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숨어있던 무의식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인간의 무의식, 저 어딘가로 초대합니다
글 입력 2020.07.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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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의식,

저 어딘가로 초대합니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_한가람미술관



포스터.jpg

 

 

[Review]

숨어있던 무의식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퍼핏 애니메이션의 거장 퀘이 형제의 예술관 형성부터 작품세계,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퍼핏 인형들과 도미토리움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가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는 퀘이 형제 작품 세계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도미토리움’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여 기괴한 인형으로 나타난 존재들과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도미토리움으로 나타난 낯선 세계, 퀘이 형제가 작품으로 끌어와 우리 앞에 펼쳐낸  고요히 생동하는 무의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2. 퀘이형제.jpg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


‘Dormitorium’

: '잠자는 곳' 또는 '묘소'

 

 

퀘이 형제의 도미토리움은 무의식의 세계라는 점에서 '잠자는 곳'과 '묘소' 두 의미를 모두 함의한다고 생각했다. 퀘이 형제의 작품을 소개하는 단어 중 하나인 '초현실주의'야말로 무의식을 적극적으로 다룬 예술 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초현실주의자들은 꿈을 통해 무의식이 표현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퀘이 형제의 도미토리움은 우리가 잠이 들어 꿈꾸는 순간이 되어서야 벌어지는 깊고 습한 내면의 이야기이자, 깨어있을 때는 마치 존재하지 않은 듯 나타나지 않기에 전혀 마주할 수 없는 의식의 저 아래 어둡고 기이한 낯선 세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부르노 슐츠의 “악어의 거리”.jpg

Bruno Schulz's "Street of Crocodiles"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잠깐 벗어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퀘이 형제의 작품을 보며 이런 장면을 상상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집 안에서 우연히 어디서 와서 언제부터 엉켜있었는지 모를 빽빽한 먼지와 더러움, 죽은 벌레들이 엉켜 빛 하나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구석을 발견했을 때 알게 모르게 올라오는 소름이나 섬뜩함 말이다.

 

보통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치우기 위한 것이라 해도 그곳에 손을 넣어서 직접 손을 대 만져야 한다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하다. 나의 몸짓이 무슨 결과를 만들어낼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은 한 번 문질러서는 지워지지 않을 수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슥 사라질 수 있고, 이미 그 상태로 굳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일상 어딘가에 있었으나 평소에는 마주하지 못했던, 우연히 발견하자마자 가리거나 치워야 한다는 생각부터 든 상황 속의 ‘나’를 일상을 살아가는 ‘의식'으로 비유해본다.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음침하고, 섬뜩해서 너무도 당연하게 치워야 한다고 생각했던 퍼석퍼석하고 숨 한 번 들이쉬면 코와 입에 먼지가 들어찰 것 같은 그 ‘구석’을 ‘무의식’으로 비유해본다. 그리고 내게 퀘이 형제는 스스로도 빤히 바라보지 못했던, 감히 살펴보려 해보지 못했던 나의 무의식의 한 구석구석들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깊이 파고든 이들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나의 내면 어딘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뿌연 먼지 같은 불안, 공포, 그로테스크한 마음의 한 덩어리를 경험하게 하고, 선명한 장면들을 통해 가까이 마주하게 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퀘이 형제의 작품을 마주하는 것이 그렇다고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만남은 낯설지만 계속해서 시선을 끄는 힘을 가진 작품들과 함께하는 예술적 경험이었다.



11. 고요한 밤 I -잠의 내벽_팔복.jpg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그로테스크하고 섬뜩한 이미지,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회피하기보다는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퀘이 형제 작품의 예술적 힘이 궁금했다.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퀘이 형제 작품을 계속 응시하게 하는 걸까. 단순히 그다음이 궁금해 일어나는 호기심 때문일까, 아니면 전에 보지 못한 기괴한 도미토리움이라는 공간과 퍼핏 인형들의 새로움 때문일까.

 

퀘이 형제의 여러 도미토리움을 보다가 그들의 작품에 반복해서 나오는 어떤 이미지에 주목하게 되었다. 한 번 닦은 흔적 없이 뿌옇게 자리 잡은 먼지들, 매끄러운 것 없이 거친 표면, 비틀어지고 마모된 퍼핏 인형들로부터 느껴지는,  마치 ‘오래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섬세한 흔적들이었다.

 

아주 긴 오랜 시간, 어떠한 방해나 개입 없이 끊임없이 쌓인 시간과 그로 인해 일어난 흔적들은 종종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넘어선 신비한 감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다. 마치 거대한 동굴을 보는 것처럼, 먼지 가득 쌓이고 빛바랜 흔적 가득한 오래된 집에 처음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퀘이 형제의 도미토리움은 그곳을 깨끗하게 치워보려는 흔적 하나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존재해온 것만 같다. 낡고 더러워진 표면들, 빗질 한 번 하지 않은 머리카락, 얼룩이 지고 섬뜩하게 긁힌 흔적들은 괴기스러움보다는 오히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라는 코드로 기묘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일으키고 있었다.

 

 

5.악어의 거리 “의상실”.jpg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한편으로는 오히려 퀘이 형제의 도미토리움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쌓이고 낡아졌다는 것이 아주 오랜 시간을 연상시킨다 하더라도 그곳이 처음 태어났을 때는 깨끗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반대로 더 많은 시간이 흘러서 더 침식되고 뿌옇게 흐려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이 멈췄다기보다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은 오히려 무의식의 바깥에서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꿈처럼 말이다. 그리고 퍼핏 애니메이션이 스톱모션 기법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담는 것이 아니라 포착된 순간과 순간을 잇는 것이라는 특징 때문에 매끄럽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보다는 분절된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진 세계를 상상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에 퀘이 형제의 작품은 꿈을 통해 나타난 무의식의 초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의도적인 개입이나 변화 없이 그대로 쌓이고, 그대로 낡아지고, 그대로 더러워지는 지점이 정말 우리의 무의식의 장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무의식은 원래 그러한 것들로 켜켜이 쌓인 모습으로, 우리가 그토록 치우고 싶었던 어두운 감정과 불안들을 품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퀘이 형제의 작품을 통해 그러한 무의식의 장면을 보다 더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나의 퍼핏 인형들이 수면 중이기를 바란다”


 

나는 ‘꿈’이라는 것에서 퀘이 형제의 애니메이션은 정말 기묘하게 사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모호한 문장이지만 조금 더 풀어 쓴다면 ‘꿈’이라는 것의 특징과 존재 방식을 선연하게 그리고 너무도 정교하게 그들만의 예술관을 통해 그려냈다는 것이다.

 

퀘이 형제 외에도 많은 예술들이 자신만의 언어와 장르를 통해 꿈이라는 소재로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해왔지만, 현실의 재료를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퍼핏 인형과 도미토리움을 탄생시키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통해 어떤 순간들의 흐름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퀘이 형제의 퍼핏 애니메이션이야말로 더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무의식이 표출되는 꿈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7. 이름없는 작은 빗자루.jpg

This Unnameable LIttle Broom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낯설고 조악한 퍼핏 인형들과 그 구조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도미토리움이라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퀘이 형제의 애니메이션은 자꾸만 나의 시선을 잡아 놓았다. 어떤 사건이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명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계속 바라보게 된다. 어떤 공감의 감정을 느끼는 걸까, 파악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는 거라 할 수 있을까, 혹은 그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시선을 떼지 못하는 호기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모호한 마음으로 보다 보면 조금은 허무하게도 그 끝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 애니메이션은 끝나버린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계속해서 장면 장면을 곱씹어보게 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전시회에서 퀘이 형제 애니메이션을 보던 과정을 다시 생각해 보니, 그 과정이 내가 꿈을 꾸기 시작해서 잠에서 깬 순간까지의 과정과 닮아있다는 것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꿈속에 떨어진 순간의 나는 보통 내가 왜 그런 사건에 처한 지 모른 채, 그 장면을 마주하게 된 것인지 모른 채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끝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잠에서 깨면 그 마지막을 알 수 없게 되며, 갑자기 중간에 끊겨버리기도 하고, 기억나는 꿈의 장면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기억나지 않은 채로 잠에서 깨기도 한다.

 

그 꿈속 상황에 떨어진 원인도 모르는 상태, 그 시작과 끝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이 장면과 순간이 기억에 겨우 남는 상태라는 모호함이 퀘이 형제의 퍼핏 애니메이션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이따금 잠에서 깨고 나서도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거나 이유를 알 수 없이 생경한 경험이 남은 꿈을 꾸고 난 후에는 여운이 남아 이후에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후의 나의 상황과 닮아있었다.

 

나는 아마 그 지점에서 퀘이 형제가 꿈이라는 드러나지 않은 세계를, 더 정확히는 우리의 숨기고 싶은 고통스럽고 공포스러운 감정의 무의식을 표출하려는 ‘꿈’이라는 세계를 자신만의 예술적 표현을 통해 얼마나 잘 구현한 예술가들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퀘이 형제의 작품 세계는 그것이 표출되는 방법,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모습과 방식,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기억과 꿈을 통한 무의식의 경험을 일으키며 잠자는 동안 꿈속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던 무의식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했다.

 

*

 

퀘이 형제의 작품 세계로 초대된 우리는 처음 마주한 도미토리움을, 그러니까 무의식의 세계를 끊임없이 살펴보고 싶은 적극적인 존재가 돼버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엿보려는 노력이 정말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기에는 우린 이미 퀘이 형제의 무의식 세계가 궁금해 기어이 초대받아 발걸음을 옮긴 호기심 가득한 관람자들이고, 퀘이 형제의 작품들은 단번에 보기에는 어딘가에 숨어있고, 섬세하고, 또 입체적이다.

 

 

9.해부실의 남과 여 _위조범.jpg

Rehearsals for Extinct Anatomies "The Inscriber as forger"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상자 안에 숨어 있어 확대경으로만 볼 수 있는 도미토리움을 보려면, 우선 확대경과 눈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움직이고, 확대경에 눈을 가까이 대고, 초점을 맞추기 위해 한쪽 눈을 질끈 감기도 하고, 상자 속 위 아래 좌우를 보기 위해 고개를 움직여야 한다. 도미토리움을 볼 때는 공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퍼핏 인형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시선의 방향을 바꿔가며 공간 구석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퍼핏 인형은 우리가 그들의 존재와 세계가 수많은 사람에 의해 엿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관람자는 그야말로 엿보는 관람자가 된다.

 

어떤 도미토리움은 벽 뒤로 3개의 다른 위치에 뚫린 구멍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더욱이나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여 다양한 시각으로 도미토리움을 살펴보게 한다. 그리고 전시를 구성하는 섹션은 모두 검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기에,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관람객이 직접 커튼을 거둬가며 나아가야 한다. 무의식과의 조우라는 한 치 앞도 감히 예상할 수 없는 퀘이 형제 작품 세계의 결을 따라, 전시 구성과 작품들이 놓인 방식도 관람객에게 매 순간 호기심, 떨림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을 경험케 해주었다.


더불어 이번 퀘이 형제 전시를 위해 특별하게 준비된 도슨트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퀘이 형제 :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전시는 두 가지 도슨트가 준비되어 있다. 클래식 도슨트(초록색)는 초록색 표시가 되어 있는 작품을 찾아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일반적인 도슨트 형식이고, 시네마틱 도슨트는(주황색) 보다 전체적인 전시 구성에 초점을 두어 퀘이 형제의 작품 세계 분위기에 맞추어 컨셉츄얼하게 구성된 도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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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호기심에 시네마틱 도슨트를 선택해서 들었다. 퀘이 형제의 작품이 전시된 저택의 ‘집사Q’의 안내를 따라 전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었는데, 개별적인 작품을 넘어 공간에 대한 설명과 전시의 흐름과 구성, 관람순서를 안내해주어서 다른 혼란 없이 퀘이 형제 작품 세계에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두운 분위기의 전시 공간과 도슨트의 목소리가 너무 잘 어우러지고 감상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추천해 드리고 싶다.

 

(tip. 도슨트는 무료입니다. 개인 모바일을 활용하는 도슨트로 QR코드를 통해 접속해서 듣는 방식이기 때문에 모바일에 연결할 ‘이어폰’을 챙겨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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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지 않았던 곳에 맞닿은 시선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우연한 발견은 평범한 순간을 전혀 기대하지 못한 낯선 순간으로 바꾸기도 한다. 나는 예술가야말로 이 두 순간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표현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사람인 우리 곁에 존재하고 경험하는 것들이지만 꼭꼭 숨어있어 보이지 않거나 드러나려 하지 않아 잊힌 곳을, 예술가는 그만의 관점과 이해를 통해 끌어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나타난 세계를 마주한 우리는 그것이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과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낯선 것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느끼고 경험한다. 그리고 작품과 만나는 순간은 종종 내면에 숨어있던 나의 어떤 모습과 상태를 비로소 발견하게 하며, 숨어있던 나와 대면하는 순간으로 이어지곤 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누구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한 무의식과의 기묘한 만남과 경험의 순간은 너무도 인상 깊었다. 나 자신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비밀스럽게 숨어있던 기묘한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고, 단 한 번도 선명하게 보거나 느끼지 못한 꿈과 무의식의 존재를 직접 마주한 것만 같은 경험이었다.

 

비로소 엿보게 된 세계는 퀘이 형제가 그들의 예술적인 방식과 언어로 구현한 도미토리움인 동시에 그것을 마주하며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는 숨어있던 나의 모습, 나의 무의식일지도 모른다. 퀘이 형제의 작품으로 펼쳐진 기묘하고 경이로운 순간으로의 초대를 많은 분이 경험하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포스터.jpg

 

 

[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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