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러나 예술은 계속된다: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2020

타인의 눈이 있어야 예술은 생존할 수 있으므로
글 입력 2020.08.2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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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는 딱 한 번 가봤었다. 2019 전주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시네마라는 이름으로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영화 서너 편을 잇달아 보는, 꽤 험난하게 영화를 즐기던 새벽이 떠오른다. 두 번째 작품부터 고비였다. 정신없이 졸던 와중에도 자꾸 눈을 뜨려고 했다. 영화 소재나 전개가 신기해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알고 싶었다.


다음 날, 함께 밤을 새운 이들과 각자의 기억을 되살려 영화의 줄거리를 맞춰보았다. 열댓 명이 보았는데도 모두 자느라 보지 못한 씬이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흐릿한 기억에 비해 이미지는 선명했다. 여전히 그 영화들의 키워드, 인상, 분위기, 대략적인 줄거리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서 집중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대중적이지 않고 실험적인, 그래서 난해한 영상물은 이런 면에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생애 두 번째 영화제인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이하 네마프)에 다녀왔다. 페스티벌은 네마프 대안영화제와 네마프 미디어아트 포럼, 부대행사로 구성되었다. 다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어 특별강연, 라운드테이블, GV 등 부대행사는 전면 취소된 상태다.

 

 

IMG_9145.jpg

 

 

 

2020년의 네마프


 

올해 네마프는 메가박스 홍대, 서울아트시네마, 탈영역우정국까지 다소 거리 있는 세 공간에서 열린다. 두 영화관에서는 뉴미디어를 비롯한 영상을, 나머지 한 곳에서는 전시와 포럼을 진행한다.

 

상영 목록은 정해져 있지만 영화관마다 타임테이블이 다르다. 여기에 코로나 시대 대비책으로 'wavve'를 통한 온라인 상영도 준비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한국 대안영상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 VR영화, 아시아 작품 약 50편의 영상물을 즐길 수 있다.


2000년부터 시작된 네마프는 근 20년 동안 비주류의 자리를 고수해왔다. 타자, 젠더, 예술감수성을 중심 가치로 내걸고 매해 사회 이슈를 이야기하다가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여 잠시 발자취를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 대안영상예술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말이다.


이 주제는 트레일러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30초 남짓한 트레일러는 네 가지 영상으로 나눠볼 수 있다. 감상할 때 한 번은 눈을 감고 시청해보기를 권한다. 이미지 못지않게 소리도 직관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먼저 한 사람이 골프공을 쳐서 건너편으로 공을 보낸다. 그 후 급하게 뛰어가는 사람의 형체가 이어진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뜀박질한다. 다음은 까만 동공이 눈을 뒤덮은 존재가 괴이한 소리를 낸다. 같은 속도, 같은 톤, 같은 크기의 소리와 이에 맞춰 움직이던 고갯짓은 찬란한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거꾸로 서 있는 어린아이가 빛을 반사한다.


골프공은 하나의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주제나 이슈를 힘주어 툭, 던지자 사람들이 반응한다. 아주 빠르고 정신없게. 그러나 이건 제자리에서 뜀박질에 지나지 않는다. 까만 동공의 이상한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는 것처럼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벗어나야 한다는 직관에 매달려 달릴 뿐이다. 앞인지 뒤인지 방향은 중요치 않다. 어차피 제자리니까.


이 분위기를 단번에 바꾼 건 반사된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가 빛을 반사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상이 거꾸로 맺힌 것을 보아 아이도 거울에 반사되었다. 희망은 다음 세대에 드러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아예 없다는 게 아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한 희망의 싹이 자라나 열매를 맺기엔 아직 이르다는 의미다.

 

 

 

코로나 시대, 죽어가는 예술



네마프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것 아닐까. 코로나 사태가 하나의 시대가 된 지금, 상황은 나아지는 듯하다가 금세 곤두박질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감염의 종결은 없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다.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예술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철저한 감염 예방 수칙에도 배우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조심스럽게 예술을 주고받던 이들이 더욱 위축되었다. 미술관은 문을 닫고, 오프라인 예술 강좌는 취소되고, 다시 출발점이다. 어쩌면 출발점보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일지도 모른다.


고민을 거듭했다. 이 시국에 영화제를 가는 것이 맞을까.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면 가지 않는 게 나았다. 내가 옮아오면 내 주변인들, 주변인의 주변인들까지 퍼진다는 두려움도 컸다. 답은 정해져 있는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하나. 예술이 죽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예술이 세상에 사라질 일은 절대 없으리라고 본다. 펜이나 붓 등 창작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서 놓지 않을 예술가들이 있다. 다만 그 예술가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후원과 지원을 보내줄 사람들, 그리고 작품을 감상할 사람들.


네마프가 대중적인 영화제라면 전체 작품을 온라인 상영으로 바꾸거나 일정을 연기했을 것이다. 상황이 힘들더라도 버틸 만한 자본이 있으니까. 하지만 규모를 줄이고 줄여, 방역 수칙을 준수하면서 취소를 내걸지 않은 건 예술이 설 자리를 포기할 수 없어서 그랬으리라고 본다. 물론 개막을 앞두고 갑작스레 들이닥친 일이라 이건 논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공립 예술기관도 어려운 시점에서 대중성과 거리가 먼 대안적 가치를 중시하는 기관들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래서 영화제에 갔다. 예술을 보러 온 사람 중 하나가 되기 위해. 다만 오래 머무르기는 부담스러워서 트린 T. 민하 감독의 영화 한 편만 관람했다. '사랑의 동화'. 초반은 롱 테이크 컷을 이용해서 지루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았다. 빨강이라는 강렬한 색채와 베트남 노래가 섞인 컷으로 시작한 덕에 그 인상이 남았나 보다.

 

 

사진_트린T민하 감독.jpg

 

 

영화는 베트남에서 유명한 '키우 이야기'를 쓰는 작가 키우의 일과라고 해도 무방한 줄거리이지만, 기이했다. 중간중간 비디오 아트 같은 장면이 삽입되어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영어, 베트남어가 혼재하여 시•청각적으로 혼란스러웠다. 복잡한 세계, 다양한 생각,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 낡은 화질과 오래된 필름 색은 꽤 오래 기억 남을 것이다.


예전처럼 영화 같은 문화생활을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길 수 없는 요즘. 평생 이런 삶이 이어질까 싶은 절망과 앞으로 이어질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불현듯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혼란한 세상이지만, 네마프 트레일러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아이가 반사한 빛처럼 희망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때가 도래할 것이다. 다만 예술기관들이 버텨야 할 시간이 길지 않기를, 그들이 최대한 오래 견뎌주기를 바라본다.

 

 

사진_네마프2020 공식포스터.jpg

 

 

[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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