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퇴계 이황과 도산서원 [시각예술]

글 입력 2020.10.2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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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 본 도산서원

 

 

근래엔 한국 전통 건축양식에 대한 호기심이 왕왕 생겼고, 직접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지난주엔 망설임 없이 안동으로 향했다. 퇴계 선생 생전에는 도산서당과 농운정사가 있었고, 선생의 사후에 100여명의 제자들이 모여 도산서원을 건립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어슬렁거리다 눈빛에 물음표를 읽으면 어느샌가 다가와 설명해 주시는 알리미 덕분에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도산서당의 공간 속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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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형태의 창과 열어젖힌 풍경

 

 

퇴계 선생은 생전 도산서당과 농운정사(기숙사)를 직접 설계하고 여기서 제자를 양성했는데, 학업에 매진하라는 뜻으로 농운정사의 형태를 공(工)자를 닮도록 설계한 점, 도산서당을 비롯한 모든 건물에 빠짐없이 박힌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며 공간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을 포용하려 했던 정신, 중심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창 을 중(中)자 형태로 만든 것 등 건물이 지어진 대지를 존중하면서도 이를 만끽할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 곳곳에 심어진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옛 서당 담장은 어린아이의 어깨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건물 어느 곳에서도 바깥의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데,  아직 서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이 담장 너머 서당 안을 훔쳐보는 모습이 그려져서 포근한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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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

 


험준한 산길을 올라온 이들과 잠시 멈춰 쉬어가는 동물들 모두에게 이곳에서 바라본 풍경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지 않았을까.

 

 

 

도산서당의 글자 속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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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선생이 직접 쓴 현판. 현판 속 산과 새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퇴계 선생이 직접 쓴 도산서당의 명패에는 아이가 산을 그린 듯한 ‘뫼산’ 자가 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단순한 형태에 돌발적인 귀여움(?)을 느꼈다.

 

‘서’의 부수 가로왈(曰)에 구부러진 한 획은 새의 형상을 나타내는데 이는 어린 새가 날기까지 무수한 날갯짓을 해야 하듯 학문을 닦는 데 애쓰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자연에서 발견한 형태를 글자에 적용하는 재치와 관찰력은 고금을 가리지 않고 시각적 즐거움을 자아내는구나, 감탄하며 나는 왜 내 앞에 주어진 환경이 아닌 내게 없는 무언가에서 자꾸만 멋진 걸 만들어내려 아등바등 애썼을까 한숨이 픽 새어나왔다.

 

 


2020, 시각디자이너인 나


 

이제까지의 작업이 비실댄 알맹이에 불과하다는 후회는 수십번씩 하는 중이다.

 

자연스러운 것, 시간이 축적된 것, 장인 정신 등을 동경하면서도 스스로는 그 시간의 축적을 견디지 못해 매일 자책했다. 학기 중엔 심지어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제대로 돌아볼 새 없이 작업하기에 바빴으니 결과물이 더러 창피하기도, 다신 꺼내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어떤 대상을 향한 어떠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작한 작업마저도 끝이 다가오면 찜찜하고 아쉬운 기분에 발표 직전까지 머뭇거리다 문득, ‘나조차 내 작업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대체 누가 내 작업을 봐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그때부터 아카이빙이라도 해두자는 심정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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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퇴계 선생이 걸어 다녔을 땅과 마루를 천천히 밟아보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마음으로 이곳을 구상하고 그 마음을 담아 제자를 가르쳤을 선생의 모습을 상상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기에, 어쩔 수 없이 자연을 빌려 사용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 어디에도 으스댐이 없던 이 겸손한 공간은 지어지기까지 무려 4년이나(서원을 제외하고 서당과 농운정사를 짓는 데만) 걸렸으니 구상한 것은 훨씬 오래전 일테다.

 

어떤 공간이 선생의 가르침과 자연의 이치에 합당한지 이리 저리 고민하고 기다린 시간의 결과물은 여전히 이곳에, 지극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앉아 있다. 그러니 견디기를 두려워 말자, 조금 오래 기다리더라도 진득하게 쌓아가자.

 

 

[김현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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