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0 노동인권영화제 [영화]

글 입력 2020.11.19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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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0일부터 11일 서울극장에서 2020 노동인권 국제영화제가 개최되었다. 9회를 맞는 이번 영화제에선 총 8편의 영화를 상영했고 7개의 GV(관객들과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영화는 픽션이 아니라 모두 다큐멘터리 영화로 실제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민중사>는 미국 역사를 민중 중심의 관점으로 다시 해석한 영화고, <조끼 하나면 충분하다>는 2018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의 과정을 취재했다. <투쟁의 계절>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이 실행한 꼬무나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외국 영화의 GV는 감독이 입국할 수 없어 다음과 같이 영상 GV나 사회자로 대체된 점이 약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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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한국 영화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 1980년대 시작된 조선업 노조의 연대기를 담은 <그림자들의 섬>부터 비교적 최근 이야기인 <보라보라>와 <례>까지 한국의 노동 운동을 훑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먼저 <보라보라>는 2019년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을 밀착 취재했다. 김도준 감독뿐만 아니라 직접 투쟁 중인 노동자 김미영, 김승화가 카메라를 잡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생활 중인 노동자들로 시작한다. 소음과 먼지가 가득하고 뜨거운 캐노피 위에서 몇 달간 농성을 벌이는 행동을 보고 그들이 얼마나 간절하고 동시에 얼마나 강한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

 

영화는 투쟁 현장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속마음, 밝은 일상의 모습도 담고 있다. 노동자가 바로 옆의 노동자를 찍었기에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사람들의 에너지가 영상을 넘어왔다. 그들의 투쟁은 단순히 정규직 전환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고 끈끈히 연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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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례>는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로 인해 사망하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에도 일하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삼성중공업 현장에서 일했으나, 삼성 직원이 아닌 하청 업체의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출근한 1,600여 명의 노동자 중 하청 노동자는 1,400여 명에 달한다. 동료를 눈앞에서 잃은 트라우마로 공황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1년이 지난 이후에도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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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는 부산 도시 철도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다루며 노동의 위계질서를 꼬집었다. 지하철 수리, 기관사, 관제실 직원, 미화원이 등장하는데 같은 노동을 하고 있으나, 자세히 보면 다르다.

 

누구는 특수 열차를 타고 선로를 점검하고 누구는 걸으면서 선로를 점검한다. 비정규직은 땀을 뻘뻘 흘려도 정규직이 사용하는 샤워실을 쓸 수 없다. 또한, 카메라는 노동자만을 취재하지 않고 지하철에서 일하길 희망하는 특성화 고교의 학생들도 관찰한다. 학생들은 지하철에서 일하길 바라는데, 면접은 하청 업체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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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의 노조 연대기와 그들의 투쟁을 그렸다. 조선업 노동자들은 발을 헛디디면 죽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다가 1987년 도시락 투쟁으로 서서히 노조 활동을 시작한다. 그제 서야 회사는 화장실을 세워주는 등 최소한의 노동 환경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후 회사가 흑자일 때도 직원들은 정리해고 당하고 김진숙 씨는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벌이는 투쟁을 계속한다. 희망 버스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적도 있었지만 제2의 노조가 생겨 노조가 분열되면서 안타까운 희생이 또 생겨난다. 사람들은 노조에 가담하지 않는 동료들을 이해하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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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인권 영화제의 키워드는 세 가지다.


먼저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 인권”


<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이 죽었지만, 누구도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회에 위계질서가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으로서의 대우는 보장되어야 한다. 인간이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안전하게 일하는 것. 하지만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태안 화력발전소 사고,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 사망 등 노동 현장의 안전 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회사는 사고를 자회사, 하청 업체에 떠넘기거나 노동자 개인의 안전 부주의 같은 문제를 들먹이며 책임을 회피한다.


<례>에서 삼성중공업은 노동자들이 휴식 시간 이전에 휴식한 점이 원인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크레인은 삼성중공업이 운전과 신호를 맡았고 지프형 크레인은 하청 업체가 운영했다. 사고가 발생한 주된 원인은 원청 사업주가 지프형 크레인 설치 시 위험성 평가를 온전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청이 좁은 공간에 많은 사내도급 노동자를 동시에 투입해 작업하도록 한 점도 문제다”라고 주장한다. 법원에서도 골리앗 크레인 주 신호수만 처벌했고 안전관리 최고 책임자 삼성중공업 대표이사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에 따라 제공하는 마스크 성능이 다르거나, 지급의 여부조차 달라지는 일도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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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키워드는 “노동의 정당한 가치”다.


지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화 전환을 발표하자 많은 사람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내 주변의 청년들도 정당히 시험을 봐서 들어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모두 정규직이 되기 위해 경쟁하는 사회다. 영화들을 다 보고서 나는 사람들이 왜 정규직에 목을 매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지 의문이 들었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노동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현재 노동자의 노동은 온전한 가치로 평가받지 못한다.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임금이 다른 세상이다.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것은, 정규직과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일까? OECD 평균 비정규직 비율이 11.24% 라면 대한민국은 20.62%에 이른다. IMF도 한국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나도 <보라보라>를 보기 전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은 자동화로 인해 어차피 없어질 직업인데 왜 투쟁하는 거지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인력을 바로 잘라버리고, 다시 자회사로 들어간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을 맡기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는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회사를 보고서 그들의 필사적인 투쟁을 이해하게 되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특성화고 학생이 “그 사람(정규직)은 공부했으니 어쩔 수 없죠”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평가 절하되는 노동의 가치를, 노동의 위계질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노동의 위계가 나뉘어 더 밑으로 내려간 노동의 가치를 의미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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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키워드는 “연대와 희망”이다.


영화가 끝난 뒤 GV에선 안타까움이나 분노보단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가지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보라보라>의 김도준 감독과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 지부 도명화 지부장을 직접 만나선 현재 톨 게이트 노조에서 계속되는 투쟁의 이야기를 들었다. <례>의 권순현 감독, 성공회대 노동 아카데미 하종강 교수는 위험의 외주화, 개인화에 관해 관객들과 활발히 대화했다.

 

특히 하종강 교수가 변화하지 않은 것 같아도 예전엔 사람들이 모여서 노동 인권을 이야기하면 잡혀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노동인권 영화제도 하지 않냐며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 점이 기억에 남는다.

 

<언더그라운드>와 <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감독, 은유 작가와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김진숙 씨가 한진중공업에 대항해 현재 벌이고 있는 투쟁을 전해 들었다. 마지막으로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가 참석한 <투쟁의 계절> GV에서는 현재 베네수엘라의 상황, 공동체의 변화 가능성을 더욱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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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도 희망의 가능성은 보인다. <보라보라>에서 행인이 톨게이트 수납원 시위 기사를 봤다며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례>에선 다른 노동자가 장례식에 방문해 고인의 명복을 빈다. <투쟁의 계절>에선 꼬무나 안에서 의료, 문화생활, 공공서비스 등을 기본적으로 보장받는 민중들의 삶을 제시한다.

 

이처럼 사람들 간의 연대와 희망은 이미 존재한다.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법은 사람들 간의 연대와 꾸준한 관심과 참여다.

 

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유명한 <그림자들의 섬>을 제외하고, 다른 영화들은 포털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많지 않다. 좋은 영화들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고, 노동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한 번 찾아보길 바란다.

 

영화를 보고, 노동의 문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내년에도 노동인권 영화제는 개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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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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