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길버트가 원하는 것 [영화]

글 입력 2020.11.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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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길버트가 동생 어니와 줄지어 지나가는 캠핑카들을 기다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길버트네 가족은 한평생 엔도라의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왔다. 지루하고 변화 없는 동네에 답답함을 느끼는 길버트에게, 낯선 곳으로부터 와서 동네를 지나가는 캠핑카의 행렬은 무언의 설렘을 주기도 하고, 언제든지 다시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길버트가 사는 집은 아버지에 의해 지어졌다. 아버지는 17년 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지하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7년 동안 외출하지 않고 의자와 소파에서 앉은 채 생활했으며 결국 초고도 비만으로 거동조차 힘들어진 상태이다. 형은 집을 나간 지 오래이고, 여동생은 아직 철이 덜 들었으며, 막내 어니는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다. 길버트는 누나와 함께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What's Eating Gilbert Grape'라는 영화의 원제는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제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데, 이 제목은 영화의 모든 내용을 전해준다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배경과 달리 마냥 따뜻하고 행복하기만 한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무엇이 길버트를 갉아먹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에 따라 영화의 결말 역시 단순하게 만은 바라볼 수 없다. 영화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숨겨진 흥미로운 복선들 역시 발견되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영화의 결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길버트가 원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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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길버트와 어니는 캠핑카를 타고 온 베키를 만난다. 베키는 고장 난 차를 수리할 동안 잠시 엔도라에 머물게 되고 길버트와 서로 첫눈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어니 역시 베키를 마음에 들어 하고 가족인 길버트만큼 잘 따른다.

 

베키는 어릴 적부터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고 한다. 집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니와 넉넉지 않은 형편으로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길버트는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베키에게서 새로움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베키와 함께 해 질 녘의 하늘을 보러 간 길버트는 저 멀리 보이는 자신의 집이 이토록 작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자신을 옭아매었던 족쇄로서의 집은 길버트가 사는 세상의 전부였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했던 것이다.


길버트에게는 욕망이 없다. 없다기보다는 무의식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채, 평생 참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베키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길버트는 가족들이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뿐 자신을 위한 소망은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영화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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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에서 어머니는 길버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자신이 아이들을 고생시켰다는 죄책감과 초고도 비만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눈물을 보인다.

 

그러나 어머니가 행동의 변화를 보이려던 찰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점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이었다. 게다가 장애로 인해 10살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던 어니가 18번째 생일을 맞이한 역사적인 날, 어니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모습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거대한 몸집의 어머니를 집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집을 허물어야 하고, 장례를 치르게 된다면 마을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어머니를 그대로 집과 함께 태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길버트와 어니를 제외한 가족들은 직장과 학교에서 새 출발을 하고, 길버트는 어니에게 '이제 우린 원한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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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지키고 부양해야 한다는 길버트의 부담감은 벗어날 수 없었던 집과 마을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였다. 다시 말해, 집과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길버트가 자신을 잡아먹고 있는 부담감과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과연 마지막에 집을 떠날 수 있었다고 해서 길버트가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기를 기대해 볼 수는 있겠지만, 결과는 길버트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스스로를 위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묻는 베키에게 길버트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남들의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고, 나보단 남들이 원하는 것, 남을 위한 희생에 조금 더 초점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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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영화의 결말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길버트가 달라진 모습의 어머니, 18살을 넘긴 어니와 함께 새 삶을 꾸려 나갔다면 긍정적인 결말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아쉽게도 현재의 결말을 마냥 행복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길버트가 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닌 상황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였을 뿐, 그가 계속해서 현재와 같은 마음가짐, 삶에 대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온전한 자유로움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누르고 있던 가장 큰 돌덩이인 집을 떠나며 자유로운 몸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인생에 따라 달라질 길버트의 모습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부디 길버트가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기를,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 자신만의 삶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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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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