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MBTI에 왜 그렇게 과몰입하냐구요?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7.3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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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그러니까 지금처럼 성격검사가 유행하지는 않았던 시절부터 나는 소위 ‘MBTI 과몰입형 인간’이었다. 계기는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때쯤 이미, 요즘 MBTI 검사 사이트라는 ‘16Personalities’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검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INTJ란다. 설명을 읽어보니 나와 맞는 것 같다. 어쩌면 나의 강점과 약점을 나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듯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날부터 나의 성격유형검사 과몰입이 시작되었다. 이미 해외에는 성격유형 관련 밈이 널리 퍼져 있었다. MBTI말고도 에니어그램, BIG 5 등등 ‘당신이 누구인지 분류해보세요’ 같은 검증된 성격검사에 강하게 몰입했다. 타로나 사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의 올해 금전운, 학업운, 연애운 등 내 앞날을 명확하게 예견해주는 듯한 선생님의 화법에 빠져들어갔다.

 

그런 나는 요즘들어 성격 검사나 사주 등등에 더는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건 오히려 올해 들어 MBTI가 지나치게 주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격 유형으로 티셔츠를 만들고, 굿즈를 만들고, 감정형(F)과 사고형(T)을 나눠가며 입씨름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내 몰입이 얼마나 광신적으로 보였을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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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16Personalities

 

 

재밌는 건 성격검사가 유행하게 된 시기도 마침 2020년이라는 사실이다. 올해 들어 이룬 성과라곤 병 안 걸린 것밖에는 없다는 밈이 돌 정도로 2020년은 모두에게 악몽 같은 해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역병이 돌면 미신에 집착했던 것처럼, 성격검사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도 보인다. 이는 단순히 허황된 뭔가를 붙잡고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주체적으로 활용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 유형에 대해 누구보다 열심히 찾아보면서 섬세하게 정의내린다. 그 과정에서 같은 유형의 사람들과 맺는 동질감이나 자아 찾기 같은 과정은 분명히 미신과는 결을 달리한다. 건강하게만 활용하면 즐거운 놀이로 기능하면서 자존감을 높여 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는 게 MBTI다.

 

사실 사람들이 MBTI를 통해 가장 찾고자 하는 건 안정감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는 너무 불안정하다. 난 뭘 하고 살 수 있을까? 내가 잘 하는, 나와 잘 맞는 일은 뭐가 있을까? 나이가 들고 나면 천천히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재밌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길은 너무나 좁은 문이거나 내 환상을 와장창 깨버리는 극악의 노동조건을 자랑하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길은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한 덕분에 진입 자체가 어려워져 버렸다. 그렇게 벽에 부딪히고 부딪히다 보면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일말의 확신도 사라져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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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밈'은 해외에서는 이미 유명하다

 

 

이런 와중에 MBTI는 명쾌한 답을 내려준다. ‘너가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너가 이런 성격 유형이어서야’, ‘너에게 잘 맞는 직업은 이런이런 일이야’ 등등.

 

사주나 타로도 마찬가지다. 너는 올해 안에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더 버텨라, 사주에 이런 살이 껴 있으니 조심해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두는 애매모호함에 질려버린 우리 세대는 확실한 답을 바란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게으르고 의존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택한 길에 적당히 만족하며 살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다른 사례’에 둘러싸인 세대다. 내가 걷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과 궁금증은 끝까지 우리를 따라다니고, 내가 걷고 있는 길에는 의구심만 가득 든다.

 

MBTI를 비롯해 우리 세대에겐 그 캐릭터성이 명확하면서도 나 자신, 그리고 내 주변인들과 매칭하고 입맛에 맞게 변형시켜가며 가지고 놀 수 있는 콘텐츠가 계속 유행하게 될 것 같다. 특히나 그게 사람들의 불안함을 잠재워줄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면 뭐든지 환영받지 않을까.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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