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대화를 통해 삶의 윤곽을 그려가다 - 윤곽 [도서]

글 입력 2020.09.29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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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방법. 최근 내가 다루고 있는 주제이다. 이것들을 위해 총체적 시각을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 레이첼 커스크의 장편소설 ‘윤곽’을 만나게 되었다.


‘윤곽’을 읽으면서 만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윤곽’은 익숙한 소설의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의 단편적인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적이긴 하나 상당히 밀도 있는 이야기를 남긴 채로 누군가는 다시는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문장을 통해 만났지만 마치 그들이 어디엔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일 것만 같고, 이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면 언젠가 그들과 친밀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상실 혹은 단절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짜임새가 있고 누군가의 인생의 단면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 이야기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다. 상실 혹은 단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상실이나 단절이 이 작품의 어떤 주제성을 띠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필연적으로 상실과 단절이라는 것이 이야기들의 공통점이 되어버린 건지 나는 알 수 없다. 후자의 경우라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상실과 단절을 겪게 됨을 의미할 것이다.


작품의 초반부에서는 이름조차 알기 어려운 주인공 파예 역시 이혼으로 인한 상실감을 안고 있는 인물로서, 아테네로 글쓰기 수업을 하러 온다. 작품은 주인공과 그녀의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남자와의 대화 상황으로 시작된다. 옆자리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길게 진행되는데, 그는 세 번의 이혼이라는 상실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아마 새로운 사랑을 하기가 두려울 것이다. 사람이 준 상실감을 메우기란 쉽지 않다. 아마 자신의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감정을 주었을 경험들에 대해서 그들은 말을 하고, 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객관성이 결여된 관점



많은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특히 옆자리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주인공과 같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는 객관적인가? 이전 아내들의 성격이나 품성에 대한 묘사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대로 조작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이야기를 할 때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작품 밖의 청자인 독자는 진실이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으며, 그것은 작품 속 청자인 파예 역시 마찬가지다. 보도자료에 있는 문장처럼, 이 작품을 읽을수록 ‘더 이상 진실은 없고 있는 것은 관점 뿐’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며 새로이 느낀 점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말할 때뿐만이 아니라 들을 때도 나만의 관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이렇게 두 사람의 관점의 필터를 거쳐서 이야기는 받아들여진다. 만약 중간에 전달자가 많다면 이야기는 더욱 더 사실과 달라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대화를 통해 삶의 윤곽을 그려가다



객관성의 결여라는 문제가 있음에도 우리가 대화를 하는 이유는 관점을 가지는 행위 자체가 가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기만의 관점, 자기만의 윤곽을 그려가는 일이니까.

 

 

옆자리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라는 하나의 형태, 윤곽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 윤곽을 둘러싼 바깥의 세부적인 면들은 모두 채워졌는데, 정작 윤곽 자체는 텅 비어 있었다. 그 형태 덕분에, 비록 그 내용물은 알지 못했지만,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지할 수 있었다. -281p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었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나는 대화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면 대화는 상대방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설령 그냥 ‘듣기’만 하더라도.


옮긴이 김현우는 ‘윤곽’이 ‘듣기’에 관한 작품이며, ‘그저 다른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라고 권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정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관점을 가져보기. 이것은 나 자신이라는 하나의 형태를 바라보고 인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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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곽
- 삶의 윤곽을 그려나가는 이야기 -
 

지은이 : 레이첼 커스크
 
옮긴이 : 김현우

출판사 : 한길사

분야
영미소설

규격
128*188

쪽 수 : 304쪽

발행일
2020년 08월 10일

정가 : 15,500원

ISBN
978-89-356-6854-0 (03840)
 
 
 

송진희 컬쳐리스트.jpg

 

 

[송진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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