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큐레이터가 말하는 예술적 상상의 책임과 윤리 [도서]

글 입력 2020.10.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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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本色

- 큐레이터 열한 명의 열한 가지 비전

 

김홍희, 최빛나, 김현진. 김희진, 백지숙

김선정, 김승덕, 이영준, 박만우, 정도련

 

 

학예사 또는 학예연구사로도 불리는 전시기획자(Curator)는 미술관의 꽃인 전시를 기획하는 일뿐만 아니라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을 구입 및 관리하고 예술 정책, 예술사 연구, 미술관 교육 등 끊임없는 연구와 이론적 지식을 요구하는 전문직이다. 한국 미술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종은 1990년을 전후해 처음 등장했고 광주비엔날레를 기점으로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으나 '부잣집 딸의 고상한 여가활동' 정도로 묘사하는 드라마의 이미지는 실제 '고학력 저임금' 직종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큐레이터의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한길아트의 <큐레이터本色>은 큐레이터 지망생이 급격히 늘어나고 미디어에서 또한 직업에 대한 판타지를 쌓아가던 당시 한국을 배경으로, 큐레이터에 대한 인식과 개념을 바로잡고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엮은이로 참여한 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인 김홍희 큐레이터와 현대미술계를 대표하는 11명의 한국 출신 큐레이터들이 만나 진정한 큐레이십에 대해 논한다.

 

11명의 큐레이터들은 각기 다른 미술에 대한 관심과 예술적 철학을 가지고 자신만의 전시 방법론을 열어 보임으로써 큐레이터가 되기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한다. 전시라는 물리적 체험을 통해 세상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에 수반하는 예술적인 사유와 담론, 그리고 큐레이터로서 정의한 엄격한 예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찬찬히 훑어보자.

 

 

 

1. 큐레이터가 정의한 큐레이터: 매개자


 

본 책의 저자들은 큐레이터는 본질적으로 '매개자'이자 '중간자'라는 관점을 공유한다. 전시를 이루는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 조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전시는 필연적으로 미술의 바깥으로 매개의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이기에 커뮤니케이션은 전시 전반에 있어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한다. 백지숙 큐레이터는 큐레이팅을 “대화와 협업에 기초한 공동 조율 작업”이라고 명했으며, 박만우 큐레이터는 2016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했던 스웨덴 출신 큐레이터, 마리아 린드(Maria Lind)의 말을 빌려 "큐레이팅은 큐레이터의 생산물이라기보다는 여러 행위 주체들의 노동에 의한 네트워크의 결과물"이라는데 의견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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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큐레이터 [출처:파이낸셜뉴스]

 

 

김현진 큐레이터는 '자신이 만드는 전시의 시간이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시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라고 밝히며 매개를 통해 창작의 영역으로 한 걸음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최빛나 큐레이터 또한 '창작인 매개, 매개인 창작'이라는 말을 통해 창작자와 매개자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개념 자체에 대항한다. 김성원은 큐레이터는 전시의 '저자'이고 큐레이팅이란 나만의 능력과 존재방식, 즉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나가는 창작의 양식이라고 설명하는 데에 있어 '전시 기획은 곧 발명'이라고 말한 하랄트 제만의 큐레이십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큐레이터는 전시의 주인공이 아니다. 큐레이터 없는 작가는 있어도 작가 없는 큐레이터는 없다. 김홍희 큐레이터가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라는 책을 쓴 이유도 바로 이러한 지점 때문일 것이다. 전시라는 무대는 주연없이 오직 '작가, 작품 그리고 관객'이라는 3명의 주인공만 존재하며 ‘무대 뒤편의 역할’을 하는 것이 큐레이터의 본분이다.

 

 

'일반적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은 저자가 누구인가에 민감하게 관심을 갖고 책을 선택하지만, 그 소설을 읽는 동안만큼은 저자를 잊는다. 소설이 훌륭할수록 저자는 오래 기억된다. 관객이 작품에 빠져서 저자를 잊게 되는 전시를 만들 때, 비로소 나는 내가 원하는 전시의 저자가 된다"

 

- 김희진 큐레이터

 

 

전시는 물리적이고 직관적인 측면과 지식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인식을 동시에 자극하는 사건이기에, 큐레이터는 탄탄한 이론적 지식을 기반한 학제적 능력이 요구된다. 큐레이팅을 전시 단위 대신 '프로젝트', '공간' 생산활동으로 설명한 최빛나 큐레이터는 '공간 및 사회적 맥락과 연계를 통한 존재 이유를 명확하게 증명해야 하기에 학제적 성격이 강하다'라고 말한다. 김선정 큐레이터는 대형 전시를 기획할 때면 '미술 자체만 다루던 것에서 확장되면서 사회나 정치 등 다른 학문들과 연계할 필요성이 점점 커진다'라는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가만히 앉아서는 어떤 새로운 것도 ‘발명’하고 내놓을 수 없다. 카탈로그 인쇄 직전까지 계속해서 작가를 찾으며, 주제 선정을 위해 미술사뿐 아니라 SF 영화, 정신분석학, 미학 등 각종 인문학 서적, 시사 잡지 등을 읽으면서 새로운 전시 전략을 짜내려 노력한다."


-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 2001)

 


 

2. 예술의 책임과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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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 큐레이터 [출처:김달진미술연구소]

 

 

김희진 큐레이터는 중학생 딸과의 대화록을 책에 실었다. 인터뷰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미사여구가 덜어짐으로써 큐레이십에 대해 더욱 실감 나고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었다.

 

"분노! 좋았어"

 

딸이 사회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자 김희진 큐레이터가 내뱉은 말이자, 내가 김희진 큐레이터의 글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다. 모든 창작의 시초는 어쩌면 분노인지도 모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이 외적 폭력에 대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달음으로써 시작한 다다이즘, 기존 예술의 권위의식과 관습을 비판한 팝아트처럼, 예술(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기성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다.

 

지성을 대변하는 큐레이터들의 에세이가 비판적이고 회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책임한 환상', '긍정의 허구'보다는 '반어적 단언'과 '스스럼없는 자기비판'이 큐레이터 자신을, 더 나아가 예술을 바르게 인식하는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세상의 변혁을 이끌어내는 것은 낙관적인 찬양이 아닌 프로불편러들의 분노이다. 단일한 개념을 축으로 이데올로기에 몸을 맡기는 평면적 인물보다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제기하는 입체적 인물이 소설을 이끌어가기 마련이다.


*

 

저자들은 큐레이터로서 예술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최빛나 큐레이터는 '큐레이팅은 변화의 그물을 직조하는 문화활동이자 결코 자기중심적일 수 없는 사회운동'이라고 명했고, 김희진 큐레이터는 '예술은 사람의 생각과 인식을 바꿔놓는 근본적인 혁명운동이'라고 규정했다.


'현실을 보지 않은 상상은

자폐가 아니라 뭐냔 말이다.'

 

다소 과격한 김희진 큐레이터의 이 문장에 열성적으로 동의한다. 본 오피니언은 김희진 큐레이터의 이 문장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예술의 책임과 윤리의식에 대한 나의 관점을 명확하게 대변하는 통쾌한 말이었다.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빈 깡통 같은 전시와 작품을 볼 때마다 탄식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런 허구만 덕지덕지 묻은 예술을 빙자한 자만과 허세에 한방을 날려주는 듯했다.

 

예술은 사회적 규범에 의해 검열되는 일상의 맥락과는 분명 다른 공간이다. 하지만 이것이 책임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하게 하고 싶다. 쓰레기, 소화기, 변기, 어떤 물체든 갤러리 (혹은 그렇게 지정한) 공간에 놓이는 순간, 그것을 숨겨진 의미를 추적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오랜 시간 유심히 관찰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힘, 이는 실로 예술의 위대함이자 전시가 가지는 위엄을 대변한다.

 

그렇기에 그러한 수반하는 책임을 저버리면 안 된다. '무의미'를 표방했던 다다이즘도 사실 근본적으로 합리주의 문명과 사회체제를 부수려는 의도적인 행위였던 것처럼 예술은 분명한 맥락 안에서 가치가 있어야 한다. 자기만족을 위해 함부로 예술을 휘두르는 것은 어떠한 서사도 가지도 없는 민폐일 뿐이며, 공산주의의 프로파간다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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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찐(Mikhail Bakhtin)은 자신의 첫 저작 「예술과 책임」에서 예술과 생활의 책임 있는 통일을 이야기한다. 예술과 생활은 서로 스스로의 과제를 덜어내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생활에 응답하지 않고 창조하는 것이 손쉽고, 예술에 신경 쓰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과 생활은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자신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러한 문화 요소의 내적 연결성을 보장하는 것은 오직 '책임의 통일'로만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생활을 무시하고 스스로 생활에 의해 무시당하는 식의 영감은 영감이 아닌 '홀림의 상태'이기에 영감을 끌어들여 무책임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오직 구체적인 책임 안에서만 생을 제대로 의식할 수 있다. 책임에서 떨어져 나온 생은 철학을 가질 수 없다”

 

- 「행위 철학」, Mikhail Bakht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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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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