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감정의 유동성에 관한 서사 – 에쿠니 가오리

감정을 규정하려고 하지 마세요.
글 입력 2020.09.13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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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엇’으로서 사랑


 

무엇, 이라고 단정되곤 하지만 이름이 갖는 무게만큼이나 그런 설명들은 체계적이지도, 깊지도 않습니다. 감정이란 무릇 그렇게 종잡을 수 없는 것인 셈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상태가 하루에 몇 번이나 바뀌는지 관찰하는 행동은, 특별한 목적이 없는 한 무의미한 일에 가깝습니다. 관찰하는 새에 금방 휘발해버리곤 하니까요. 수많은 소설은 감정이란 ‘무엇인가’에 방점을 찍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리적으로 잡히지도 않아, 온전히 내면의 판단과 느낌으로 존재 여부를 따져야만 하는 요소가 아니던가요.

 

특히 애정을 다룰 때 더욱 그렇습니다. 로맨스가 장르인 작품에서 흔히 목격되는 장면은, 어느새 주인공들이 사랑을 규정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정확히는, 대중적으로 사랑이라 통용되는 감정적 상태에 진입하는 것이죠. 소설이든 간에, 영화이든 간에 그렇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기술하기 힘들어요. 파편적으로, 행위와 일련의 상태들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있겠네요. 서로에게 절절히 매달리는 것. 자기 인생의 중심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상대에게 뛰어드는 것. 신뢰감을 쌓는 것. 곁에 있어 주는 것. 열정을 발휘하는 것. 이미 그들에게 사랑이란 이와 같은 형태들이 이어져 만들어진 ‘무엇’으로 정의된 상태죠.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의문은 생겨요. 특정한 행동과 감정의 진술로 사랑을 특정하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해도 될까요. 스크린 너머의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사랑을 이야기하고,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죠. 글자가 쓰인 종이에서도 사정은 똑같습니다. 인물들은 이미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사랑이라 칭하는 상황에 몸을 던진 상태예요. 독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래, 저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있구나. 하고 수긍하는 것밖엔 없어요. 완전히 수긍하지 못하겠다면 억지에 불과하겠지만,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분명 있어요. 저는 그랬답니다.

 

 

 

2. 감정의 기록


 

그래서 저는 감정에 대한 기록을 담았습니다. 규정이 아니라요. 이야기를 통한 기록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물론 저의 기록 역시 통상적으로 사랑이라 논하는 개념과 상황에서 완전히 이탈하긴 어렵겠죠. 그렇지만 저는 단정하진 않았어요. 무엇이 사랑인지 선언하고자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말이에요. 여전히 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건 그들 스스로의 선언일 뿐입니다. 저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어요. 보여주고만 있죠. 여기, 당신이 마주하는 이야기 속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데. 혹은 자신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당신이 보기엔 어떤가요.

 

그런 탓에 어떤 사람들은 제 글이 지나치게 감각적이라고들 말하곤 합니다.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는 데에만 잔뜩 힘을 주어서, 서사에 스며드는 교훈과 중심 맥락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들 말이죠. 아무래도 이 세계의 사람들은, 관찰하기보다 규정하기에 관심이 훨씬 많아요. 왜일까요. 어떻게 다들 그런 규정과 규정하기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저는 보편의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사소한 결에 집착하는 듯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게 한 발짝 물러난 마음에서 글을 썼습니다.

 

“도쿄 타워”의 시후미와 토오루, 코우지와 유리, 키미코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죠. 한국어로 번역된 제 책은 어떤 형태로 시중에 출간됐는지 궁금해서, 조금 찾아봤습니다. 세련된 디자인과 함께, 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서점에 진열돼 있더군요. 표지의 맨 뒷장에는 제 소설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 적혀 있었어요. “…어지러운 시간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스치듯 가벼운 관계이거나 주체할 수도 없이 쏟아지는 짙은 감정이거나. 사랑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나약해지고 한없이 비참해진다.”

 

고개를 갸웃하긴 했습니다. 한없이 나약해지고 비참해지는 이야기를 담았던가, 내가. 하고요. 아리송한 면은 있지만, 틀린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거나’에 초점을 맞춘다면 말입니다. 분명 제가 “도쿄 타워”에서 그리고자 했던 건, 어떠한 형태로 고정되지 않은 채 단지 인물들의 발화에 의존해 ‘이런 게 사랑일 수도 있나’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니까요. 결론을 내리지는 않고 말이죠.

   

 

…서른 살의 시후미, 스무 살의 시후미, 열다섯 살의 시후미, 독신의, 그리고 소녀 적의. 토오루는 그것이 너무 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정하기 어렵고, 부당한, 한없이 쓸쓸한 일이라고.

 

시간.

정말 분하게도, 지난 시간만큼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토오루는 시후미의 시간을 오롯이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체념했습니다. 토오루가 호소하는 사랑은, 표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요. 건조하게 사랑한다, 라는 말을 내뱉거나 에둘러 시후미를 향한 자신의 바람을 읊조리는 정도 이상으로, 토오루 쪽에서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는 드물죠. 그의 친구 코우지와는 다르게요. 시후미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지만, 그녀 역시 애정을 말로 드러내는 것 이외에 행동으로써 마음을 격렬히 표출하지는 않았어요.

 

토오루와 시후미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시후미는 결혼을 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중년의 여인이고, 토호루는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이십 대 청년에 불과합니다. 둘의 밀회와 육체적인 애정을 읽어가며 우리는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단언하지 않기도, 단언하기도 둘 다 어려울 겁니다. 단언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를 사랑이라는 숭고하고 헌신적인 감정에 포섭되도록 공모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그들의 관계가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하기엔, 서로를 원하는 감정과 서로의 입에서 발화되는 애정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았기에 그것대로 난처하죠.

   

 

…키미코의 대담함과 솔직함은, 분명 사랑해야 할 무언가였다. 탄탄한 몸과 힘센 팔도.

 

코우지에게 키미코는 번거로운 일과 무관한 여자였다. 만나서 서로 사랑하고 헤어진다. 주위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요시다의 출현도, 유리와 코우지와 하시모토도, 대학과 아르바이트와 취직과, 그밖에 코우지 자신을 자신답게 하는 것과 키미코는 무관한 장소에 있었다.

 

 

코우지와 키미코, 유리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우지는 키미코와의 관계가 단지 육체적인 사랑을 순간에 나누는 정도에 그친다고 생각하죠. 유리 앞에서는 ‘평범한’ 대학생 남자친구로, 꽉 막히지 않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변신해 일반의 대학생다운 연애 감정을 내비치다가도. 유부녀 키미코와 만났을 때는 육체를 탐닉하는 것에 집중하며, 원초적인 욕구로 점철된 열정을 분출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키미코와 있을 때 유리를 떠올리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펼쳐질 때 코우지는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유리와 일상을 보내면서 키미코와의 잠자리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키미코와 성관계를 가지는 와중에 유리의 평소 습관과 취향을 떠올리고.

 

성인 남성의 문란한 애정 관계를 옹호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물어보고 싶었던 거예요. 사랑은 반드시 한 가지 형태로만 존재하는지요. 두 가지 이상의 사랑이 한 사람의 내면에서 공존할 수는 없는 걸까요.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는, 당연히 우리의 윤리관과 사회적 관습을 생각했을 때 비정상이라 규정될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인지, 사랑이 아닌지의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거든요. 직면한 사람에게 달린 일이지.

 

코우지는 키미코와 나누는 애정이 단지 육체적 만족을 주고받는 것에 불과하다고 단정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그녀의 흔적을 떠올리죠. 유리와의 관계에서도 성격만 다소 다를 뿐 비슷합니다. 단지 대학생의 신분으로 가볍게 만나는,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만 유리를 대하다가도 키미코와 감정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역으로 유리와 주고받는 ‘안정적인’ 애정을 떠올리곤 하죠. 또래 여자아이와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정상적인 즐거움을요. 키미코를 향한 감정과 유리를 향한 감정 중, 무엇이 사랑이라 자신 있게 우리가 결정할 수 있을까요. 도쿄 타워를 등에 지고 살아가는 이들의 기록에서 잠깐이라도 망설임을 느끼셨다면, 제 작품은 성공한 셈이 되겠지요.

 

 

 

3. 그러니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얼마 전 당신의 걱정을 엿들었습니다. 절친한 친구와 나누셨던 애정 상담을 조금 엿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이분도 감정을 손에 쥐고, 규정하려고 하시는군. 친구분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가 규정하는 바와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네게 애정이 없는 건 아니야, 라고요. 이런 말도 듣지 않으셨던가요. 온도가 낮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압니다.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격언이 으레 이야기하듯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시기 힘들겠죠.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그리 쉽게 규정하려고 마음을 쓰진 마세요. 도쿄 타워의 인물들은 어쨌거나, 복잡하긴 하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을 마음껏 드러냈고 마음껏 행복했으니까요. 행복하면, 즐거우면 되는 일입니다. 관계로부터 일말의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으로 당장은 충분할 거라 본인을 달래야 해요. 감정은 우리의 예측과 규정 범위를 벗어나는 존재니까요.

 

그러니 내버려 두세요. 스스로와 상대방의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하고자 구태여 애를 쓰지 마세요. 그렇게 통제함으로써 한 가지 형태로 애정을, 사랑을 고정한다면 당신은 매번 그분과의 관계를 의심해야만 합니다. 고통으로 발을 내딛기보다, 본인의 상태를 기록하는 일에 힘을 쓰세요. 보편의 형태에 맞추려고 하기 전에, 그와의 관계가 본인에게 만족감을 주는지부터 다시 한 번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실무진 명함.jpg

 

 

[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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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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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쿠니 가오니 작가님을 실제로 인터뷰하신 내용인가요?
      정확히 어떤 형식의 글인지 궁금합니다
    • 0 0
    • 댓글 닫기댓글 (1)
  •  
  • Y2eon
    • 2020.09.17 21:00:35
    • |
    • 신고
    • 직접 작가의 입장이 된 상태로 써 본 글입니다.  :)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해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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