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의 무균실에서 잠든 나를 깨우는 그림의 터치 -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

글 입력 2020.12.0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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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터무니없을 정도로 축약하면, ‘사랑’과 ‘죽음’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사랑을 꼽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나 가족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남을 만나 다시 가족을 꾸리는 일련의 러브스토리가 우리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은 인생이 사라진 뒤에 오지만, 그럼에도 인생 안에 짙은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어서 꼽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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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장범준이 ‘사랑 때문에 노랠 연습하는 건 자연의 이치’라며 노래를 불렀던가, 순전히 감성적으로 꼽은 사랑과 죽음이란 키워드는 예술과 가장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나 보다.

 

다만 죽음을 그리는 예술은 사랑 노래의 예술에 견주어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로부터 현저히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의 저자는 이에 개의치 않고 죽음이 담긴 그림을 책 한 권에 알차게 모아 보여준다.


다양한 예술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림은 단 한 장에 압축되어 있어 얇은 면에 담긴 다양한 것들을 찬찬히 풀어보기 좋은 매체다. 그래서 저자가 죽음을 풀어내는 주재료로 그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이 남기고 간 것들 삼부로 구성된 책을 다 읽고 나면 관 속에 나직이 한번 누워본 느낌이다. 그러니까, 초중고 학생들이 가곤 하는 - 관에도 누워보고 유서도 써보는 - 그런 죽음 체험을 책으로 다녀온 기분이 든다.


 

누구라도 평소에 마지막을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시작하면서 또 과정 중에 그 끝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비록 힘든 일이 있어도 여러 크고 작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내일에 한 걸음 다가가는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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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가장 먼저 클림트의 <죽음과 삶>을 보이며 두려움을 다독인다.

 

어딜 가서 누굴 붙잡고 ‘있잖아.. 나 언젠가 죽을 거라는 게 두려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다. 차고 넘치게 내재되어 있지만 내뱉지 못해, 이젠 보이지도 않는 마음 한구석에만 꿀렁이던 수많은 사람의 어지러운 감정을 알아서 불러내 잠잠히 위로한다.


나는 아직 현실 속 주변인의 죽음을 겪어본 적이 없다. 책은 그림 속 다양한 상황을 통해서 부모의 죽음, 자식의 죽음, 애인의 죽음 등 여러 죽음의 모습들을 자극적이지 않게 대신해서 보여준다.

 

그야말로 죽음의 무균실에서 자라왔던 나는 성인이 되던 해에 죽음과 가장 비슷해져 본 적이 있다. 처음 타본 별천지 같은 서울 지하철에서 의식을 잃은 것이다. 눈이 흐릿해지다가 이내 감기며 기억이 사라지는 경험을 해본 뒤, 죽음의 무균실 속 창문을 조금씩 열어가며 죽음의 개념을 조금씩 깨쳐 가고 있다.

 

책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도 그 환기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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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책을 읽기는 어렵지 않다. 미술 작품과 영화 내용을 계속해서 교차해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영화도 죽음을 심심치 않게 목도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니까 좋은 사용인 것 같다.

 

반면, 아무리 조곤조곤한 논조로 설명을 듣더라도 막상 죽음을 다루는 얕은 사유들을 한꺼번에 마주하니 조금은 버거웠다. 유한성에 무지한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계속해서 유한성을 자각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따라서 침대맡에 놓고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현대 사회는 휴지기를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 개인의 소멸 역시 사회의 연속성을 조금도 방해하지 못한다. 마치 그 누구도 죽어나가지 않는 듯. 도시에서는 모든 게 각각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필립 아리에스, [죽음 앞의 인간]

 


사실 우리나라의 모습은 죽음과 참 가깝다. 유명인의 자살이나 살인소식, 그리고 사망소식은 매일같이 아니 초분단위로 대서특필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도 참 많다. 하지만 그뿐이다. 단지 죽음이라는 단순 단어에만 가까워졌을 뿐, 죽음의 본질과는 그토록 멀다.

 

그런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와 같은 죽음 안내서가 꼭, 꼭 필요하다.

 

 

*
 
죽음을 그린 화가들, 순간 속 영원을 담다
- 삶이 죽음에 묻다 -
 

지은이
박인조

출판사 : 지식의숲

분야
미술일반/교양

규격
신국판변형(142×210㎜)

쪽 수 : 284쪽

발행일
2020년 11월 20일

정가 : 15,800원

ISBN
979-11-90927-98-7 (03600)
 
 
[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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