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가의 탄생 - 더 와이프 [영화]

글 입력 2020.08.2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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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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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캐슬먼은 노벨 문학상을 기다리느라 쉽게 잠들지 못한다. 흰머리의 노작가는 잠자리에 편히 들기 위해 섹스로 아내 조안을 회유하고 조안은 마지못해 남편의 칭얼거림을 받아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온 전화. 조셉과 조안은 같은 수화기를 통해 노벨 문학상에 선정되었다는 재단의 전화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결과를 듣는 동안 화면은 조셉이 아닌 아내 조안을 밝은 곳에 배치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한다.


여기까지 짐작 가능하듯, 실제 작품을 써서 노벨 문학상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남편 조셉이 아닌 그의 아내 조안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이러한 진실을 암시하는데, 가령 스톡홀름으로 떠나기 전 작품에 대한 찬사가 오가는 동안 카메라는 조안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으며 찬사를 받아야 할 사람이 조안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책에 대한 평가를 듣는 조안의 표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캐슬먼(castleman) 부부는 그 이름에 걸맞게 성 안에 갇혀 있는 상태다. 남편 조셉 캐슬먼은 열등감이란 성 안에 갇혀 있는 인물로, 신념은 있지만 글 쓰는 재능은 부족하다. 그의 자격지심은 성적 매력을 이용한 불륜으로 분출된다. 그런 남편을 참아내는 조안은 대필 작가라는 거짓된 성(castle)에서 살고 있다. 조안의 거짓 성(castle)은 여성이 작가가 되기 힘들었던 당시의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으로 부족했던 신념, 그리고 남편의 가스라이팅에 의해 지어진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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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가스라이팅은는  부부가 함께 대화하는 순간순간마다 포착되는데, 두 사람의 짧은 대화와 행동을 통해 조셉이 한평생 조안을 어떻게 조종하고 세뇌 했을 지가 그려질 정도다. 가령 조셉은 주로 자신의 남성성과 성적 매력, 사랑이란 이름을 이용해 조안을 회유한다. 조안이 떠나겠다고 소리치자 스킨십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가 하면 괴로워하는 조안에게 막 태어난 손주 이야기로 가정의 유지와 사랑을 강조한다.


조셉은 또한 조안 스스로 작가가 되지 못하게 만든 그녀 내부의 또 다른 자아로써, ‘우리는 지금 행복하다’며 현재 상황을 정당화하는 설득의 목소리다. 즉 조셉은 조안이 진실 된 자아로 접근하는 것을 막은 조안의 또 다른 내면. 조셉의 죽음은 영화 내내 미세한 균열을 보이던 조안이 기존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상징적 의미다.

 

 

 

1. 배우 '글렌 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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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직접적인 말이나 감정을 터뜨리기보다는 겉 표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암시하는’ 시선을 유지한다. 하지만 조용해 보이는 수면 아래, 조안의 격정적인 감정이 들끓고  표면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모든 과정이 배우 글렌 클로즈의 연기로 미묘하지만 매끄럽게 실현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많은 페미니즘 문학이 남성 지배 사회에서 짓눌린 여성을 다룰 때 경직된 표정과 꾹 눌러 참는 입술로 그들의 억압된 세월과 흔적을 묘사하곤 한다. <더 와이프>에 나오는 글렌 클로즈는 은밀한 비밀을 품다 못해 강하게 억눌려 폭발 직전인 ‘조안’을 훌륭히 연기해 그 해 골든 글로브 상을 수상했다. 금속처럼 경직된 얼굴 아래에 요동치는 감정은 그녀의 흔들리는 파란 눈으로 드러나고 입술은 굳게 닫혀있다. 영화는 글렌 클로즈가 한 화면 안에 채워내는 복잡한 감정으로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간다.

 

 

 

2. 작품 속 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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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고 암시하는 영화의 시선에 맞게 <더 와이프>에는 복선이 간간이 깔려있다. 영화 끝에 벌어지는 결정적 사건인 조셉의 죽음은 사실 애초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단 것을 쉴 새 없이 먹어대는 조셉의 나쁜 식습관과 심장질환은 계속 언급되고 호텔 식당에서 ‘당신 죽을 것이다’라는 조안의 말은 죽음의 경고로 다가온다. 또 조셉이 여자를 꼬실 때 늘 사용하던 <율리시스> 속 시,

 

 
‘그의 영혼이 천천히 쓰러진다. 이 세상에 힘없이 내리는 눈 소리를 들으며..  눈은 힘없이 마치 지금이 마지막 하강인 듯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떨어진다.'
 

 

이 시를 읊던 조셉의 영혼이 눈 내리는 밤에 천천히 쓰러지게 되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다.

  

또한 작품 중간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계속 등장한다. <율리시스>는 기성 문학의 형식과 기존 관습에 반발하는 모더니즘 문학의 금자탑이다. 여성은 작가가 되기 힘들다는 기성 사회의 인식과 조안 스스로가 쌓아놓은 편견의 벽을 탈피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율리시스>라는 상징으로 계속해서 암시를 쌓아놓은 셈이다.

 

 

 

3.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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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와이프>는 진보적이거나 과격한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노벨상 수상 소감 자리에서 조셉은 뻔뻔하게 수상 소감을 말하며, 조안이 그 자리에서 진실을 폭로하는 극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는다. 영화는 전복을 일으키고 진보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불합리한 처우를 당한 한 여성이 수치와 자기혐오의 고통으로 내적 균열이 일어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직업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에 ‘King maker’라는 조안의 대답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들어있다.


조안은 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고 남편의 명예를 지키는 쪽을 선택한다. 명확한 주장과 통쾌한 전개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억눌리다 폭발한 채 끝나는 스토리에 실망할 수도 있겠다. 또 주체적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지 않았던 조안을 비난할 수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조심스레 추측을 해보자면, 조안이 조셉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두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던 승무원의 말에 조안이 남편의 명예를 끝까지 지켜주기로 결심한 것도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해서가 아닐까? 억압되고 거짓된 삶을 살았을지라도 조셉을 향한 조안의 사랑은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사랑까지 어리석었다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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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주장하거나 비난하기보다 작가로서 조안의 새 출발을 축복하고 응원한다. 비행기를 타고 오며 시작되었던 조안의 여정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새로 시작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알을 깨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듯이 그녀에게 있었던 수치와 자기 환멸의 시간은 이제 완전히 부서졌다.

 

앞으로 무궁히 채워나갈 빈 노트를 바라보는 조안의 눈에 조셉 캐슬먼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온전히 그녀 자신만 남은 상태다. 알을 깨는 여정의 비행기는 이제 또 다른 여정을 예고한다. 조안 캐슬먼이라는 새로운 작가가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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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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