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가 필요한 작금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도서]

당신에게도 한 편의 시를 권한다.
글 입력 2020.12.01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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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친한 친구가 생일날 시집을 선물로 받았다. 무얼 받았는지 내가 여태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선물을 받은 그 친구의 반응 때문이다. 평소 책에 흥미가 없던 그 친구는 시집을 선물해 준 상대방이 자신을 곤욕스럽게 만들기 위해 시집을 선물했다고 생각했다. ‘시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대뜸 시집을 선물하다니’로 문장을 시작한 친구는 나를 붙잡고 한참 하소연했다. 그리고 결국 시집은 친구의 냄비 받침대가 되어 나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나는 친구의 취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부린 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반대로 시집을 선물한 상대방의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집은 쉽게 줄 수 있는 선물이 아니다. 받는 사람의 성별이나 연령대 등 고려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집을 선물한 상대방은 친구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자세히 적을 순 없지만 당시 친구는 집안사로 인해 매일같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다. 시집을 선물한다는 게 조금은 도전적일 수 있지만, 가끔 시를 권하고 싶을 때가 있다. 장황한 위로나 덕담보다도 한 편의 시가 더 도움 되는 순간들.

 

보통 우리는 12년 동안 학교에서 시를 배운다. 연을 나누고 각 연마다 숨어있는 의미를 공부한다. 주체적인 해석이 아닌 암묵적으로 정해진 것들을 주입받는다. 우연히 본 한 편의 시로 나는 시에 막연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나태주

 

 

어떤 해석도 요구되지 않는 이 시는 단숨에 나를 매료시켰다. 그래서 한동안 메모지에 적은 시를 필통에 넣고 다니며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들여다보곤 했다. 어중간한 성적에 적당히 친구들과 어울리는 내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했을 때, 스스로가 너무 별거 하찮아 보일 때마다 시를 곱씹어 읽었다. 시가 나에게 건넨 최초의 위로였다.

 

어느 드라마에서 <풀꽃>이 언급되며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을 때, 나는 이 시가 주는 위로의 힘을 실감했다. 모두 저 짧은 시에 울림을 느끼고 위로받은 것이다. 시는 이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는 은유와 함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상적인 것들을 작가가 느끼는 은유로 풀어낸다.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독자는 저마다 같은 구절을 읽고도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 있다. 그래서 시를 읽는 행위는 사고 확장의 일종이라고 한다. 독자가 자신의 삶에 비추어 다양한 해석을 하듯, 시인 역시 같은 주제일지라도 그만이 볼 수 있는 시적 순간을 포착해 내기 때문이다.

 

시집을 읽으며 영화 <일 포스티노>가 떠올랐다. 어부의 아들이 그가 살고 있는 작은 섬에 온 시인과 만나 우정을 쌓아가며 시의 세계와 마주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영화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의 도움으로 시에 눈을 뜨게 된 마리오는 베아트리체와 사랑에 빠지는데 은유로 그녀에게 그의 마음을 전달한다.

 

진부한 표현 밖에 할 수 없었던 그에게 은유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인식하는 세계를 새롭게 나타낼 수 있는 훌륭한 표현기법이 되어주었다. 또한 마리오에게 은유는 감정을 전달하는 표현기법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고의 장이 되었다. 그에게 또 다른 세상을 보는 시각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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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세계 속에서 마리오는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그동안 무미건조하다고 느낀 삶에서 벗어나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

 

여기저기서 2020년은 망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팬데믹 사태로 일상에 많은 제약이 있었고, 그로 인한 불편함이 우리의 한 해 내내 질기게도 따라다녔다. 올해를 마무리 짓는 지금도 종식은 기약이 없다. 유행의 장기화로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상처가 많은 한 해였다.

 

당신에게도 이 책이, 책에 수록된 여러 시중 어느 한 편이 다가와 울림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게 위로가 된 시 한 편을 소개하며 책장을 덮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담쟁이-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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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 시는 찬란한 나의 편 -
 

엮은이
나태주

출판사 : &(앤드)

분야
한국시

규격
117*198㎜

쪽 수 : 260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0927-96-3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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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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