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 0호에 대해
글 입력 2020.12.21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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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거리가 필요했다.

 

전대미문한 전염병이 세상에 창궐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동안 우리를 연결하던 끈을 잘라내야 했다. 서로에게는 거리가 생겼고 혼자 있는 시간은 늘어났다. 계란도 휘젓고 커피도 휘저으며 시간을 잘 나기 위해 애썼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틈 사이에는 생각이 스며들고 고독이 번졌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고독을 받아들이는 힘이 필요했다. 이 시점에서 재조명된 취미는 독서가 아닐까 싶다. 집에서, 혼자, 언제든 가능하며 홀로 서는 힘을 키워주는 취미, 책 읽기.

 

책은 사회 상태를 반영해 출판되고, 출판된 책은 다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다. 책이 곧 작은 사회다. 각자의 책 속에서 우리는 새롭게 연결된다.

 

 

 

책을 리뷰하는 잡지


 

어떤 주제나 분야에 대해 활발한 공론이 이뤄지고 있다는 증표는 '잡지'다. 잡지는 스포츠, 사진, 음악, 과학, 경제 등으로 분류되어 매주, 매달, 격월, 계절마다, 혹은 비정기적으로 쏟아진다.

 

발간되는 잡지의 주제나 빈도는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한다. 하지만 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책을 리뷰하는 잡지는 흔치 않다. 이런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속에서 <서울리뷰오브북스>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이 잡지는 후킹(hooking) 가득한 책 소개에 지친 사람들을 깊이로 초대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없이 철학, 문학, 역사, 정치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결과물을 빗어냈다. 0호에서는 특별히 김혼비, 박솔뫼, 김초엽을 초대해 감칠맛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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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김영민, 박훈, 김두얼, 조문영 등 열세 명의 편집 위원은 "멋진 서평이 화제가 되는 세상을 꿈"꾸며 서울 리뷰 오브 북스를 창간했다. 책에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하거나 칭찬 일색인 기존의 서평을 꼬집으며, 과장이나 허풍이 심한 책에는 주저 없이 비판의 칼을 들이댈 것이라 선언했다.

 

책을 리뷰하는 책을 읽는 것은 무슨 소용일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서평을 읽는 것은 이미 필자를 통해 걸러진 통찰을 찍어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이다. 물론 직접 읽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 방법도 달콤하고 중독성 있다. 서평을 나침반 삼아 중심을 잡고 해당 책이나 관련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값진 일은 책에 대한 새로운 공론장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등장을 환영하는 기쁜 마음으로 소개 글을 쓴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번 달 실험적 성격의 0호를 내고, 2021년 3월 본격적으로 1호를 발간할 예정이다.

 

 

 

왜 '서울' 리뷰 오브 북스인가?



내가 이 잡지를 처음 접한 것은 텀블벅에서다. 하도 텀블벅을 자주 들어가서 웬만한 유혹에는 끄떡없는 나를 펀딩 페이지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책 제목이었다. 그냥 '리뷰 오브 북스'도 아니고 굳이 제목에 서울을 붙인 이유가 궁금했다. 홍성욱 편집장은 '편집장의 말'에서 책 제목 선정의 이유를 간접적으로 밝힌다.

 

그는 서평의 역사를 소개하며 1963년 <뉴욕리뷰오브북스>가 창간되고, 뒤이어 <런던리뷰오브북스>가 창간되었다고 설명한다. 두 잡지는 영향력 있는 서평지가 되어 묻힐 뻔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했다.  '멋진 서평이 화제가 되는 세상'을 추구한 13명의 편집위원이 두 잡지의 정신을 이어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절차다.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제목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서울'이 붙었다고 해서 서평 하는 책이 한국 저서에 국한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해외 저서와 그 책에서 소개한 사례를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입해 풀어내기도 한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서평 그 자체로 사회를 연결한다.

 


 

2020: 이미 와 버린 미래



2020년 모든 분야에서의 주요 이슈는 단연코 코로나바이러스다.

 

도서 트렌드도 이 바이러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전염병 관련 책이 개정되거나 새로 나왔으며, 근거리에서 목격한 코로나 전쟁의 참상을 풀어낸 책도 나왔다.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필자들도 증가한 수요를 반영했다. 정치, 경제, 역사, 건축에 대한 책으로 코로나를 경유해 풀어냈다.

 

내용이 코로나가 전부인 것은 아니다. 기회 평등, 동아시아 정세, 빈곤, 자본주의, 한국전쟁 등 책에 집약된 사회를 마주했다. 필자들이 쓴 논평을 통해 사회의 일기를 몰아보고, 잘 모르고 놓쳤던 사회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갖게 됐다. 지난 일을 반추하며, 일어날 일을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한 연습을 할 수 있다.

 

김홍준 편집위원은 이 책을 펴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 있으나 우리가 아직 인지하지 못하는 현실일지도 모르겠"다고 하며, "현재와 과거 속에서 활동하는 미래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실험해 본다고 했다.

 

  

 

책으로 바라본 코로나의 일면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코로나의 다양한 일면을 놓치지 않는다.

 

김준혁 편집 위원은 그가 선택한 책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로 전염병을 정치 문제와 연관 지었다. 18세기 사람들은 황열병의 원인으로 '감염설'과 '환경설'을 주장했다. 각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원인을 내세웠다. 김준혁은 "감염병은 산업과 건강을 동시에 돌볼 수 없다는 딜레마"를 보여주고, "이 딜레마를 누군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에 대한 공포로 이득을 취하는 자가 누군지 묻는다.

 

홍성욱 편집 위원은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 외 6권의 책으로 코로나와 정치를 잇는다. 의 "방역은 과학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을 나누는 경계를 넘나들면서 적절한 지점으로 수렴한다"고 하며 "팬데믹 시대의 숫자는 그 자체가 방역이자 정치"라 역설했다. 확진자 수가 증가하는 것을 보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 다시 감염자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선인장 끌어안기'라는 짧은 소설을 통해 코로나바이러스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어떤 물건에도 닿을 수 없는 접촉 증후군을 앓는 건축가 파히라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주인공은 사람과 접촉도 하지 못해 휠체어에 앉아있는 신세로 집을 구조를 전부 접촉을 피할 수 있게 설계했다. 김초엽은 파히라와 그를 보조하는 로봇, 그리고 그와 비슷하게 접촉 증후군을 앓는 소영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빛의 속도로 달릴 수 없다면>에서 보여준 특유의 감성적인 SF를 되살렸다.

 

 

 

물성과 디지털 사이


 

이 책에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김영민 교수의 짧은 소설인 '이것은 필멸자의 죽음일 뿐이다'이다. 이것만 믿고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글도 전작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보여준 유머와 혜안을 잃지 않았다. 그는 책의 물성과 가치, 대학 생활과 학문 연구의 고단함을 자조적으로 진술한다.

 

'필멸자의 죽음일 뿐이다'는 책의 시점에서 대학원 교수인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책을 주문하고, 그렇게 주문한 책을 읽지 않고 쌓아놓는 현상을 집어낸다.

 

하지만 그 책 자신은 교수가 도둑질해서 '어렵게' 갖게 되었다며, 자신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교수의 죽음 뒤에 책이 뭉텅 썰리며 PDF로 전환되는 상황을 제시하며 디지털로 옮겨가는 시대 책의 물성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게 한다.

 

 


2020년 올해의 책


 

글을 마치기 전에 나도 2020년 올해의 책을 꼽아볼까 한다.

 

사실 시간이 많았던 것에 비해 별로 책을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읽은 것 중에 인상적인 책은 [GV 빌런 고태경]이다. 영화 감독이자 작가인 정대건이 지은 책이다. 제목의 GV 빌런은 영화 GV(Guest Visit) 질문 시간에 자신의 학식만 강조하는 불필요한 질문을 일삼으며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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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영화 감독 조혜나의 한탄으로 시작한다. 괜히 제 발로 고생길에 들어왔다고, 이게 전부 자신의 인생 영화 <초록사과>때문이라 한탄한다. 혜나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가 쫄딱 망하고 자존감이 바닥인 상황에서 영화계에서 유명한 GV 빌런을 조우한다.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GV 빌런을 신명 나게 씹어대던 차에, 그가 <초록사과>의 조감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인생 영화 조감독이었던 그가 지금은 왜 빌런이 되었는지 흥미가 생긴 혜나는 그 사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일명 GV 빌런, 고태경의 일상을 따라간다.

 

영화관에서 고태경은 '빌런'이라기보다 파수꾼이었다. 관람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을 꾸짖고, 직원도 놓친 영사 문제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지적했다. 혜나는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날카로운 질문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영화를 매개로 그와 교감하게 된다.

 

그리 무게감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읽고 있다 보면 공감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극장을 좋아하는 관객으로서 극장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쉽게 않기에 더 마음이 가는 책이기도 하다.

 

"2022년에 충무로에 서울시네마테크가 개관한다고 하잖아. 그때에도 우린 극장에서 만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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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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