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회색빛] 과거가 현재로 날아온다

필름카메라를 좋아하는 이유
글 입력 2020.12.14 09:1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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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그렇게 됐다. 나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필름 카메라’가 뉴트로 유행이 되기 훨씬 이전부터 좋아해 왔으니,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라는 표현에 적격인 셈이다.


본체 카메라를 좋아해 캠코더, 디지털카메라, DSLR, 여러 기기를 써보았지만 내게 필름 카메라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없었다. 사실 좋아하는 무한한 이유 중에 끌림 하나만으로 사용해온 게 팩트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너는 왜 필름카메라를 좋아해?”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하나의 견고한 이유쯤은 말하고 싶었다.

 

다른 여느 때보다 많은 결과물을 건져낼 수 있던 올 하반기에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냈다.

 

 


흩날려진 과거가 내게 ‘추억’이 되어 다가온다.



통상 사진의 존재 이유 또한 이러하다. 사람들은 과거를 음미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보고 또 본다. 필름 카메라 역시 이와 같은 기초적인 기능을 한다. 하지만 필름은 하나의 정갈한 과거 한 칸이 아닌 천방지축의 영상 한 편을 보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핸드폰 속 앨범을 들어가 ‘X월 X일’의 사진을 찾아 과거를 더듬는다. 각각의 사진은 그날의 기억을 선명히 상기시킨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끊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대로 인화된 필름은 각기 다른 곳에서 한데 모여 탄생된다. 오랫동안 묵혀둔 필름을 맡겼을 땐, (특히 날짜를 표시하는 ‘데이터 백’ 기능이 없는 카메라의 경우는 더더욱) 언제 찍었는지 몰라 멈칫하게 되는 순간들이 튀어나온다.

 

아까와 달리 갑작스레 맞는 사계절의 옷은 각 계절의 분위기를 흐릿하게 떠올리게 한다. 은은히 펼쳐지는 기억만큼 그때의 날씨, 사건, 감정이 하나 둘씩 연상된다.


야속할 만큼 깔끔하지 못한 사진은 연상 범위를 더욱 넓힌다. 도통 어디서 찍었는지 모를 사진부터, 손가락이 피사체를 모두 가려버리는 사진까지, 객관적으로 보면 ‘못 나온’ 사진투성이지만 그것이 모두 모여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다가오곤 한다.

 

다 찍은 필름이 통에 담기기 직전 휘리릭 소리를 내며 감기듯, 흩날려진 과거는 추억이라는 통 안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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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는 정중앙에 아이스크림을 찍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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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잘 못 말아 타들어가버린 사진


 

추억.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추억’이라고 부르는 단어가 시각화 된다면 그건 바로 필름일 것 같다. 김이나 작사가는 저서 ‘보통의 언어들’에서 기억과 추억을 이처럼 표현한 바 있다.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져 나온 디지털 사진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어했던 바도 이와 유사하다. 내게 필름 카메라는 기억 자체의 나열이 아닌 서사성 있는 스토리를 제공한다. (줄어드는 필름이 아까워 한 장씩 정성스레 찍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미화성이 가미된 스토리라는 점은 인정한다)

 

사물과 인물에 구애 없이 느껴지는 생동감은 그날이 어땠는지,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그때의 우리가 어땠는지 알려준다. 특히 인물 사진에선 피사체의 표정과 몸짓이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몽글거림까지 곁들어진다.

 

하나의 상황에 필름을 덮어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 이 이유만으로도 필름에 끌리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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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2020년의 여름을 기억한다


 

과거는 붙잡아둘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그 시간을 놓아줘야만 한다. 하지만 기억을 놓기 전 어느 색을 섞어 저장소에 보관해둘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필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동으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색채가 뿌려져 저장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그것을 보면 된다. 그래서 가끔은 불시에 전송받는 필름이 선물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전문필진 박수정 tag.jpeg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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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김혜인
    • 잘 읽었습니다 모든 시간을 놓아주어야 한다..인상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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