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도서]

글 입력 2020.11.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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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차를 훑어본 뒤 나의 반응이었다. 물음표 가득. '단상'이라는 제목과 걸맞게 짧고 단편적인 제목들이 목차에 자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여섯 개들이 맥주팩을 마시며 시와 처절한 삶에 대해 끼적인 글' 이라던지, '음탕한 늙은이의 비망록' 이라던지.

 

단편적인 생각을 적어둔 글인만큼 굳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손에 집히는 페이지를 펼쳐들고 읽어 내려갔다. '작가 훈련'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챕터였다. 5페이지 남짓한 종이에는 그의 글쓰기 인생이 담겨 있었다.

 

솔직했고, 본인의 글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점에 대해 화도 나있는 것 같았다. 점점 격양되는 감정을 그대로 담아둔 것이 마치 술을 한 잔 마시고 쓴 것 같기도 했다. 페이지에 와인 자국이 묻어있는 느낌도 들었고. 그의 시선에 나는 흥미가 생겼고, 처음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했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_도서이미지_도서출판잔.jpg


 

 

거절에 익숙하던 사람


 

이 책을 쓴 작가 찰스 부코스키를 수식하는 말은 '미국 주류 문단의 이단아' 였다. 20세기 미국 문단 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늘 논란의 중심이 된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작품이 너무 많아서 생전에 다 출간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책은 지하신문과 문학 저널을 비롯해 음란 잡지에 수록되어 그동안 빛을 보지 못한 다양한 작품들을 담았다.

 

빛을 보지 못했다는 것은 곧 주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책 곳곳에는 그가 그의 원고를 거절당했던 숱한 순간들이 드러난다. 첫번째 챕터의 제목이 '긴 거절 편지의 여파' 일 정도니까.

 

긴 거절 편지의 뜻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찰스 부코스키의 원고 <하숙집 50곳 탐방기>를 거절하는 편지다. 보통의 거절 편지란 짤막하기 마련인데 이번의 경우 어떤 것보다 길었다면서, 부코스키는 편지의 내용을 우리와 공유한다.

 

 

부코스키 씨 귀하

 

다시금 이 작품에는 엄청나게 괜찮은 내용도 있지만 매춘부 찬양, 과음한 뒷날의 역한 모습, 인간 혐오, 자살 미화 등 그렇지 않은 부분도 복잡하게 뒤섞여 있어 출간용 잡지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특정 인간 군상을 다룬 이야기로 볼 수 있고 그 내용을 솔직하게 풀어낸 것 같습니다. ... (이하 중략)

 

 

거절편지는 거절의 의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찰스 부코스키의 글 스타일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다. 솔직하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부코스키의 필력과 별개로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 불편함을 느낄 사람들 역시 많다는 이야기니까.

 

 

 

와인병을 끼고 읽어도 좋을 이야기


 

실제로 책을 읽다보면 중간 중간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래서인지 얼핏 부코스키의 단면만 보면 지독한 술 냄새를 풍기며 음흉하기 짝이 없는 저질 언어를 내뱉는 한심한 늙은이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어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하지만 독자는 알아차릴 수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 예술가로서 지닌 열정, 방대한 지식에서 비롯한 냉철한 판단력을. 그에 대한 판단은 찰스 부코스키 그 스스로가 가장 정확하게 내렸다. (그의 자기객관화 능력으로 보아 그의 MBTI는 INTJ 혹은 INTP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내가 뭘 하는지 몰랐지만 그렇게 했다. 가고자 하는 곳에 더 치중하고 내게는 신과도 같은 단순함에 몰두했다. 천재는 단순한 방식으로 완전한 걸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잘 읽히는 문장을 쓰려고 했다. 난 그렇게 놀았다. 노는 시간이 중요하다. 수십 년간 그렇게 놀았다.

 

내 글이 받아들여진 적은 매우 드물었다. 편집자들은 대체로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한 편집자의 답신을 기억한다.

 

"대체 이건 뭐죠?"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난 내 방식대로 미쳤다.

 

 

11월부터 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한 권 한 권 격파해 나가고 있다. 고전문학이 왜 고전인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받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속성으로 공부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찰스 부코스키가 최고의 작가라고 평가받는 것과 알베르 카뮈가 최고의 작가라고 평가받는 것 사이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의 문장들은 카뮈나 셰익스피어와는 거리가 멀다. 새까맣고 흐물거리는 문장들이다.

 

왼쪽에는 와인병을 끼고 오른쪽에는 모차르트 라디오를 틀어 놓고 타자기 앞에서 죽는 것이 소망이라는 찰스 부코스키의 말마따나 그의 문장들에는 와인 냄새가 가득하지만, 알코올의 효과로 인해 독자는 술 한 잔 한 사람처럼 나른하게 부코스키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것이 나쁜가? 그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내릴지, 나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
- PORTIONS FROM WINE-STAINED NOTEBOOK -


지은이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엮은이
데이비드 스티븐 칼론
(David Stephen Calonne)
 
옮긴이 : 공민희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외국에세이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400쪽

발행일
2020년 10월 23일

정가 : 14,800원

ISBN
979-11-90234-10-8 (03840)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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