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시각예술]

글 입력 2020.11.1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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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시회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미술이나 그림에 일가견이 없고, 도슨트의 설명을 듣자니 지루할 때도, 속도가 맞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다른 전시와는 달랐다. 아직 50년도 지나지 않은 현대미술이자 거리 예술가의 작품이기도 했고, QR 코드를 통해 오디오 도슨트 클립을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듣고 건너뛸 수도 있었다.


전시의 주인공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래피티 화가이다. 그는 뉴욕의 슬럼가에서 살며 유색인종 차별을 경험했고 부모의 이혼으로 가출한 뒤 길거리에서 레게, 힙합 등 흑인 문화가 반영된 그래피티, 일종의 낙서를 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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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초창기 그래피티 SAMOⓒ는 Same Old Shit의 약자고, ⓒ는 저작권 표시를 붙인 것이다. 바스키아와 알 디아즈의 낙서그룹은 이 SAMO를 활용한 스프레이 낙서를 뉴욕 길거리 곳곳에 남겼다.

 

이 시기에 바스키아는 앤디 워홀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쓰인 SAMO를 궁금해하던 와중 이것이 신문사에 기재된다. 기사가 나가고 바스키아는 자신이 유명해지기를 바랐고 디아즈는 그러지 않았기에 결국 그룹은 해체된다. 이후 "SAMO IS DEAD"라는 그래피티를 그리며 SAMO는 막을 내린다.


바스키아는 80년 타임스퀘어 쇼에서 화가로 데뷔한다. 80년대는 단순한 형태의 작품들이 인기를 끌며 전문가의 인정을 받았고 미술에 진입장벽이 높았던 시기였다. 그때 바스키아의 독창적이고 난해하면서도 길거리 정신, 힙합이 반영된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열광하게 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미술계를 휩쓸고 점점 높은 가격으로 팔리기 시작한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남들은 상상치 못할 관심과 인기에 휩싸이며 바스키아는 부담감을 느낀다. 이후 정신적 멘토였던 앤디 워홀과 합동 전시를 열지만, 당시 바스키아를 배척하던 미술 전문가들에게 혹평을 받으며 실패한다.

 

바스키아는 자신에게 관심이 가득한 뉴욕을 떠나 하와이와 LA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한다. 이후 워홀이 사망한 뒤 방황하던 그는 마약 중독으로 27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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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요소는 뾰족한 왕관, 자동차, 해부학적 그림, 썼다가 지운 글씨다.

 

왕관은 흑인 아티스트, 흑인 운동선수를 비롯한 흑인들에 대한 존중에서 그린 것. 자동차는 어렸을 적 교통사고의 기억에서, 해부학 그림은 이 사고로 큰 수술을 하면서 인체에 관심을 가졌던 것에서 기인한다. 썼다가 지워버린 글씨는 지워진 글씨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인간의 심리를 활용한 것이다.

 

"I cross out words so you will see them more: the fact that they are obscured makes you want to read them.“ / "내가 단어들에 줄을 그을수록 너는 그것들이 더 보고 싶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가려져 있기에 더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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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두 가지다. 먼저 <존 루리의 초상화>다. 뭔가 난해하기도, 막 그린 것 같기도 한 바스키아의 작품들을 보며 도대체 이게 뭐지 싶다가 이 초상화에서 그만의 매력과 특징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작가들이 그리곤 했던 초상화와는 확연히 다르기에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관을 맛보고 그가 정말 실력파, 천재 화가라는 것을 알았다. 무심하게 그린 듯한 붓의 터치가 인물의 특징을 포착한다. 그 선들의 결합으로 관객들에게 인물만의 고유한 인상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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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는 <올랭피아의 하녀>다. 바스키아는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재해석해 자신만의 그림을 그린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백인 여성과 하녀로 보이는 흑인 여성이 등장한다.

 

바스키아는 서양 미술사에 존재하던 인종차별의 문제에 대해 고심해왔다. 많은 작품에서 흑인을 주제로 하는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미술사 속의 인종차별 혹은 당시 자신을 향한 인종차별을 꼬집기 위해 <올랭피아의 하녀>를 그린 것이다. 벌거벗은 채 누워 있는 여성은 흑인으로 보이며 붉은색을 사용해 힘과 에너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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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키아는 당시 검은 피카소로 불리거나, 아프리카계 아티스트와 비교해서 뛰어난 아티스트라는 평을 듣곤 했다. 사람들은 검은 피카소라는 말을 칭찬으로 했겠지만, 그 안에는 인종에 대한 강조, 차별적인 인식이 이미 들어가 있다.

 

아티스트를 그저 아티스트 그 자체로, 바스키아라는 사람 자체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까? 그는 인종차별이 건재하던 백인 중심의 예술계에서 유명해진 유색인 아티스트다. 현재보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80년대, 젊은 나이의 바스키아는 사람들의 차별, 관심, 루머와 눈길을 버티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앤디 워홀과 사귀는 게이라는 소문도 돌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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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다 관람하고 영상관에서는 작업하는 바스키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아무렇게나 일체의 고민 없이 붓 칠하고, 물감을 찍고, 글씨를 지운다.

 

하지만 그는 모두 생각해서, 의미를 두고 그렸다고 생각하니 정말 천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 바스키아에게 인종차별적 질문을 해대는 인터뷰어에게 지치고 피곤한 듯한 그의 눈빛도 볼 수 있다.


그는 27살에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작품은 2020년 현재까지 이어져 사람들 앞에서 서 있다. 아마 시간이 더 지나서는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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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쉘 바스키아 – 거리, 영웅, 예술> 전시회는 잠실 롯데 뮤지엄에서 진행 중이다. 사진 촬영은 몇 가지 작품만 가능하지만, 작품은 눈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니 아깝지는 않았다. 게다가 오디오 도슨트로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표의 QR코드를 찍으면 무료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자신이 듣고 싶은 작품만 해석을 들을 수도 있고, 이해가 안 되면 두 번 들어도 된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의 긴급한 대처가,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생각한 전시였다.

 

 

[오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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