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기

글 입력 2020.10.2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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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날이 꽤 쌀쌀해졌다. 반팔 위에 가디건을 걸치다 그 위에 다른 겉옷을 겹쳐 입었다. 그러다 문득, 코끝에 스치는 바람이 꽤 차다는 이유 하나로 스스로에게 날이 선 생각이 일었다. 나는 졸업 작품과 졸업 논문을 완성해야 하는 대학교 막바지 4학년 학생이다. 작품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이젠 마무리 단계인데, 아직도 제 작품과 글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게 정말 이거였나?‘로 시작한 물음은 ‘나는 이 정도밖에 못하는 걸까?’라는 본격적인 자책감으로 이어졌다. 작품에 대한 교수님의 피드백도 한몫을 했다. ‘나아졌다’고 했지 ‘좋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마음속에 있던 불안이라는 불씨가 순식간에 화염으로 번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졸업을 해도 될까?‘라는 불안한 마음 범벅인 요즘의 일기를 하염없이 내려봤다. 나름 애를 쓴 흔적들도 보였다. 각종 기업에 이력서를 넣은 일, 그리고 채 이 주도 되지 않아 떨어진 일. 내로라하는 ‘스펙’은 아니지만 나름의 스토리와 준비들은 갖췄건만, 혹시나 해서 넣어본 지원서들은 역시나 모조리 탈락이다. 요즘의 나는, 요즘의 우리는 그렇다. 놀리기라도 하듯 뭐 하나 확실한 게 없다. 지난 일상을 되찾긴 이미 그른 것 같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누군가를 만나려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나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웃고 있는지 입술로 비속어를 짓씹고 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단절이 일상화되다 보니 불투명한 가림막 뒤에서 나 스스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만든다.

 

작은 방 한 칸이 감옥처럼 답답하게 여겨질 때,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방 정리를 하는 습관이 있다. 안 쓰는 물건들을 한편에 모아 정리하고, 책장을 뒤적여 읽지 않을 책들을 박스에 쌓아뒀다. 그러다 서랍 아주 깊숙한 곳에서, 여태껏 써온 일기장들을 발견했다. 내가 쓴 것도 있었고, 누군가 나를 관찰한 듯한 글도 있었다. 정리를 하려다 더욱이 어지럽혀진 방 한편에서,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지도 모르고 일기장들을 뒤적였다.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 나를 위로할, 지금의 나에게 힘을 북돋아줄 문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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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육아일기를 엿볼 수 있었다. 부모님은 꼬박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일과를 기록하셨다. 태어난 지 열흘도 채 안 되었을 때, 나는 ‘속싸개’라는 작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벗어났나 보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 뿌듯한 얼굴이다. 이것 말고도 부모님의 잠을 방해하는 내용, 그리고 드디어 낮밤에 적응하게 된 이야기, 엄마의 이른 복직으로 앉아 있지도 못하던 나를 놀이방에 내려놓아야 했던 일화들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가 자라는 내내 누군가의 시선과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고, 하물며 놀이방 선생님은 기지도 못하는 낯선 아기를 반나절 내내 안고 계셨다.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누군가가 나의 성장에 힘을 쏟았다는 사실 하나로도 만족해하는 스스로가 어이없을 정도로, 마치 내가 낳은 냥 어린 날의 나를 기특한 얼굴로 내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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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방은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이 되었고, 어느 정도 ‘이유 있는 심술’을 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 특유의 의도 없는 순수함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에게 가지는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만 쏙쏙 공략하며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 달라고, 나를 보러 조금 더 일찍 와줄 수 없느냐고 원망한다. 외로움을 말하고 나를 봐 달라 애원하는 어린 나의 모습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지게 된 애틋한 감정은 나를 위로했다. 지금은 혼자인 것이 꽤 익숙하고, 편하고,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아도 마음이 채워지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그간의 나의 고군분투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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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가지 예시가 기승전결의 ‘기승’이었다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관한 일기는 ‘전’이었다. 조금씩 데워지던 방 안의 공기에 금세 열기로 후끈거리는 듯했다. ‘늙다고 얏보지 마라’라는 교훈을 새긴 지 삼 년도 지나지 않아, 초등학생도 이기는 자전거 실력을 보여 주던 할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사실, 병상에 계신 그 기억이 훨씬 더 뚜렷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을 거쳐 중학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병문안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고정적인 일정이 싫었다. 나의 영원한 나무일 줄 알았던 사람이 한순간에 기력을 잃는 모습을 보고 끝없는 무력감을 느껴야 해서 싫었다. 모든 일기를 뒤적여도 더 이상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병상에 관한 모든 기억을 덮고, 할아버지는 자전거 선생님으로 새롭게 자리했다. 어떤 번듯한 영상물도 없어 잔상조차 흐릿한, 이젠 이별한 이의 애정과 사랑이 하늘 위에서 쏟아졌다.

 

아쉽게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 누구도 쓰라고 하지 않았고, 나도 기록할 만한 일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쓴다면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적었기에, 지금은 그 흔적을 볼 수 없다. 어른이 된 후에는 마음이 아플 때만 종이와 연필을 찾았다. 근본적인 물음과 해답이 필요할 때, 아니면 한없이 가라앉을 때마다 애써 기분 좋은 일들을 떠올리며 억지로 적어내렸다. 그러다 무너지면, 글자에 눈물이 비치기라도 하듯 밑바닥의 감정을 드러냈다. 덕분에 감정 쓰레기통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지금의 일기장은 군데군데 찢겨 엉망진창인 모양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내가 원할지도 모를 오늘의 일기를 써내려 본다. 가까운 누군가와 다시 이별하게 된다면, 그를 사랑하고 미워했던 과정까지도 떠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사진과 영상으로는 보여 주지 못할 나의 마음을 오롯이 보관한 장소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조심스럽게 권하고 싶다. 나중의 나를 위해 오늘의 기억을 놓치지 말자고.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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