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새들의 무덤'을 보고

새파란 죽음을 금새 삶의 에너지로 포옹하는
글 입력 2020.10.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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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무덤_포스터.jpg

 

 

작품 <찰칵>에 이어 이번 <새들의 무덤>까지. 제겐 ‘하수민’ 작·연출 극의 두 번째 관람이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객석을 하나씩 띄어 앉고, 마스크를 꼼꼼히 쓰고 앉아 들어오기 전 산 2,000원의 얇은 프로그램 북을 읽었습니다.

 

딸의 죽음을 겪은 아버지의 과거 여행 이야기랍니다. 속으로 너무 흔한 감성 팔이 연극이려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작가의 극을 향유해봤고, 그 경험이 참 좋았기에 아무런 소품 없이 빈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드디어 불이 꺼지고, ‘오루’와 ‘새’ 한 마리가 텅 빈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새는 오루를 자꾸만 과거로 이끄는 매개물입니다. 2020년에서 1968년. 오루는 처음엔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을 못 차리는가 하더니 곧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일제, 빨갱이, 굿판, 서울올림픽, IMF, 정규직과 비정규직, 세월호사건.. 시대와 역사는 빠르게 오루와 새 그리고 관객을 훑어 올라옵니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오루에게 딸 ‘도손’이의 갑작스러운 사고는 그로 하여금 고향에 가게 만든 사건입니다. 과거에 갔다 올 때마다 오루는 과거에서,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오루가 살아온 삶에선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사치였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얼마나 빠르게 발전한 나라인가요. 이제야 돌아보니 너무나 많은 시간과 공간, 사람들이 동시에 오루와 관객을 덮쳐옵니다. 극의 제목 <새들의 무덤>이 그제야 이해가 됩니다. 새는 지나간 비극적 역사와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요.

 

살아 있는 모두는 타인들의 죽음을 딛고 선 사람들이고, 전쟁의 역사를 다지고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우리 역시 각자의 삶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테고요.

 

흘러가버린 과거와 당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고 눈물이 나지만, 언젠간 웃을 수 있게 되고 초연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가슴으로 떠나보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극의 마지막에서 오루가 마침내 여행의 시작부터 함께한 새 한 마리를 날려보낼 수 있게 된 것처럼요.

 

귀를 막고, 눈을 막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도리질 치는 사람에게 과거는 끊임없이 따라붙어 질문할 것입니다. 새들의 무덤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덤입니다. 누구도 역사가 일부가 되는 것을 피해갈 순 없는 것처럼요.

 

극을 다 보고나니 마치 정신없이 제사를 치르고 나온 느낌입니다. 여자만 음식을 하는 구시대적인 가부장적 문화에 불만을 토하며 정신없이 음식을 하고 손님을 받고, 제사를 치르고 있으면 보이는 이젠 서먹해져 버린 집안 어른들의 모습. 제사 음식을 나눠 담아 친척들 손에 들리고 문 앞에서 들어가시라 인사를 하고 나면 보이지 않았지만 이어져 있던 시간의 끈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 보입니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의 시대가 사라져가는 게 느껴집니다.

 

무력으로 다른 이의 입을 막으려는 사람들, 권력으로 타인을 짓밟으려는 자들,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 삶에 치여 그 모든 것이 사치인 사람들. 모두 남은 이들이 포용할 과거가 되어 현실을 발전시킬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내용과 함께 하수민 작가의 연출방식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말이 굉장히 많아 보이는 극인데, 무대나 소품이 정신없지 않고 적절했다고 느껴집니다. 극의 초반 사투리가 많이 섞여서 그런지 대사가 잘 안 들리는 것은 답답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이 좋아서 인지 내용을 따라가기엔 어렵지 않았지만 아쉬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 서동갑(오루 役) 배우가 여러 나이대를 연기하는 것도 인상 깊었지만, 그 무엇보다 박채린(새, 오순, 도순 役) 배우의 새 연기가 대단했습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본 비둘기가 그 자리에 와 있는 수준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요. 허공을 보는 눈빛과 요상한 각도로 돌아가는 고개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연영과에선 꼭 동물을 묘사하는 수업을 한다던데, 분명 그 수업에서 A+를 받으셨을듯 합니다. 타 배우분들 또한 빠지는 부분이 없어 극 전체의 균형이 참 좋은 극이었습니다.

 

리뷰의 부제목 '새파란 죽음을 금세 삶의 에너지로 포옹하는'은 프로그램 북에 실린 진도 씻김굿의 서문입니다. 하수민 연출가는 이 극이 기억을 통해 희망에 대해 생각해보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라곤 합니다. 하지만 이 극은 희망으로 가는 길을 넌지시 제시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게 합니다.

 

기억을 되짚다 보면 결국 돌아오는 지금, 여기에 그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코로나 시대에 안전하게 좋은 극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주신 연출가님, 배우분들, 스태프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컨셉사진1.JPG

이제 날아가야지, 이제 날아서 집에 가야지.


 

작 연출 하수민

출연진 서동갑, 손성호, 김현, 장재호, 곽지숙, 김시영, 조형래, 홍철희, 박상훈, 정연주, 박채린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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