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도, 굿 엔드! [사람]

하루를 잘 맺기 위한 나만의 '리추얼'
글 입력 2020.12.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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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하루는 어떻게 끝나는가?
 


나는 집중력이 굉장히 약한 데다 간헐적으로 집중하는 사람이라 일상도 마찬가지로 정신없이 보내는 편이다.

 

얕은 집중력으로도 정해진 일을 어떻게든 해내려다 보니 계속해서 무언갈 하며 머리를 돌리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다가오면 머리에 쥐가 난 것처럼 멍하다. 몸은 녹초가 되었는데 머리는 아직도 팽팽히 돌아가는 불쾌한 느낌으로 침대에 누우면, 그제야 ‘오늘 하루는 어떻게 끝난 거지’라는 자조 섞인 물음을 던진다.


이런 상태로는 잠들기 힘들고, 잠든다 한들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리기 십상이다. 악몽을 꽤 자주 꾸다 보니 자연스레 다음날도 개운히 하루를 시작하기 힘들었다. 제대로 맺지 못한 하루가 질질 끌리며 다음, 그다음 날까지 따라다니기 때문일까.


그래서 지난봄부터는 하루를 온전히 맺고, 새로운 하루를 활짝 맞이하기 위해 나만의 행동습관을 만들며 지내는 중이다. 부디 지금의 혼란한 마음이 잘 진정되어 꿈에서 나를 괴롭히지 않도록, 다가오는 아침을 기쁘게 맞을 수 있도록!


지극히 사소하지만 중요한, 나의 습관을 소개한다.

 

 

 

책상 정돈은 내일을 위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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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물건이 훨씬 많은데, 최근 책장이 새로 생기며 책상이 깨끗해졌다.

 

 

먼저 할 일을 마무리하면 책상을 정리한다. 필요한 물건을 미리 챙겨두고, 어질러진 물건은 제자리에 가져다 둔다. 이때의 정리는 객관적으로 깔끔한 정도는 아니고, 물건이 널브러진 것보다 나름의 자리를 찾아 정돈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정도다.


아침에 눈을 떠 가장 먼저 마주하는 책상이 어지러우면 마음도 따라가기 때문에, 책상을 정리하는 것은 다음 날을 위해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습관 중 하나가 되었다.


 

 

잠시 숨 돌릴 틈


 

정리가 끝나면 종일 긴장했던 목과 허리를 풀어준다. 일자목과 허리 디스크라는 현대인의 고질적 질병은 내게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유튜브 영상을 따라 3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다 보면, 벅차게 달려온 시간에 잠시 숨 돌릴 틈을 찾을 수 있다.


하루의 1분은 너무 빨리 지나가는데 자세를 유지하는 30초는 왜 이리 길게 느껴지는지 의문이 생기지만, 몸을 멈추니 머리에 빈자리가 늘어나고 생각이 더뎌지니 정신도 이완되는 듯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가 흐르는 속도에 서서히 제동이 걸리는 느낌이다.

 

 

 

식물에 물뿌리기 ; 하루를 닫는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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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분이 두철이, 큰 화분이 환기다.

 

 

어느 정도 몸이 개운해지면 나와 함께 사는 식물에 물을 뿌려줄 차례다. 이 친구들의 이름은 환기와 두철이. -어쩌다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설명하기엔 밤이 너무 짧으니 그저 이들의 이름을 귀엽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두철이는 공중 습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환기는 공중습도에 예민해 물을 자주 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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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잔뜩 뿌려준 후 잎에 맺힌 물방울을 보면 왜인지 뿌듯해진다.

 

 

하루에 다섯 번, 아침-오전-점심-오후-밤에 한 번씩 물을 분무해주는 탓에 환기에 다섯 번째 물을 뿌려주는 행위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儀式)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잠옷은 잘 때만 입기. 나와의 약속


 

밤사이 무사해야 한다며 물을 흠뻑 뿌려주고는 잠옷을 갈아입는다. 예전에는 집에 있을 때 항상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잠옷을 입고 있는 시간도 함께 길어지니,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져 그 후로 잠옷은 잠들기 직전에 갈아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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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면의 촉감은 한껏 긴장했던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키고 당장 이부자리에 몸을 던지고픈 마음을 부풀리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더, 할 일이 남았다.

 

 


밤과 함께 쌓이는 문장


  

앞서 이야기했듯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르고 보낸 하루를 온전히 마무리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비우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데, 방 한편에 붙여둔 나만의 목록을 읽는 것이다.


아침과 밤으로 나뉜 메모지에는 나의 마음과 가족의 건강을 바라는 글, 사랑하는 이들의 평온한 일상을 바라는 글이 쓰여있다. 이 목록은 몇 주간 악몽에 시달리던 지난여름, 제발 벗어나고픈 절박한 마음에 쓰기 시작했고, ‘부디 잠자리가 평안하길’로 시작되는 문장은 밤과 함께 쌓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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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을 찬찬히 읊다 보면 잊고 있던 이들이 생각난다. 그저 괜찮을 거라 믿고 생각 저편에 밀어둔 순간들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도 생각난다. 언짢았던 기억이 불쑥 머리를 내민다.


그럴 때면 목록에 적힌 문장을 더듬으며 마음을 어루만진다. 목록을 천천히 읽는 것은 감정의 구덩이에 빠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미처 봐주지 못했거나 정리하지 못한 마음을 잘 정리하기 위해서니까.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었구나’, ’내 마음은 그랬구나.’라며 지난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헤아려주지 못한 내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는 시간이다.


인정하고 나면 별거 아닌 일들도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은 그런 일들을 마주할 근거 없는 용기가 생기기도 하니, 툭- 툭- 마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그 자리에 행복이나 기쁨, 사랑을 보관할 준비를 차근히 해나가고 싶다.

 

 

 

감사하기


 

목록 읽기의 마지막은 ‘감사하기’다.


틈틈이 감사하며 살고 싶지만 어려운 걸 알기에, 모든 일과의 가장 마지막에 하루의 감사한 일들을 생각한다.


‘감사’는 정말 신기하다. 처음엔 스스로 낯뜨겁기도 했으나 사소한 부분이라도 감사한 마음을 떠올리고 표현하다 보니 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던 일상을 매번 다른 시선으로, 다채로운 빛으로 그득히 채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어난 순간부터 시간을 더듬어가면, 마치 퍼즐 조각처럼 감사의 조각이 모여 하루가 완성된다. 마지막 조각은 ‘오늘도 편히 잘 수 있는 잠자리가 있음에 감사’다. 너무 당연해서 잊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무엇보다 생각할 여지 없이 바로 다음 행선지가 침대인 내게 부합하는 멋진 문장 아닌가!


이렇게 ‘감사하기’까지 끝내고 나면 비로소 침대에 누워 크게 숨 들이켜고 잠을 청할 수 있다.

 


 

나를 나로 가득 채우는, 리추얼


  

요즘엔 자기 전에 어려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보다 고요한 상태에서 이러한 나만의 행동 패턴을 따르려 노력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나를 위로하기보다 ‘나’를 ‘나’로 가득 채우는 행동들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리추얼’이라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자신만의 행동 습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을 돌본다는 포괄적 의미를 지녔는데, 왠지 내가 자기 전에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이 리추얼 문화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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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리추얼. 내가 나에게 건네는 피드백이자, 어느 것에도 휩쓸리지 않고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아닐까.

 

하루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시작했던 리추얼이 나를 더 알아가고 일상을 온전히 살아갈 용기를 조금씩 북돋아 주는 걸 경험하고 있으니 언젠가 이 리추얼이 제대로 자리 잡는다면 누군가에게 확신을 가지고 그만의 리추얼을 만들도록 응원하고 싶다.


소설 속 누군가는 부디 잘 자기를 바라는 마음에 책방 이름을 ‘굿나잇’으로 지었다 한다. 나의 리추얼은 어떤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


길게 생각할 필요 없이, '굿 엔드(good end)’라 부르기로 했다. 좋은 마무리는 곧 좋은 시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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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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