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인류는 역사를 반복한다 동물농장 [도서]

인류는 계급과 불평등,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글 입력 2020.12.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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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이다. 작품들 에서 고찰과 예리함, 날카로움이 느껴진다. 그 차가운 날은 사회를 향해, 독자를 향해, 그리고 저자 스스로에게 향한다. 그는 글로써 부조리한 사회에 대응했고,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가능성을 계산해 경계할 점을 짚어 내 주었다.

 

동물농장이 독서 모임 도서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그의 글을 읽어 보았다. 15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었지만, 집약적이고, 핵심적이고 알찼다. 문장 하나하나 모두 의미와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 눈길이 오래 머무는 곳이 많았다. 1984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그가 독재 정권을 묘사하는 방식은 탁월하다. 통제의 범위에 있는 국가가 생명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 중세의 ‘피의 사회’를 상기시킨다. 숨이 막히는 갑갑함, 의심, 잔혹감과 그 긴장감이 생생히 느껴진다.

 

동물들은 농장 주인 존스를 쫓아내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며 일곱 계명을 만든다.

 

1. 두 발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모두 동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동물들 간의 신체적, 정신적 차이, 사고관의 차이로 불평등은 점점 커져 간다. 머리가 좋은 돼지들이 우위를 점했고, 차별과 독점에 대해 말, 닭, 양, 당나귀, 염소들은 그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상황을 직시한 동물은 벤자민 뿐이었지만 그는 대체로 방관적이다. 돼지들은 자신들의 욕심, 욕망에 맞추어 계명을 바꾼다.

 

1. 네발도 좋고, 두 발은 더욱 좋다.

(중략)

4.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깐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된다.

5. 어떤 동물도 지나치게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6.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일곱 계명들은 교묘하게 바뀌었고, 기존의 가치는 사라졌으며 점점 지워져 갔다. 소설의 끝에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라는 한 계명만 남아 있다. 농장은 결코 존스 시절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다. 잠깐의 자유는 곧 돼지들을 위한 노동, 착취로 변질되었다. 돼지들은 점점 더 철저하게 인간을 닮아갔고, 종래에는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동물들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생산물의 잉여로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왕과 백성으로 대표되는 계급이 발생한다. 시민혁명, 부르주아의 성장 등을 통해 계급을 타파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봉건제가 아닌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자와 가난한 자라는 또 다른 종류의 계급이 발생했다. 왕과 백성, 자본가와 노동가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근본적인 평등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같다.

 

근본적인 평등.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아니요’다. 암흑 속에서 감각 체험을 진행하는 ‘어둠 속의 대화’ 전시에 참여한 적이 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는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들에 의존해야 했고,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점차 어둠 속에 익숙해지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목소리만이 다른 사람을 구별하고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말, 마음에 집중하게 되면서,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논외의 대상이 되었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을 보는 관점이 바뀌니 나 또한 허례의식 없이 솔직하고 담백한 말을 할 수 있었다.

 

이전에 평가는 시험, 승진 등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 특정 상황 즉, 선별 작업이 필요할 때만 이루어 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에 참여한 후 ‘평가’에 관한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인식하는 순간, 평가도 시작된다. 사람은 오관을 이용해 정보를 얻고 매 순간, 상황, 타인,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평가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농담 거리이든, 진지한 시험이든 간에 인식은 평가로 곧장 직결된다. 평등함은 이데아 속의 허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많은 차이와 우열이 존재하며, 안타깝게도 인간은 이를 너무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불평등’ 자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권력자가 자신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그 장치가 민중, 교육이라고 생각했었다. 5.18 민주화 운동, 프랑스 혁명, 등 민중의 대항은 역사적으로 많은 부조리함을 조금씩 없애 왔다. 민주화와 서민을 위한 복지, 제도들은 선조들이 투쟁을 통해 얻어낸 것이다. 교육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기술의 발전, 생활의 진보를 앞당긴다. 교육을 통해 깊고 넓은 사고를 할 수 있는 민중이 모이면 권력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중국의 문화 대혁명을 알게 되면서, 그 믿음은 조각났다. 효율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마오쩌둥의 사상에 따라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광기의 시대가 펼쳐졌다. 각종 유적지, 도서 등 전통의 것은 파괴되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인 어른과 교수에게 반항했다. 예술은 탄압받았다. 기존의 엘리트 계층, 지식층은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광기에 휩쓸린 민중은 그저 학살자, 범죄자에 불과했다. 마오쩌둥이 주입시킨 광기, 세뇌 교육은 잘못된 교육이 얼마나 큰 파괴성을 보여 줄 수 있는지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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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에서 가장 성실히, 많은 일을 했던 복서는 나쁜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내가 더 일하면 돼”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전쟁, 노동, 등 농장의 모든 일에서 그는 많은 공을 세웠고, 다른 동물들의 모범이 되었지만,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노화와 고된 노동으로 쇠약해진 그에게, 스퀼러는 치료를 해 준다며 그를 도살장으로 보낸다. 오직 벤자민이 마차에 쓰인 ‘도살장’ 글씨를 보고, 동물들에게 그가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고발한다. 동물들은 이에 동요하지만, 곧 나폴레옹과 스퀄라를 비롯한 돼지들의 거짓 연설에 넘어가 다시 잠잠해 진다.

 

나폴레옹이 왜 복서를 도살장으로 보냈는지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탐욕, 돈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복서를 팔아 넘긴 돈으로, 위스키를 마련했겠지, 짐작했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 대가만 바라고 행한 조치라고 보기에는 너무 과했다. 곧, 돼지들에게 복서가 또 다른 정치적 정적임을 알았다. 복서는 동물들의 우상이었다. 능력이 뛰어나고 성실했다. 그런 그가 쇠퇴해가고, 아무런 복지, 혜택도 없는 상황에서 동물들은 자신들의 상황과 비교하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할 수 있었다. 즉 그는 반란의 도화선이었다. 그들의 교활함에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복서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나는 수많은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스노볼이 다시 돌아왔더라면, 개가 새끼를 낳지 않았더라면, 암탉의 반란에 다른 동물들도 동조해 주었다면…….특히 벤자민이 행동했더라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많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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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벤저민만이 자기가 살아온 긴 생애의 모든 일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동물 농장이 옛날보다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고는 굶주림과 고난, 좌절이야 말로 삶의 불변의 법칙이라고 했다.’

 

벤저민은 어느 면에서 보면 겁쟁이였고,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똑똑했다. 종속적인 관계가 여전히 생겨날 것임을,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는 항상 존재함을 이미 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에서 나는 복서였고, 스퀄라였으며, 양들이었고, 까마귀, 몰리, 벤저민이었다. 현실을 담은 우화는 진지하고, 숙연했다.

 

 

[박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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