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족이라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잖아요 : 고요한 인생 [도서]

단편소설집 『고요한 인생』
글 입력 2020.09.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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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냄새가 아주 강한 책. 표지의 푸름을 몇 장 넘기면, 면면을 빼곡히 채운 정갈한 글씨체가 보였다. 편안하고 따스한 이야기려나.


예상은 보기 좋게 엇나갔다. 일곱 개의 이야기는 결핍, 절망, 소외, 분리, 부적응 등 어두운 면을 중심소재로 내세웠다. 다만 그렇게 울적하지 않다는 점이 다음 장을 넘기게 도와준달까. 노골적인 표현력 때문에 강한 불쾌함이 느껴진 작품-언더독, 그 집 앞-도 있었지만, 주인공의 심정이 세세하게 다뤄지는 것치곤 격정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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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좋아해도 소설집에는 큰 감흥이 없었다. 이야기들이 연달아 있어, 한 편에 오래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 탓이었다. 그러나 이번 단편 소설집 <고요한 인생>을 통해서 소설집의 묘미를 느꼈다. 바로 연결이다.


제목과 소재가 연결된다는 느낌은 `아들`에서 `언니의 봄`으로 넘어갔을 때이다.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 찬찬히 내용을 되감아 보며 각 단편을 한 매듭으로 엮어보았다. `고요한 인생`의 주인공은 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이가 아니고, 이상한 기시감이 들 정도로 계산에 능하고 사람을 잘 읽는, 그런 아이. 아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들`이 시작된다. 글 속 아들은 꿈에서 소년의 모습으로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의 죽음을 뒤로하고, 아들은 자신의 길을 걸어나간다.


`언니의 봄`은 난희 언니의 자살에 관해 이야기한다. 가족들 뒷바라지해가며 물심양면 도왔던 난희 언니를, 가족 중 누구도 언니가 서러움에 몸부림칠 때 살펴보지 않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붙여가며. 이 서러움은 `언더독`의 위축감과 비슷하다. 자신보다 잘난 형제에게 열등감과 위축감, 서러움을 느끼던 발화자. 맥주에 얼큰히 취한 그의 모습은 `낮술`로 이어진다. `낮술`은 제목 그대로 시간이 펑펑 남아도는, 사람 셋이 만나 낮술을 마신다. 술안주로 나온 오징어의 더듬이 두 개가 대화 화두가 되면서, 그것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말이 이어진다. 다음 단편 제목은 `아이 러브 유`이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불행하게 살았던 자신의 어머니. 그 어머니와 다르게 살기 위해 도망친 자신. 결혼.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어진 자신. 주인공은 상상했던 장소를 현실에서 찾아가고, 문을 열려고 애쓴다. 이 무수한 발자국은 `그 집 앞`의 남자의 여행과 닮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가며, 여러 단편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자니 이야기가 더 풍부해진 느낌이다. 때로는 현실과 똑같아서 거부감이 들고, 때로는 그러해서 공감하고, 인물을 이해한다. 7가지의 짧고도 묵직한 이야기 중에서 `언니의 봄`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해 보려 한다.

 

 

 

봄은 `시작`이라고들 말한다



 
언니는 지독한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반쯤 얼이 빠졌습니다. 뒤통수를 둔기로 힘껏 가격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언니는 단 한 자도,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떠났습니다. 티끌만큼의 미련도 남지 않은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모습인 것이지요. 삶을 누리는 대가로 우리는 그녀의 죽음을 평생 화인처럼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언니의 봄」은 인물 간 대화보다는 독백과 설명이 주를 이룬다. 발화자인 동생은 자신의 죽은 언니, 난희 언니의 1주기를 맞이한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이야기한다. 극 초반에는 화자가 언니의 죽음을 이겨내는 상황인 줄만 알았다. 주변인의 죽음을 처음 겪어보았다고 말하며, 난희 언니가 강박관념이 있었음을 자연스레 전한 터라 그만큼 가깝고 친밀하였구나, 예감했다. 그러나 이어진 말은 꽤 쓰라렸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아픔은 부재의 슬픔이 아니라 부채의식 때문이었다는 정리. 이 한 마디로 난희 언니가 가족 내에서 어떤 위치, 어떤 사람,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동생은 난희 언니를 잘 모른다. 그러나 가족 중에서는 동생이 가장 잘 안다. 이 아이러니함은 동생이 언니의 죽음을 이렇게 정의하도록 만든다. `티끌만큼의 미련도 남지 않은 사람`. 정말, 난희 언니는 미련이 없었기에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어느 봄날에 떠났을까? 어쩌면 남은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아 유서의 의미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의 죽음을 평생 간직해야 한다는 동생은 바로 다음 문장에서 말을 바꾼다.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우리와 같은 세계에 속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살 것 같기도 해요.
 


동생의 말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난희 언니가 세상을 떠난 지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들이 추모하는 의도가 아주 투명하게 드러난다.


 
묘지 앞에 도착한 우리는 석재 화병에 조화를 깊숙이 찔러 넣었고 돗자리도 깔았습니다. 엄마가 두터운 성경책을 펼치고 울음 섞인 음성으로 망자의 명복을 읊조리자 모두들 코를 훌쩍이거나 손수건을 눈 밑에 갖다 댔어요. 슬픔이 파도처럼 우리를 덮쳤지요.

 

추모의식이 끝나자 돗자리 위에 갖가지 음식들이 차려졌습니다. 큰언니가 펼쳐놓은 김밥은 금세 동이 났고 올케언니가 가져온 찰떡도 쫄깃하니 맛있었습니다. 보온병에 담긴 커피 맛도 훌륭했으며 싱싱한 방울토마토와 달콤한 딸기로 디저트까지 완벽하게 끝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죽는다는 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네요.
 

 

그들은 생전에 아주 애틋한 가족이었던 것처럼 고상한 추모를 올린다.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 모두가 울먹인다. 이들 가족에게 추모는 부채의식을 덜어내는 행위인 거다. 여러 재능이 많았던 난희 언니는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저 자신을 책임졌다. 불평이나 불만을 쏟으며 자리에 주저앉을 법도 한데도 꿈을 잃지 않았다. 경력을 쌓고 밀라노에 가서 활동하고 싶다며 어학 공부에도 힘썼다. 이랬던 난희 언니의 삶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결혼 때문이었다.


형부가 될 남자는 돈이 많았다. 가난에 허덕이던 가족들은 눈에 불을 켜고 난희와의 결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려고 한다. 난희 언니는 그 뜻에 따른다. 발화자인 동생은 언니가 더 원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가난 때문이 아니고 옆에서 부추기는 가족들 때문에 지긋함을 느꼈을 확률도 높다. 이전에는 무얼 하려고 노력하든 신경 쓰지도 않더니, 자신들에게 득이 될 기미가 보이자마자 자신의 인생에 참견하려는 꼴을 보고도 가족의 정감을 느낄 이는 거의 없을 테다. 가난하고 시끄러운 집보다야 풍요롭고 조용한 집안이 당연히 더 좋을 것이다.


문제는 남편의 집안배경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이다. 회사가 거의 쓰러져 가던 중에 바깥사돈이 쓰러지고, 일 년 간 병수발을 들고, 회사는 끝났다. 부잣집 자제가 모든 것을 구원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그 누구도 제대로 확인해보려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멋대로 꿈꿨던 일이 다 허울이었음 깨닫는 아픔 정돈 있었어도 형부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리며 해결되었다. 그러니까, 남 탓 하는 것으로 끝날 가벼운 수준이었다. 반면, 난희 언니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한 피해를 보았다. 이제는 빚이 난희 언니를 따라다녔다.


난희 언니는 집안의 가장이었다. 생활비, 동생 용돈 등 가족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은 난희 언니로부터 제공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에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긴 게 맞을 거다. 만약 그랬더라면, 누구라도 난희 언니에게 손을 내밀었겠지. 이번엔 내가 돕고 싶다고.


동생은 이렇게 합리화한다. `언니가 우리 중 누구에게 직접 도움을 요청한 적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은 박봉이어서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독립 후 충분한 자산을 얻은 오빠와 큰언니를 마음껏 비난할 순 없지만, 그래도 자신은 나름 그러지 못한 이유가 있노라고. 교묘하게 화살을 돌린다.


이야기는 헤세의 시로 끝이 난다. 언니가 죽기 6개월 전, 언니를 찾아간 자신에게 언니가 추천해주었던 시. 꼭 난희 언니와의 추억을 돌아보며 그를 추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다. 동생은, 그리고 가족들은 난희 언니를 아주 가끔, 부채의식을 덜고자 할 때나 떠올렸다가 금세 잊어버릴 것이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이다. 잊기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 잊힌다. 난희 언니가 베풀었던 것, 난희 언니가 살아온 이야기, 가족들이 의무감으로라도 해야 할 일.


난희 언니는 이래서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까. 무엇을 남기든 가족들에게선 금방 잊힐 것이니까. 오히려 그가 돌보았던 고양이 두 마리가 난희를 오래도록 그리워하겠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가족. 과연 이 수식어가 `가족`에 걸맞을까. 세상이 명한 그 이름에 억지로 가족 구성원들을 끼워 맞추며, 가족이니까 이래야 한다고 합리화해온 결과물은 아닐까. 당신의 가족은 어떤 사람이고, 당신은 어떤 가족인가?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 같은 `가족`이라는 이름도 각자 다르게 정의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요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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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문학〉 한국소설


지은이

신중선


펴낸 곳

내일의문학


쪽수

204쪽


가격

15,000원


규격

134*200 


ISBN

978-89-98204-76-1 (03810)


출간일

2020. 07. 27.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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