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접었을 때 완성되는 그 이름, 프란시스 하 [영화]

플랜B도 충분히 아름답다
글 입력 2020.10.0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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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MBTI 성격 유형은 INFP이다. 나를 이렇게만 소개해도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성격이구나’라고 단숨에 이해하는, MBTI 순기능 시대에 살고 있다. MBTI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유형별 특징이 인터넷에 잘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인프피를 자주 검색해보는데 매번 등장하는 말이 바로 내 유형이 ‘이상주의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욕구도 크다고 한다.

 

이상으로 똘똘 뭉친 인프피 군단에 어울리는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영화 <프란시스 하>에 나오는 프란시스다. 그녀는 뉴욕에 살며 나이는 27살, 꿈은 무용수로 성공해서 뉴욕을 접수하기다. 그녀에게 현재 직업을 물으면 잠깐 뜸을 들이다 연습생이라고 답한다. 망설이는 이유는 연습생이라는 일이 가진 불완전함 때문이다. 몇 년째 임시직이나 다름없는 신분을 갖고 뉴욕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유니콘을 찾는 일만큼이나 허무맹랑한 일일지도 몰랐다.

 

 

 

내가 원하는 어떤 순간이 있어요 (I want this on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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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엠비티아이를 '인프피'로 확신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프란시스가 생각하는 인간관계의 이상적 모습이 내 가치관과 완벽하게 일치하다는 것이다.

 

프란시스에게는 베프인 '소피'가 있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그들은 함께 살고, 먹고, 놀고, 대화하며 무수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프란시스와 소피가 켜켜이 합쳐온 시간들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밀도 속에서 커져만 갔다. 그러던 중 소피는 그들이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나가겠다고 선언한다. 프란시스는 당연히 충격을 받았고 서운한 마음에 화도 내보지만 그 어떤 방법도 소피를 달리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소피의 이사를 통해 둘은 공간적으로 분리된다.

 

연애 글귀 중에는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라는 문장도 있던데, 평소 나는 이 문장을 그리 믿지 않았다. 사랑은 분명 거리를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와 소피에 대해서도 물리적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서 힘주어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사 이후 그들은 서서히 멀어졌다.

 

집이 다르니 그들은 자주 만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소피에게 새로운 남자친구도 생긴게 큰 원인이었다. 소피는 프란시스보다는 남자친구와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되었고 모든 것을 공유했다. 크고 작은 일상을 공유하던 과거와 달리, 프란시스에게 말하지 않은 사건들이 소리없이 쌓였다. 그래서 가끔씩 전해듣는 소피의 일상은 프란시스에게 생경하게 들릴 뿐이었다. '나 약혼해', '나 일본으로 떠나' '나 결혼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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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소피가 일본에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었다. 역시나 프란시스는 모르는 일상이었다. 여러 사람들과 밥을 먹던 도중 소피의 일본 이사 소식을 들은 프란시스는 허둥대고, 어색하게 웃는, 한마디로 고장이 난 모습을 띈다. 누구보다도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최근 소식을 자기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다 먹고 사람들이 각자 소파에 한 자리를 차지해서 편히 등을 기대고 있을 무렵, 프란시스는 말을 꺼낸다.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제가 원하는 어떤 순간이 있어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그런 세계. 이번 생에 그 사람이 내 사람이라서 거기에 존재하는 비밀스런 세계를 만나게 되는 거죠.

 

 

영화를 끝까지 보면, 프란시스에게도 그런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프리타타를 하려고 했는데 스크램블이 되었어



프란시스는 어느 날 부엌에서 팬에 요리를 하다 뒤를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프리타타를 하려고 했는데 스크램블이 되었다'고. 프란시스의 얼굴에 띄워진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보면 이 문장의 뜻이, 더 좋은 걸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 망쳤다. 라는 뜻을 유추해낼 수 있다.

 

프리타타란 오믈렛과 비슷한 이탈리아 요리다. 속 재료로 채소나 고기, 치즈, 파스타 등이 들어간다. 많은 요리 유튜버들이 만든 프리타타에는 싱싱한 시금치와 토마토도 함께 들어가 있었다. 요리 만드는 영상을 볼 때 누구나 상상하게 되는 완벽한 결과물, 프란시스 역시 프리타타를 만들 때 머릿속 완성본을 생각하며 꽤 들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팬이 제대로 달궈지지 않거나, 계란물을 넣는 타이밍이 늦었거나, 어찌 저찌 타이밍이 맞지 않게 되면 그저 스크램블이 되어버릴 수도 없는게 우리네 삶이다. 시금치와 토마토, 치즈가 가득 들어있는 스크램블이 과연 망한 것일까?

 

 

 

 

프리타타와 오믈렛 사이를 오가며 하는 고민은, 제대로 된 직업이 없는 프란시스의 머릿속에 매일 들어있다. “플랜A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스크린 너머의 관객들도 어느새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게 맞을지, 아니면 현실과 타협한 직업을 갖는 게 이성적인 행동일지.

 

정해진 답변이 없는 질문이지만, 대답에 앞서 영화의 한 장면을 재생하고 싶다. 데이빗 보위의 Modern love를 배경삼아 프란시스가 뉴욕 거리를 큰 보폭으로 뛰어다니는 장면.

 

이상과 현실의 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사이를 넘어다니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행여 플랜B의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 선택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걸 잊지 말기를. 프리타타 대신 만들어 낸 시금치, 토마토, 치즈가 가득 들어있는 스크램블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스크램블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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