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사랑 ② [영화]

글 입력 2020.12.20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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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포스터.jpg

 

 

영화 속에서 현수의 사랑은 어머니를 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수의 모든 이유는 어머니로 귀결된다. 현수가 정체를 고백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어머니에게 있다. 현수는 작전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외면한 조직 대신 어머니의 장례를 치뤄준 재호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다.

 

연출에 사용된 대표적 색상 중 하나인 파랑은 언뜻 보면 현수를 나타내는 것 같지만 정확히는 변화를 의미한다. 특히 파란빛이 돋보이는 장면은 최선장 씬인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현수의 모습은 그가 재호의 곁에서 점점 불한당으로 변모해감을 보여준다.

 

이와 반대로 둘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변함없이 노란빛을 강조하면서 더욱 끈끈해져 가는 둘의 감정적 연대를 강조한다. 현수의 “그래도 나는 형 믿어요.”라는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 홀로 남은 현수에게 재호는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 된다.

 

반면 재호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단순하다. 바로 현수에 대한 사랑이다. 사실 영화는 초반부터 관객에게 색을 통해 이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욕망을 상징하는 빨강이다. 이 색은 주로 재호의 빨간 머스탱으로 등장하는데 재호는 차를 끌고 출소하는 현수를 마중 나가고, 조수석에 현수를 태우고 작업을 다닌다.

 

하지만 병갑을 통해 현수가 경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재호는 과거 현수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진다. 이때 감독은 재호의 회상 속에서 미화된 장면을 통해 재호에게 각인된 현수의 이미지를 관객들에게 일차적으로 공유한다. 줄곧 은유적으로 표현되던 재호의 감정이 플롯의 두 번째 변주와 함께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후 어머니를 잃고 괴로워하는 현수를 어딘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전과 달리 회상 속의 재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현수를 지켜본다. 영화는 진짜 재호의 표정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해석의 여지를 제공함과 동시에 재호에게 생긴 감정적 변화가 재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이 없는 재호는 어머니에 대한 현수의 사랑을 간과했으며, 본인의 마음도 알아채지 못했다. 과거 현수의 고백을 듣는 재호의 모습에서 디졸브 되며 파란 정장을 입은 현재의 재호로 넘어오는 장면은 관객에게 재호에게 찾아온 변화의 신호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믿음이 깨지기 시작한 재호는 이제 현수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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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갑과 재호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사이로 병갑은 재호를 자신의 삼촌보다도 더 가족처럼 생각한다. 재호와 자신 사이의 유대감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병갑은 어느 날 나타나 재호를 휘두르는 현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병갑에게 현수는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재호와의 세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지만 재호는 그런 현수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면서 병갑의 불만은 더욱 커진다. 그렇게 병갑이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재호에 대한 짝사랑은 현수로 인해 직접적으로 발현한다.

 

늘 같은 세상에 머무리라 믿은 재호에게서 변화의 씨앗을 발견한 재호는 그 시발점이 된 현수를 떼어 놓고 싶어 한다. 천팀장에게 둘의 사진을 보낸 병갑의 배신은 재호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계획한 천팀장은 목적이 분명하다. 한재호를 감옥에 집어넣는 것. 천팀장은 작전을 위해 현수를 무자비하게 이용한다. 선을 대표해야 할 천팀장은 재호를 쫓는 과정에서 불한당으로 변모한다. 이는 재호에 대한 사적 감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천팀장의 서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편집된 에필로그 장면이 필요하다. 짐을 정리하던 현수가 서랍에서 젊은 시절의 천팀장과 재호의 사진을 발견한다는 내용인데 이는 과거 잠입조로 투입되었다가 도리어 자신이 감겼을 젊은 천팀장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러한 둘의 과거는 영화 초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 장면에서 ‘여전히’ 아름답다는 재호의 인사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재호에 대해 잘 아는 천팀장은 그에게 조금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현수를 잠입조로 골라 보내면서도 재호와 현수가 감정적으로 엮일 거라고 상상조차 못한다. 자신이 겪은 재호는 그런 게 불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갑이 보낸 사진 속 과거 자신과 똑같은 구도로 마주 보고 있는 재호와 현수의 모습에서 천팀장은 둘의 관계, 정확히는 재호의 진심을 눈치챈다. 천팀장의 믿음이 깨진 순간이다.

 

서사의 중심이 되는 네 인물이 감정을 자각하고,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관계의 종말은 시작된다. <불한당>은 누아르라는 장르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사랑이 가진 파괴력을 역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사랑과 배신의 서사 속 네 사람은 각자의 목적을 향해 끝까지 치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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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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