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들은 항상 검은색 옷을 입는다 [사람]

‘First In, Last Out’ 공연 스태프들의 이야기
글 입력 2020.09.28 18: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First In, Last Out’
 
육군 통신병 근무 시절 지겹도록 듣던 말이다. 전시 상황에서 진지를 옮겨야 할 때 가장 먼저 연결해야 하고, 가장 늦게 철수하는 것이 통신이다. 이 말은 공병 병과에서도 많이 쓰이며, 군대뿐 아니라 소방관들의 정신력을 묘사할 때도 쓰인다.
 
문화예술 업계 안에서도 ‘First In, Last Out’의 정신력으로 무장한 이들이 있다. 바로 공연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공연 스태프들이다.
 
그들은 항상 검은색 옷을 입는다. 관객들의 눈에 띄면 공연 관람에 불편함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허리에는 검은색 무전기, 주머니에는 검은색 절연 테이프와 검은색 네임펜, 심지어는 눈 밑에 다크서클 마저 검은색이다.
 
나 역시 음향팀으로 공연 스태프를 해 본 경험이 있어, 그동안 내가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D-2

 

[크기변환]stage-1712494_960_720.jpg

 

 
보통 공연 이틀 전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정해준 시간에 맞춰 공연이 예정된 장소에 도착하면 이미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무대가 설치되어야 조명과 영상, 음향 장비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대 팀의 망치질 소리는 이미 도착하기 전부터 희미하게 들려온다. 꼭두새벽부터, 어쩌면 훨씬 전날부터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대 설치가 완료되면, 무대를 구성하는 장비들을 설치한다. 보통 사람들의 몸집보다 훨씬 크고, 수십 혹은 수백 킬로의 무게가 나가는 고가의 장비들을 나른다. 음향팀과 조명팀은 무대 상단에 스피커와 조명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하늘을 날기도 하고, 영상 팀은 무대 정면에 스크린을 설치하기 위해 벽을 타기도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이 없다 보니, 스포츠 시설 등지에 이러한 방식으로 공연을 위한 무대를 만든다. 짧은 시간 안에 무에서 유를 만들기 위해 수백 명의 인력이 동원된다. 온종일 그들의 땀방울로 만들어진 공연장의 모습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다.
 
혹시 비가 내리거나, 비 예보가 있다면 퇴근 시간은 늦어진다. 퇴근 전 공연장 곳곳에 설치한 장비들을 보호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거대한 비닐 천을 잘라 덮어 놓은 뒤에야 퇴근할 수 있다.
 
퇴근을 해도 무엇을 할 수가 없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현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일의 컨디션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재빨리 잠을 청한다.
 
 
 
D-1

 

[크기변환]photo-1527853359084-088460b3000d.jpg

 
 
잠만 자고 다시 돌아온 현장. 어제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공연 하루 전에는 보통 장비 운용이 잘 되는지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한다. 음향팀 같은 경우에는 더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피커 각도를 바꾸어 다시 설치하는 등 수정과 시도를 반복한다.
 
이후에는 공연 큐시트에 맞추어 다시 한번 테스트를 진행한다. 잘 되면 천만다행, 그렇지 않으면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물론 공연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보다는 천만 배 낫다. 따라서 기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모든 엔지니어들은 엄청남 심혈을 기울인다. 아니, 모든 것에 있어 심혈을 기울인다. 미처 바로잡지 못한 하나의 원인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는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 전날은 퇴근이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빠르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다음 날이 공연 당일이기 때문이다.
 
 
 

D-DAY


 

[크기변환]backstage-2858288_960_720.jpg

 

 
잠만 자고 다시 돌아온 현장. 그제와 어제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검은 옷의 이들은 모두 지쳐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야 한다.
 
아티스트의 리허설을 포함하여 최종 점검을 하게 된다. 아티스트의 동선에 따라 조명은 잘 작동되는지, 큐시트에 따라 영상은 잘 송출되는지 등 공연을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한다.
 
최종 점검이 완료되면,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한다. 이때가 스태프들이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간도 잠시, 무대감독의 사인이 무전기를 통해 전파되면 공연은 시작된다.
 
혹여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모든 이들은 절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 공연만을 위해 여러 번의 리허설을 하고, 그러한 과정이 담겨 있는 수백 번의 공연을 진행해 왔으면서도 긴장한다. 공연이 잘 마무리되는 것은 그들의 사명감이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퇴장하면, 스태프들은 다시 분주해진다. 쌓아 올린 무대를 분해하여 원상복구 하는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대를 쌓아 올린 순서의 역순으로 진행한다. 대개 늦은 시간 공연이 끝나기 때문에 조명팀은 오래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고, 모든 장비가 철수되어야 무대를 철수할 수 있으므로 무대 팀 역시 현장에 오랫동안 남아있게 된다.
 
모든 장비를 철수한 후, 그 장비들을 다시 창고 혹은 다음 공연이 진행되는 곳에 정리하게 된다. 아티스트와 관객들의 공연은 한참 전에 끝났지만, 스태프들의 공연은 그제야 막을 내린다.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근한다.
 
*
 
빨래통에는 검은 옷들이 쌓여있다. 주머니 속에는 구겨진 큐시트 종이가 땀에 젖어 으스러져 있다. 몸 상태 역시 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처럼 신체적으로도 힘들고 눈에 띄지도 않는 직업을 생계를 위해 가진 거라면 절대 버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해낸다. 그들은 진정 무대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와 이로 인한 공연 취소는 상당히 치명적이다. 생계의 문제가 아닌,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연이 없는 요즘, 현장에 출근하는 날이 아님에도 외출을 할 때 검은 옷을 입는다. 옷장에 검은 옷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검은 옷은 그들의 자부심이다. 무대는 그들의 전부와도 같다.
 
 
유튜브 '학이감독'에 업로드 된 이 영상에는
공연 스태프의 하루 일과가 담겨져 있다.
일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하다는 말이
직업에 대한 그들의 열의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 또한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 중 한 사람으로서 공연장의 열기와 화려한 무대가 그리울 뿐이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려본다.
 

 



[이호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96800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