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는 대충 그리지만 온 마음을 다 한다. - 안자이 미즈마루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즈마루, 미즈마루와 하루키
글 입력 2020.08.1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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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후와후와


 

오랜만에 그림책이 읽고 싶어 책장 앞에 섰다. 가로보다 세로가 긴 직사각형 모양의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가로가 세로의 1.3배 정도 더 긴 책이라 거꾸로 꽂혀 있어 제목이 적힌 옆등이 하늘을 향하고 있다. 제목은 후와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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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는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이라든지,

소파가 푹신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이라든지,

고양이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파트너라 불리는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년시절 키우던 늙은 암고양이 '단쓰'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으로, 하루키와 미즈마루가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그림책이다.

 

 

 

안자이 미즈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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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이 미즈마루 Anzai mizumaru (출처 NOEVIR)

 

 

안자이 미즈마루에 대한 간략 프로필.

 

1942년에 태어난 그는 일본대학교 예술학부 미술학과를 졸업해 광고 회사 덴쓰, 뉴옥 ADAC, 출판사 헤본샤에서 아트디렉터로서 탄탄한 커리어를 걸어왔다. 그러나 그 후 38세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과 친하진 않았지만 그 명성을 알고 있던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파트너, 안자이 미즈마루’라는 식의 글을 접했다. 썸네일에 있던 그림이 내 취향이어서 바로 클릭해 읽기 시작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 실린 삽화는 거의 그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하루키의 글 중 읽어본 것은 상실의 시대 뿐이라 삽화는 잘 몰랐지만, 그 글에 포함된 이미지가 마음에 들어 더 찾아보기로 했다. 구글과 핀터레스트를 통해 본 그의 그림은 어딘가 끌리는 구석이 있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싶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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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들

 

 

그래서 구매한 책이 세 권 있다. 일본 유명 잡지 ‘popeye’의 인생 선배를 만나 인터뷰한 글의 모음집 ‘나와 선배’, 덜컹덜컹 기차 (일본어 원서) 마지막으로‘후와 후와’까지. 유일하게 줄글로 이루어진 ‘나와 선배’에 담긴 안자이 미즈마루의 이야기는 무척 짧다. 사진 두 페이지, 글 네 페이지.

 

 
덴쓰에서 20대 후반에 퇴직한 안자이 선배는 뉴욕으로 떠났다. 1969년의 일이다. 신문 구인란에서 디자이너 모집 광고를 보고 곧바로 취직을 했다. 그러나 2년 간의 뉴욕 생활을 마친 후 맨해튼을 떠날 때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두 번 다시 오지 말자!’였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재니스 조플린 노래도 들었고,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재즈 클럽에서 마일즈 데이비스, 엘빈 존스와 이야기도 나눠봤다. 나로서는 한없이 부럽기만 한 이야기지만, 선배에게는 앞으로의 자신을 위한 포석이었던 모양이다. 오직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던 선배는 그동안 그렇게 적극적으로 경험을 쌓아온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나는 또다시 즉시 반성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출처 ‘나와 선배’)
 

 

그의 소싯적이 꽤나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서 알아주는 광고회사,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배경인 맨해튼, 마일즈 데이비스와의 조우라니. 굵직굵직한 커리어에 박수를 보낸다.

 

 

 

그는 대충 그리지만 온 마음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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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슬슬 그림의 대가 안자이 미즈마루의 작품 세계와 그림 철학!’이라는 설명이 붙는 그의 저서,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 있다. 슬슬 그린 그림이 맞느냐, 왜 이런 그림을 그리냐 궁금하다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하루 만에 뚝딱 읽었다.) 안자이 미즈마루를 검색하면 자신의 작품관을 설명하는 그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체 어느 맥락에서 그 말이 튀어나온 건지 정확하게 담고자 더 긴 글을 가져와봤다.

 

 

제 책의 경우 책 디자인에 관해서는 디자이너에게 일단 맡기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 디자인해도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저는 반쯤 놀이 기분으로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더군요. 진지하게 그림과 마주해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휘파람을 불면서 작업선반을 걷어차며 일을 하는 편이라고 할까요?

 

매일 마감에 쫓기는 날들이었습니다. 삽화, 소설, 에세이 등. 매달 30편 정도 연재를 안고 있었죠.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거품 경제가 사라지고, 올바른 일러스트레이터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마감에 쫓기며, 주말에도 일을 합니다.

 

 돌아와서 그림을 그릴 때는 '그 때, 그 사람은 이런 느낌이었지’ 떠올리면서 그립니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입력한 영상, 즉 내가 느낀 나름대로의 인상을 그립니다. 책방에서 그림을 한참 보고 외워서 집에 오자마자 떠오르는 대로 재현하기도 했었죠.

 

원화 색과 인쇄 색이 다소 달라도, 기본적으로 인쇄소도 열심히 작업했으니까요. 아무도 ‘나쁘게 해야지’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니니까, 별로 까다롭게 굴지 않습니다. 책은 모두의 공동작업이니까요. 일러스트레이터란 약간의 색 차이는 재미있네 하고 생각하지 못하면 하지 못할 일이죠.

 

매력적인 그림이란 그저 잘 그린 그림만이 아니라 역시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아닐까요. 그런 걸 그려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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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그리는 방법 by. 안자이 미즈마루

 

 

선으로 슥슥 그린, 슬슬 그림. 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힘을 빼서 그린 그림이다.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잔상을 살려 그린 그림.

 

하루키와 몇 시간 마주하고 돌아와 그의 삽화를 그려야 할 때. 둥글둥글한 얼굴과 짧은 머리를 표현해서 그린 하루키의 초상. 그 미즈마루가 그린 하루키의 얼굴을 보고 하루키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루키와 미즈마루, 미즈마루와 하루키


 

안자이 미즈마루는 1981년부터 하루키와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키의 데뷔가 1979년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본명은 와타나베 노보루. 단편 ‘빵가게 재습격’, ‘코끼리의 소멸’. 장편 ‘태엽감는 새’에서는 주인공의 아내가 잃어버리는 고양이의 이름.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주인공의 이름도 와타나베. (참고 finding-haruki)

 

안자이 미즈마루하면 절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뒤따라 온다. 많은 사람들은 조금 거친 구석이 있는 하루키의 글을 미즈마루의 그림이 완화시켜 준 것이 아니냐는 평을 내놓는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둘은 함께 하며 콤비라고 불렸다.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해가 진 저녁에는 만나면 대체로(라고나 할까, 일단 100퍼센트) 술을 마시며 일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친구로 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실제로 안자이 미즈마루의 마지막 날인 2014년 3월. 해외에서 지내고 있던 하루키가 잠시 일본에 들어와 다시 출국을 하기 전날 밤 휑한 마음에 오랜만에 안자이 미즈마루랑 한잔 할까 하는 생각에 사무실에 전화를 넣기도 했다. 물론 그 날 약속은 몸이 나빠 나오지 못한다는 답을 듣고 마음을 접었지만. 그 이후갑작스런 부고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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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안자이 미즈마루 (우)무라카미 하루키

 

 

사실 이 글을 기획할 때 안자이 미즈마루만을 다루려했지만, 많은 글을 읽을 수록 그 둘은 정말 단짝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강해져 ‘안자이 미즈마루와 관련된 하루키’까지 다루고 있다.

 

앞서 말한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은 하루키의 추모글 ‘그려지지 않고 끝난 한 장의 그림’으로 서문을 연다. 같이 술을 먹었던 이야기, 같이 다니던 초밥집, 부인 자랑을 하던 미즈마루. 그 글을 읽고 있으니 함께 세월을 보냈던 이의 부재를 허탈하게 느끼는 이의 심정이 느껴져 이 둘은 함께 다루는 게 맞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하루키의 글에 삽화로 쓰였다는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그 아저씨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함께 그 그림에 대해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눴을 것만 같아 웃음이 나온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든든한 동반자로, 자신들의 작품을 양지로 이끈 둘을 부러워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우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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