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지개 시리즈-보라' 판타지가 끌리는 이유 [영화]

글 입력 2020.09.2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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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우리가 말하는 보라 purple을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는 '바이올렛 violet'이라고 지칭한다. 보라는 빨강의 힘과 에너지에 파랑의 신뢰성과 진실성이 합쳐진 색이다. 보라는 모든 색들 가운데 파장이 가장 짧고 우리 눈에 보이는 마지막 파장이다. 그래서 보라는 고차원적인 우주를 연상시킨다. 보라는 영적 각성과 사색을 나타내기 때문에 성직에 종사하거나 명상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이다. 보라는 심사국고와 고차원적 진리 탐구를 의미한다.

 

 

캐런 할러의 <컬러의 힘>(2019)에 나오는 보라의 긍정적 속성이다. 성직에 종사하는 것도, 명상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보라이기도 하다. 굳이 따지자면 파란색 비중이 높은 남색에 가까운 violet보다는 빨간색 비중이 높은 핑크에 가까운 purple을 더 좋아한다.

 

보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는 재능이 넘치는 예술적 감각을 갖고 있고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개성 표현이 강하다. 성격이 예민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여 허영심이 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상처를 잘 받고 고독을 즐긴다. 의외로 폭력적이며 광기가 있다.

 

인스타그램 feed_fashion에서 본 게시물의 일부를 발췌했다. 어느 정도 연구대상과 범위를 정해놓고서는 신빙성 있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 없는 특징이다.

 

보라는 특별했다. 왕족과 부유층과 고위 성직자들이 쓰던 색이었다. 비싸고 드물었기 때문에 아무나 입을 수 없는 색이었다. 고귀하고도 품위가 있던 보라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자기 성찰과 영적 각성이라는 의미를 담기도 하고 마음의 평정과 깊은 사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색이라고 한다.

 

평소에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 창밖 풍경과는 다른 엉뚱한 상상이 때로는 영감으로 이어져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내 머릿속은 항상 분주하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잘 때마저도 꿈속을 유영하는 게 습관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보라가 끌리나 보다. 감정적이고 쉴 새 없이 요동치는 내 마음에 안정을 선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술적 세계로 인도하는 지름길의 역할을 하는 보라는 나의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다.

 

어릴 적 조그만 나의 세계를 침투한 보랏빛 감각을 지닌 한 인물이 있다. 항상 그만의 독특하고 기이한 세계를 만들며 수많은 영화 팬을 보유한 영화감독 팀 버튼이다. 그를 처음 접한 건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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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제대로 못 읽던 시절, 엄마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동화 <헨델과 그레텔>에 아이들의 몸집보다 훨씬 큰 과자 집은 충격이었다. 과자는 나의 뱃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지, 사람이 사는 집으로 만들었다는 게 가능한가? 그렇게 조그만 나의 세계는 벽을 부수며 확장하고 있었다. 과자집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찰리의 초콜릿 공장이었다. 윌리 웡카가 행운의 다섯 어린이에게 초콜릿 공장을 구경시켜주는데 그 장면들이 환상적인 판타지였다.

 

사탕 숲과 초콜릿 강은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히 매혹적인 요소였다. 화려한 색감들이 줄줄이 펼쳐지는 가운데 누가 누군지 구분이 안 되는 움파룸파족의 등장은 이 판타지의 마침표 같았다. 먼지가 흩날리는 삭막한 공장의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윌리 웡카만의 초콜릿 공장은 그만의 작은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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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웠다. 인간의 욕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벌을 받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될까 봐 움츠러들었다. 창백하고 차가운 표정을 짓는 윌리 웡카가 자꾸만 떠올라서 도망갔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오해와 편견으로 물든 부자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장면이었다.

 

원작소설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설정을 추가한 팀 버튼 감독의 재치는 이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돋보였다. 그만의 특별한 마을을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만든 이유에는 그의 숨겨진 과거도 보탰을 것이다.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은 위대하다. 부자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텐가? 비슷한 연대에 개봉한 팀 버튼 감독의 <빅피쉬> (2004)이다. 이 영화에는 아들과 아버지가 나온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불만이 가득하다. 항상 어디든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아버지가 못 미덥다. 아들의 직업은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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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에드워드 블룸의 이야기에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다. 블룸의 이야기 속에서 그는 평생을 한 여자만 바라보는 사랑꾼이었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였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창조자였다.

 

<빅피쉬>하면 가장 유명한 장면은 황 수선화가 만발해있는 꽃밭에서 에드워드가 산드라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온 스텝이 동원해서 심었다는 황 수선화는 영상미를 더해준다. 난 이 로맨틱 장면보다는 아버지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드리워져 있는 죽음이 곧이라는 걸 직감했을 때 아들 윌이 꺼내는 마지막 이야기가 더 좋다.

 

애초에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마냥 아들 윌의 품에 안겨있는 아버지 에드워드의 표정은 편안하다. 강으로 들어가기 전 그의 일생을 함께 했던 수많은 인물이 스쳐 지나가듯 나온다. 그 인물들은 에드워드의 장례식에도 등장한다. 자신의 인연들을 소중히 여기고 이어왔던 에드워드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감동적이고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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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생의 수많은 에피소드는 동화적 상상력이 가미되어 듣는 이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자리 잡을 것이다. 어릴 적 잠들기 전 엄마의 목소리로 들었던 동화가 조그마한 나의 세계가 굴러갈 수 있게 도와줬던 것처럼 좀 재미없어 보여도, 어딘가 팍팍해 보이는 이 현실을 꿋꿋이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이야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반대는 비현실, 비현실은 판타지가 가득 담긴 세계일까. 인간은 반짝반짝하고 특별한 것에 끌린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탐이 난다. 보랏빛 세상을 가끔 꿈꿔보는 내가 판타지에 끌리는 이유다.

 

 

p.s. 무지개의 마지막 색은 보라다. 고로 무지개 시리즈는 끝이 난다 생각하겠지만 유채색의 향연 뒤에는 무채색의 배경이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에디터 이지윤.jpg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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