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에 대한 감상은 꼭 편협해진다. 글자인 것을 읽어나가다가 어느 순간 숨 막히는 문장을 만난다. 그 문장이 곧 그 책에 대한 감상의 기초가 된다. 그 문장은 그 뒤 문장, 뒷장, 그리고 한 책을 끝낼 수 있는 연료가 된다. 그렇게 한 권을 끝내면 대충 문장 5-10개가 모인다.
그런 책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장들을 까먹지 않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책 붙들고 있던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남는 건 그 10개뿐이니.
세상엔 등장인물이 기억나는 글이 있고, 작가가 기억나는 글이 있고, 줄거리가 기억나는 글이 있고 제목이 기억나는 글이 있다. 기억이 난다면 그 글은 기억된다. 그리고 몇 문장 빼곤 뭐라는 건지 모르겠는 글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 대다수의 글과 그림 공연과 영상들이 곧 보통의 삶이다. 대부분의 눈에 띄지 않는 삶.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는 그 자체로 잘 안 읽히는 책이다. 글 속의 단어와 사건들은 정신없이 튀어 다닌다. 시간과 공간들은 섞이고,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쟤가 걔인지, 걔가 얘인지...
부코스키는 비주류문학의 제왕, 천박한 글로 유명하다. 글 속엔 똥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시, 술, 여자, 섹스만큼이나마 자주 등장한다. 세상에 똥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의 천박함과 비주류성에 의문이 든다. 난 부코스키가 했던 생각과 행동을 안 해봤다고 말 할 수 없다.
<와인으로 얼룩진 단상들>을 다 읽고 기억나는 것은 10문장, 10단어 정도이다. 시, 사람, 섹스, 똥, 죽음..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한 사람의 생애는 보통 10문장이면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겉으로 우리들은 참 다르다. 살기 힘들다던 IMF 때도 더 잘 되는 사람들은 있었고, 코로나 19로 다 죽어가도 누군가는 더욱 잘된다. 하지만 나도 당신도 베스트셀러 작가도 모차르트도 섹스 없이 태어나지 못했고, 똥 없이 사람 없이 죽음 없이 살지 못한다.
부코스키는 나와 다른 곳에서 다른 시대를 살았다. 그럼에도 난 그와 내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점점 개인주의화 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같은 인간사회에 살며 우리가 느끼고 보는 것들은 결국 모두 한점으로 모인다.
부코스키는 겸손의 늪에 빠지지 않을 것, 그렇다고 지식의 늪엔 더더욱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소리 지르는 것 같다. 책 속 그의 감정은 세상에서 가장 격렬히 열고 닫히는 챕터이다. 책의 서문에선 그의 생애를 하나의 원으로 설명한다. 타자기, 와인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차르트라는 마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