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간과 인간 – SBS '나의 판타집'을 보고 [TV/예능]

나의 판타집을 보고 느낀 공간의 중요성
글 입력 2020.09.0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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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감을 경험해볼 순 없을까?


 

지난 8월 18일, SBS에서 예능 파일럿 프로가 방영됐다. 제목은 <나의 판타집>. 말 그대로 의뢰인의 ‘판타지 집’을 찾아 1박 2일간 살아보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PD는 ‘옷도 입어보고 사고, 자동차도 시승해보고 사는데, 집은 왜 살아보고 살 수 없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이 프로를 기획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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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감에 대한 생각은 비단 우리나라 사람만의 고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 외국에서도 이와 같은 궁금증으로 시작한 건축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바로 알랭 드 보통의 Living architecture인데, 일정 비용을 지급하면 집을 구매하지 않는 사람도 1박 2일간 그곳에서 지낼 수 있는 프로젝트이다.
 
한국의 <나의 판타집>과 외국의 Living architecture는 건축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인문학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실제 <나의 판타집>에서 1박 2일간 의뢰인들은 자신들이 몸담은 공간을 바꾼 후, 그들의 태도가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전 집에서 아이가 뛰는 것을 늘 말렸던 부부는 판타집에서 아이들이 더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 예전 집에서 불면증에 시달렸던 의뢰인은 휴식의 로망 하우스에서 달콤한 단잠에 빠지기도 한다. 두 의뢰인은 모두 판타집에서 일어난 자신들의 모습이 어색하다고 얘기한다.
 
 
 
공간이 가지는 의미

 

사실 공간이 인간에게 중요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전해져오는 풍수지리에서도 알 수 있다. 북향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고, 침대의 위치는 출입문에서 대각선 위치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등 다양한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풍수지리는 가구의 배치뿐만 아니라 집안 인테리어에도 영향을 주는데, 부를 위해 집안에 큰 해바라기 그림을 배치하거나 부엉이 장식품을 배치하는 것이 그 일종이다. 또, 실제로 집을 알아보러 부동산에 가면 한 번씩 “이 집은 터가 좋아서~”나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다 잘되서 나갔어요~”라는 멘트를 들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삶 곳곳에는 공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비단 풍수지리뿐만 아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필자만 하더라도 어릴 적에 의자와 책상 위에 이불을 덮어 만든 ‘나만의 아지트’나 친구들끼리 자주 가던 ‘비밀 창고’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나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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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나의 판타집에 나왔던 의뢰인인 허영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투영해 판타집을 그렸다. 그러면서 내내 그때 느꼈던 기억들이 힘들 때 자신을 버틸 수 있는 지지대로 작용한다고 했다. 허영지의 모습을 보던 자문위원인 유현준 교수 (건축가)는 공간과 관련된 기억이나 추억이 많을수록 심적으로 풍족하다고 얘기했다.
 
 
 
공간의 플레이리스트

 

혹시 기분이 울적할 때, 혹은 기쁠 때나 화날 때 주로 가는 공간이 있는가? 유현준 교수는 그 개념을 ‘공간의 플레이리스트’라고 얘기하는데,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곡이 있는 것처럼 자신만의 공간도 음악 플레이리스트처럼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한다.
 
유현준 교수는 비단 자신 소유의 공간이 아니더라도 심적으로 편안해지는 공간이 많이 생길수록 그만큼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낯선 동네로 이사할 때 종종 산책하러 가는데, 동네를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최근 필자의 주변에는 타지로 취업해 독립한 친구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친구 중 대다수는 일에 치여 자신의 동네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또 어떤 공간들이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 늘 “다시 우리 동네로 가고 싶다~ 그리워~”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그 모습이 꼭 향수병을 앓는 사람 같았다. 지금 보니 향수병은 자신이 편히 생활했던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 같다.
 
 
 
요즘 트렌드, ‘집’ 예능

 

요즘은 ‘집’이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매물을 봐주는 <구해줘 홈즈>, 바퀴 달린 집을 자동차 뒤에 달고 방방곡곡을 다니는 <바퀴 달린 집>, 집안 정리를 도와주는 <신박한 정리> 등 다양한 예능에서 집이라는 공간을 재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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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점은 공간을 재조명하며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다. 특히나 의뢰인의 집안을 샅샅이 파헤치는 신박한 정리를 보고 있으면, 꼭 한 사람의 역사를 집안 물건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새로운 결심만 하는 것은
무의미한 행위다.
 
- 오마에 겐이치
 
 
일본의 경제학자 오마에 겐이치는 그의 저서인 <난문쾌답>에서 위와 같은 얘기를 했다. 공간이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는 구절인 것 같다.
 
지난 8월 25일로, 나의 판타집은 종영했다. 비록 현실적으로 일반인들이 살아볼 수 있는 집과 거리가 멀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졌지만, 공간이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효용을 의뢰인들의 모습으로 볼 수 있었던 프로였다.
 
2부작 파일럿 프로였지만, 깊은 울림이 있었다. 담당 PD의 바람처럼 언젠가 거주감을 미리 경험해보고 집을 구매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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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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