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가 애정하는 것들에게 -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글 입력 2020.07.28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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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하고 위트 있는

음악 에세이

 

 

기분 좋은 포만감과 무료함이 공존하는 점심시간이다. 부른 배의 묵직한 존재를 느끼며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하릴없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너 SG워너비 좋아해?”

 

고개를 돌아보니 얼마 전 새로 전입 온 구급 대원 반장님 한 분이 서계셨다. 아무래도 내 검색 기록을 본 모양이었다. 그때 내가 왜 그들을 검색했더라. 신곡이 나왔나? 아니면 그냥 궁금해서? 글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분명한 건 나와 그녀가 어색하던 사이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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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거주춤한 자세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네’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놀라움이 잠깐 스쳤다. 어쩌면 의외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긴 함께 근무하던 다른 의방들은 모두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래퍼들이나 아이돌 가수에게 관심이 더 많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SG워너비라면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 전에 전성기를 맞이했던 오래된 가수가 아닌가.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원래 좋아하는 건 잘 안 바꾸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내 사람>을 들은 이후로,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여전히 그들의 팬이다. 그들의 노래를 듣는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전철 안에서.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거리를 걸으며. 커피와 함께. 책과 함께.

 

<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는 작가가 오랫동안 애정 하던 것들에 대해 애틋하게 써 내려간 일종의 러브 레터다. 이 책을 쓴 최정동 작가는 수십 년간 수천 장의 LP 음반을 모으면서 음악을 즐긴 시간을 두고 ‘음악의 여신 뮤즈를 만난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서정적이면서도 담백하고 위트 있는 한 권의 에세이로 담아 우리에게 수줍게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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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라는 말은 사랑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조건을 다는 순간(키가 조금만 컸더라면, 조금만 날씬했더라면 등등),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최정동 작가는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고정관념들을 벗어나 그 틀을 넓히고 다양화한다. 처음엔 그도 서양 정통 클래식으로 음악 듣기를 시작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점차 그 범위를 넓혀 국악, 재즈, 가요, 팝 등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클래식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간다.

 

 

"클래식을 많이 듣지만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다. 클래식은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예술입니다. 송창식, 빌 에번스도 당연히 클래식입니다. 국악도 빼놓을 수 없지요."

 

 

책에는 바흐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정통 클래식 작곡가들은 물론이고, 몇 백 년 후 '제2의 베토벤'으로 불릴 현대 작곡가와 지휘자, 연주자까지 망라하고 있다. <화양연화>, <붉은 돼지> 등의 영화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미스터 션샤인>의 OST로 쓰인 뉴에이지, 샹송, 올드 팝도 함께한다.

 

음악가와 곡에 얽힌 이야기는 물론이고 흥미진진한 비하인드스토리도 담겨 있다. 작가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스 시게티의 선율에서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글씨를 떠올리는가 하면, 베토벤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끝끝내 마음에 담아두었던 불멸의 사랑을 넌지시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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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권력자에게 당돌하게 그의 죄를 이야기한 피아니스트 유디나의 이야기도 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이야기할 때 들려주는 1913년의 해프닝은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저절로 음악을 찾아 듣고 싶게 만든다(단, 듣는다면 각오 좀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가곡 ‘명태’와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연주곡을 소개할 때는 작가의 개인적인 추억담도 꺼내놓는다. 38년 전의 음악 교과서를 보며 아련한 추억에 잠기다가도 너무나도 변해버린 현대의 음악 교과서를 보며 기묘한 감탄을 내뱉기도 한다.

 

아끼던 턴테이블을 세월의 무게에 의해 끝내 떠나보내야 했던 에피소드는 흡사 멜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어찌 보낼 수 있겠나 싶었는데 벌써 조금씩 잊혀진다.’ 지나간 나의 연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 문장에 가슴은 뜨끔하면서 동시에 애틋해진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다 보면 음악이 궁금해질 독자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친절하게 QR코드도 삽입해 놓았다. 이 음악들은 책을 읽는 동안 우리의 BGM이 되어줄 것이다.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책이란 바로 이 책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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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자 나의 플레이 리스트가 그리워진다. 내가 애정 하던 것들에게 다시금 사랑이 솟구친다.

 

지금 글을 쓰는 나의 옆에는 작은 책꽂이가 하나 있다. 거기엔 내가 학창 시절 작곡가를 꿈꾸며 만들었던 자작곡 노트가 꽂혀 있다. 아무도 모르는,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뿐인 나의 플레이 리스트다. 밖에선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그 비에 맞춰 간만에 건반을 어루만지고픈 밤이다.

 

음악 애호가라면, 혹은 음악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오래도록 애정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책장을 덮었을 땐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뮤즈를 찾아 우리가 애정하던 것들에게 다시 돌아가 보자.

 

베토벤처럼 위대한 예술가들에게만 뮤즈가 오진 않는다.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애정 하고, 그로 인해 행복을 느끼고 있다면 당신의 삶에도 뮤즈는 이미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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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아니어도 괜찮아

- 음악의 여신 뮤즈가 내게 온 순간들 -

 

 

지은이 : 최정동

 

출판사 : 한길사

 

분야

예술/대중문화 > 음악

 

규격

148*210mm 반양장

 

쪽 수 : 352쪽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정가 : 19,000원

 

ISBN

978-89-356-6339-2 (03670)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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