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지만 단단한 용기를 보여주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TV/드라마]

글 입력 2020.10.22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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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장마와 함께 찾아와 쌀쌀한 가을이 될 때쯤 마침표를 맺은 드라마로, 매회가 진행될수록 나는 이 드라마의 팬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과 재능의 부재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29살 바이올린 전공생 채송아와 누군가의 죽음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기회를 잡아 성공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뭔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피아니스트 박준영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드라마에는 누군가가 기대할 극적인 반전이나 통통 튀는 재미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최근 드라마처럼 독특한 요소나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실, 고전 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드라마가 참 좋았다.

 

 

 

내가 원해왔던 잔잔함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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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자극적인 것만 쫓던 프로그램들과 드라마 스토리들이 잔잔한 방향으로도 흘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잔잔함은 종종 지루함으로 여겨졌다.

 

잔잔함과 지루함은 확연히 다르다. 이 부분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데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그렇다. 혹시라도 잔잔함과 지루함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사람에게 나는 잔잔함이 그저 조용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클라이맥스가 삭제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잔잔함은 '나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고민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같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처들을 아주 일상적으로, 하지만 아주 깊숙한 곳까지 건드리며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하나뿐인 감성'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아주 예민한 잔잔함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는 스토리에서도 느껴지지만, 특히 섬세한 연출 방식에서 느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드라마의 톤앤매너가 아주 잘 설정되었고, 배우들의 시선과 손끝, 그리고 작은 움직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연출이 드라마의 감정선을 잘 연결해주고 있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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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화의 엔딩 부분인 박준영(김민재)이 마음이 힘든 채송아(박은빈)에게 채송아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월광'과 생일 축하 노래를 섞어 피아노로 연주를 해주는 장면과 그 후로 이어지는 채송아의 내레이션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순간에는 채송아가 겪었던 상황들에 대한 공감보다는 박준영이 채송아에게 위로를 건네는 방식에서 나 또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말보다 음악으로 마음을 건네는 박준영만의 위로 방식이 퍽 마음에 들었고,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을지 모를 말에 지친 우리에게 음악을 통한 위로는 그만큼 더 진실하게 다가온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렇게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선을 예민하게 유지하며 충분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감정과 생각, 상황들을 잔잔하고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는 작품이다.

 

 


외유내강형 채송아를 보며 얻은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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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송아라는 인물은 어떻게 보면 참 평면적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굉장히 입체적인 면이 많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 하나로 전공을 바꿔 재입학한다. 하지만 현실은 꼴등에 30살을 코앞에 둔 29살. 리허설 연주를 하던 채송아는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교수에게 망신을 당한다. 목소리도 작고, 어딜 가든 튀지 않고 조용하다. 그래서 종종 무시를 당한다. 이름도 하필 채송아여서 소개를 하면 ‘죄송합니다’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도전했다.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녀는 재능의 부재에도 바이올린에 대한 사랑과 열정 하나로 열심히 노력하고, 버텨낸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할 일을 찾아서 해내고, 하고 싶은 일은 하고야 만다. 재능이 없고 미래가 없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도 그녀는 꿋꿋하게 이어나간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이 바이올린에 대한 짝사랑을 끝낼 수 있는 순간에 그만둘 수 있는 단단함도 가졌다. 느리지만 맺고 끊음에 확실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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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채송아라는 인물을 보면서 뭔지 모를 용기를 얻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과정들을 겪는데, 그중 가장 힘든 경우이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고, 일정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신뢰를 잃은 말이자 허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불편한 순간들은 우리에게 많이 찾아오고, 그것에 맞닥뜨리는 순간마다 우리는 무너진다. 또한 좋아하는 것을 진정으로 놓아야 할 때마저 우리는 회피한다.

 

나 또한 이런 과정을 겪고 있지만 한 번도 송아처럼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송아에게서 나를 발견하기도 하였고, 또 회피했던 나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수없이 겪어온 과정들을 나와 비슷하게 하지만 나와 다르게 걸어가는 송아를 지켜보며 그녀를 통해 위로받았고, 그녀를 응원하는 동시에 나를 응원했다.

 

특히 바이올린에 대한 길었던 송아의 짝사랑이 끝나고 바이올린을 보내주는 송아의 모습을 보며 내가 미처 보내주지 못한 짝사랑 했던 모든 것들을 함께 보내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의 용기를 얻었다. 앞으로 계속 찾아올 재능의 부재들을 조금 더 단단하게 바라보고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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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보며 느꼈던 위로와 용기들을 마음껏 느끼길 바라며.

 

모두들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

 

 

[정세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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