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폐허 속에 떠오른 달빛, 마임극 - 잠깐만

글 입력 2020.08.06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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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공연 사진 (1).jpg

 

 

본 연극의 감상문을 쓰기 위해 같은 마임이스트가 출현한 저번 연극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마임극 <지금, 여기 마임>의 첫 번째 극인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여정>은 <잠깐만>의 프리퀄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물론 극을 이끌어가는 분위기와 주인공의 묘사된 모습에는 시간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꽃이나 달로 표현되는 희망, 활력과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것을 향한 사랑을 향한 갈망'이라는 주제는 변하지 않고 반복해서 나타난다.

 

다시 <지금, 여기 마임>으로 돌아와, 고재경이 연기한 마임극 <여정>은 주인공이 어느 날 우연히 발견한 노란 꽃에 매혹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나다니면서 계속해서 눈에 띄는 노란 꽃을 사랑하게 된 주인공은 몸을 휘청거리게 하는 바람에도 꽃을 향해 다가가고 우산을 씌워준다. 나는 그의 마임을 보면서 손에 닿는다고 생각했던 꽃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어떤 고고한 상징으로 자리매김 하는 것을 목도했다. 나라는 관객에게 <여정>은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온갖 고통과 역경에도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바치는 (어쩌면 고재경의 가장 젊은 자아가 바치는) 수줍은 사랑고백으로 보였다. 그에게는 그것을 향한 추구 자체가 삶의 '여정'이었던 것이다.

 

순수한 젊은 청년으로 보였던 고재경은, 보다 성숙한 캐릭터로 이야기를 이끌어난다. 이제 고재경은 맨몸으로 연기하고, 꽃만 보면 헤벌쭉 웃는 모습을 벗어나 약간 피곤하고 엄격한 인상의 단장으로 변신한다. <잠깐만>의 주인공은 길거리 유랑 극단의 단장이다. 그의 아래에는 두 단원이 있다. 한 단원은 충실해 보이지만 조금 지쳤으며, 다른 한 단원은 어딘가 정신이 팔렸지만 활력이 넘친다. 단원들의 옷은 조금 우스꽝스럽고 초라하다. 그들이 옮기는 짐도 조촐하기 짝이 없다. 고된 생활 속에서 <여정>의 순수한 청년은 세속의 무게를 진다.

 

마임극은 부드러운 음악을 배경음으로 짐을 옮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장은 저도 모르게 처진 어깨를 힘들여 올려가며 길을 이끌고, 두 단원은 지친 것처럼 따라간다. 단원 중 한 명은 종종 정신 팔린 듯이 하늘을 바라본다. 빵이 아니라 빵 부스러기를 나누어 먹는 이들의 극단 생활은 순탄치 않다. 역경을 감수하고 선택한 극단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퍼포먼스는 완벽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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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단장이 관객들에게 내지르는 ‘잠깐만’은 구슬프다. 그는 단원들의 실수로 떨어져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가까스로 붙잡기 위해 마임의 언어를 벗어난다. 과장된 몸짓과 익살스러운 몸짓은 사람들을 웃음짓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어 단장은 사람들에게 동전을 요구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기 짝이 없다. 단원들이 잠들었을 때, 단장의 숨겨진 모습이 비친다. 그는 아직 유쾌한 장난꾸러기처럼 익살스러운 몸짓을 하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실수를 연발하지만, 번듯한 대가를 주지 못하는 단원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는다. 그러지 않고서는 빵을 들고있는 그 자신 역시 빵 부스러기를 먹지 않았으리라. 단장은 단원들과 빵의 부스러기를 나눠 먹는다.

 

빵 부스러기를 먹고난 후, 이 연극의 실험이 시작된다. 이후 본격적으로 마임의 언어를 다른 예술의 언어로 혼합한다. 두 언어의 혼합은 단장이 관객들로부터 소외된 극단이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다. 클로드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밀레의 '이삭줍기', 클림트의 '여성의 세 시기', 뭉크의 '절규', 고흐의 '붕대를 감고 파이프를 문 자화상' 등 대중에게 친숙한 그림을 연극적으로 해석한다. 처음 의도에 맞게 관객들의 참여로 구성된다.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장면에서는 여인의 스카프를 휘날리게 만드는 바람을 관객이 담당한다. 고재경 마임이스트의 '잠깐만요' 한 마디에 무대로 불려 나온 관객은 열심히 부채질을 함으로써 그림을 완성시킨다. 뭉크의 '절규' 장면을 표현할 때에는 관객이 나무 액자 틀 안에 얼굴을 넣고 표정 연기를 진행한다. 이러한 의도로 불려나온 관객이지만, 관객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내가 관람한 회차에서 밀레의 이삭줍기에 불려 나간 관객은 어린 아이였는데, 어떻게 하는지 눈치를 채지 못해 결국 웅크려 가만히 앉아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관객의 다양한 반응이야 말로 마임의 매력을 끌어올린다. 마임의 언어는 본질적으로 현장성을 가진다.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연성을 가진다. 관찰자의 역할에 있던 관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한 마임은 현장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게릴라식으로 진행되곤 했던 마임을 극장으로 끌어들인 것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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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잠깐만>이 현장성을 가진 연극으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전반부가 관객참여형으로 진행되었지만, 후반부는 하나의 극을 완성하는 연출가로서의 솜씨가 돋보이도록 진행되었다. 나는 이런 부분이 클림트의 작품과 반고흐의 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졌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중 좀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클림트의 ‘여성의 세 시기’였다. 어머니의 젖가슴을 잼이 있는 빵으로 표현했는데,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모유는 달콤한 정수와 같다. 실제 생활과 정치적 의미를 떠나 모유는 어린 아이를 성장시키는 상징이며, 일반적으로는 어리고 미숙한 존재에게 베풀어지는 자애로움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표현은 우리 안에 잠자는 양육자와 피양육자의 관계를 건드린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애정욕구로 해석됨을 고려할 때, 마냥 우습기만 한 연출은 아니다.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어른이 되고 나서는 모유를 마실 수 없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삶에서 타인이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사실 판타지에 가깝다. 어떤 맥락에서 이 역시 상실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장면을 가장 흥미로웠던 연출로 꼽았던 것은, 이것이 웃음 속에 베어나오는 슬픔이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렇다. 무대에는 관객이 난입하고 퇴장하며, 마임이스트들은 익살을 떨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힘겹게 짐을 옮기는 노새와 같은 유랑 극단은 반고흐의 작품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단장은 반고흐에 빙의한것 처럼 자신의 내장과 심장을 쥐어짜내 캔퍼스의 작품을 완성시킨다. 끝까지 만족하지 못한 단장은 귀를 썩둑 자르는 시늉을 한다. 단장의 그로테스크한 몸짓은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익살과 웃음에 가려졌을 뿐, 절실한 갈망과 고통이 이들의 진짜 얼굴이었다. 단장의 잘라진 귀를 두 단원이 보필하고, 달을 보던 단원은 잠깐 서서 그것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본다. 그 후 두 단원이 앞으로 나가 옷을 벗고 격렬한 몸짓으로 춤을 춘다.

 

이 부분에서 내가 제대로 관찰했는지는 모르지만, 두 단원의 춤사위가 다르다. 지친듯이 보였던 단원은 일어나서 몸을 비틀고, 달을 바라보던 단원은 땅바닥을 기며 춤을 춘다. 앞서 기술한 <여정>에서 묘사된 주인공과 비슷한 낙관적인 단원이 잘려진 귀를 좀 더 오래보고, 땅을 기듯 춤추는 것은 눈 여겨 볼만하다. 나는 이 격렬한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두 단원이 단장의 어떤 마음을 조금씩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귀를 자르고, 땅을 기며 춤추며 바라보았던 달, 이 절실한 갈망의 결말은 어찌되었을지 예상이 가는가? 세 단원은 다시 짐을 싸고 길을 떠난다. 여전히 고된 노새와 같이 짐을 나르지만, 이들은 결국 뒤돌아 함께 달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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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은 달이 정확히 무엇인지, 사실 그들이 바라본 것이 달인지도 자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어두운 조명 연출을 통해 달이라 추측했었을 뿐이다. 그들이 바라본 달이 소외되어가는 마임에서 비롯된 예술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일축하는 것이야말로 감상자의 오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 마임극을 감상하기 전에 '잠깐만'이라는 표현은 마임이스트의 익살스러운 장난의 시작, 유쾌한 실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들은 '잠깐만'은 그러한 의미보다는, 장기를 헤집어놓을 정도로 강렬한 갈망과 열망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마치 열병처럼 쓸고 간 선언 이후에는 희망이 남았다.

 

노란 꽃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갔던 청년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뭐가되었건 단장이 된 그는 달을 향해 걷고, 익살스러워 보이지만 불타는 목으로 '잠깐만'을 외쳤다. 모든 것이 한차례 휩쓸려 나가고, 다시 추레한 모습으로 바라본 달, 청년은 다시 웃음을 지었다. 남은 희망이 다시 사람을 노새처럼 걷게 만든다. 그 장면은 결코 추레해 보이지 않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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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 웃음을 자아내는 그림이야기 -

 


일자 : 2020.07.29 ~ 2020.08.02


시간

평일 8시

주말 5시


장소 : 알과핵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20,000원


제작

마임공작소 판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관람연령

만 6세 이상


공연시간

55분


 

마임공작소 판


마임공작소 판은 마임이란 장르를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형식과 소통하고자 결성된 단체입니다. 다양한 활동영역의 예술가들이 마임을 탐구하고 대중적이면서 독립적인 작품으로서의 마임레퍼토리를 개발하여 관객에게 다가가고자하며 그에 맞는 작품 활동 및 각종 마임 및 공연예술축제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습니다.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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