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는 나를 다독이는 세계 -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도서]

글 입력 2020.11.2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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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 시인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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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시인협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는 시 구절과 풀꽃 시인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 시인은 시의 따뜻함이 미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잘 알기에, 아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꾸준히 시집을 엮고, 소개한다.

 

시인에 대해서는 ‘풀꽃’이라는 시로만 알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구절이라 그저 그런 줄만 알았는데, 학창시절 전공 수업 중 담당 교수님이 나태주 시인을 인터뷰한 잡지 페이지를 보여주셨고, 인터뷰를 통해 ‘풀꽃’이라는 시가 아이의 아주 작고 귀한 마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그 시선을 자꾸만 엿보고 싶어졌다.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이제까지 다양한 시를 엮어 시집을 출간한 시인이, 삶을 위한 시를 모았다니! 그것도 걸작이라 불리는 시보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마음이라도 시인의 애정이 담긴 시들을 모았다니.

 

“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는 제목을 본 순간부터 이 책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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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 덧붙여진 문장들에도
통찰과 위로가 담겨있다.
마음에 닿는 구절은 줄을 긋고 표시해가며 읽었다.

 

 

시집을 받아든 순간부터 매일 가지고 다니며 틈틈이 읽었다.

 

수록된 114편의 시는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내가 네 옆에 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인생의 한낮이 지나갈 때’, ‘눈물겹지만 세상은 아름답다’, ‘오늘이 너의 강물이다’라는 소제목 아래 묶여있는데, 그저 ‘사랑’, ‘희망’, ‘위로’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마저 시인은 그 답게 담담하고 부드러운 문장으로 담아두었다.

 

그래서인지 그때그때 기분과 상황에 따라 마음이 끌리는 문장을 택해 그곳부터 읽기 시작했다. 각 시에는 나태주 시인의 짧은 감상이 덧붙여져 있는데, 솔직하고 소박한, 때로는 귀여운 감상평을 읽는 재미도 있다.

 

시인의 이러한 배려가 때론 명쾌한 단어보다 모호한 문장이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어 고마웠다.




시는 나를 다독이는 세계



시는 우리를 이미지가 보여주는 세계 너머로 안내하고, 때로는 싱그러운 청년, 때로는 회한에 젖은 노인의 마음으로 그 세상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래서 시는 나만의 세계를 그리고, 그곳에서 나를 위로하게 하는 힘이다.


114편의 시가 그려놓은 114가지 다채로운 언어의 합주를 감상하다 그 세계를 마주했다.

 

 

봄비 속에

너를 보낸다


쑥순도 파아란히

비에 젖고


목매기 송아지가

울며 오는데


멀리 돌아간 산굽이길

못 올 길처럼 슬픔이 일고


산비

구름 속에 조는 밤

길처럼 애달픈

꿈이 있었다


보내놓고 / 황금찬

 

 

책에 실린 수많은 시들 중 내 마음을 이끄는 시를 따라 봄비가 솜털처럼 내려앉는 산 구빗길 한참을 걸었다.

 

잡을 수 없는 이가 떠나가는 아픔을 가슴에 묻으며, 새순이 돋아나는 풀 바닥을 눈으로 문질렀다. 습기를 머금은 미지근한 공기가 대지의 이불처럼 나를 덮을 때 비로소 트인 숨을 내쉬고, 이 세계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 용기를 마음에 쥐여주었다.


 

집 떠나가 배운 노래를

집 찾아오는 밤

논둑 길에서 불렀노라.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펐노라.

열네 살부터 나가서 고달펐노라.

 

나가서 얻어 온 이야기를

닭이 울도록,

아버지께 이르노니―

 

기름불은 깜박이며 듣고,

어머니는 눈에 눈물을 고이신 대로 듣고

니치대든 어린 누이 안긴 대로 잠들며 듣고

웃방 문설주에는 그 사람이 서서 듣고,

 

큰 독 안에 실린 슬픈 물같이

속살대는 이 시고을 밤은

찾아온 동네 사람들처럼 돌아서서 듣고,

 

―그러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어떤 시원찮은 사람들이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간 이야기어니

 

이 집 문고리나, 지붕이나,

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디착한 수염이나,

활처럼 휘어다 붙인 밤하늘이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전하는 이야기 구절일러라.


옛 이야기 구절 / 정지용

 

 

또 다른 시는 열네 살에 집을 나가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어른아이의 시골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서, 나가서도 고달프고 돌아와서도 고달팠다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화자와 닭이 울 때까지 나가 얻어 온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골의 밤 풍경은 겪어보지도 못한 애달픔을 마치 내 것처럼 느끼게 했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어떤 시원찮은 사람들이 끝맺지 못하고 그대로 간 이야기어니...(중략)... 이것이 모두 다 그 예전부터 전하는 이야기 구절일러라’는 시의 후반부에선 이 고달픈 시절들을 무던히 덮어주는 고향의 푸근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상상하기도 힘든 그때 그 시절, 평범한 누군가의 이야기에 어째서 내 마음이 공명하는지 궁금해졌다.

 

 

 

고마운 시선들이 나를 돌보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나의 협소한 감성적 세계에 고마운 시선들이 이식되어 감정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어지기 때문은 아닐까.

 

시를 읽기 전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고, 더 깊고 풍부해진 시선으로 세상을 마주할 때, 공감이나 연민의 감정부터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세상을 살아갈 지혜와 용기를 찾을 수 있다.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기고, 후회와 미련은 툭 털어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살아가며 이런 순간의 조각들을 쌓아두는 건 나를 돌보는 일이라 믿는다.


모든 시를 온 마음으로 읽어낼 필요는 없다. 각각의 시는 각자의 손을 내밀고 있으니, 건네는 손길이 내게 달가운 것이라면 그저 손을 맞잡고 시가 열어둔 세계를 누리면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필요한 것을 만난다면, 고이 접어 가슴에 묻어뒀다 삶의 이정표마다 힘겹게 꺼내 들어 다시 큰 숨을 들이켜면 된다.


인생이라는 초행길에 기꺼이 함께할 고마운 벗이자,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세계를 가득 담은 이 시집 한 권이 내게는 그 어떤 다독임보다 든든하고, 따뜻하다. 이 다독임이 당신에게도 닿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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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에게 살라고 한다
- 시는 찬란한 나의 편 -
 

엮은이
나태주

출판사 : &(앤드)

분야
한국시

규격
117*198㎜

쪽 수 : 260쪽

발행일
2020년 10월 30일

정가 : 14,500원

ISBN
979-11-90927-96-3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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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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