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레몬과 라임 같은 인생 -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도서]

글 입력 2020.07.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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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 스쳐 간 사람에게서 레몬과 라임의 맛이 느껴진다.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 라임>은 레몬과 라임이 주 소재가 되어 서술자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짧지만 강렬하고 차분해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기도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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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배송 오자마자 시선을 사로잡은 책 표지 덕분에 더 빨리 책을 읽기 시작했다. 택배포장을 뜯자마자 든 생각은 '표지 마음에 든다'였기에 그 속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지 궁금해 더 빨리 읽게 되었다. 레몬과 라임은 생각만 해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시고 씁쓸한 맛이지만 자꾸 입에 대고 싶은 마성을 가진 과일이다. 집에서 그들을 후식 과일로 먹을 일은 없어도 여러 요리에 첨가되어 요긴하게 쓰이고 깔끔한 음료수들을 만들 때 쓰곤 한다. 그런 그들의 특성을 너무나 잘 표현한 이야기다.

 

레모네이드를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의 이야기가 톡 쏘면서도 기분 좋게 만드는 분위기의 이야기일 것이라 상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묻어나왔다. 이것이 진정한 레몬과 라임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레몬과 라임을 좋아해 그들을 주제로 한 책까지 쓴 것을 보면 레몬과 라임에 대한 애정이 가득 찼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순히 레몬과 라임에 대해 단편적으로 그리기보다 그를 소재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창작해냈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무언가 관심이 가는 대상을 바탕으로 여러 사람의 인생과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감탄했다.

 

그리 밝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레몬과도 같은 인생의 달콤씁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나 웃을 수 있는 인생이 아니기에 톡쏘는 달콤함 끝에 씁쓸함이 입안을 감도는 레모네이드처럼 어딘가 슬퍼 보이는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

 

<레몬청 만드는 법>에서는 화자가 대학가의 조그만 태국 식당에서 알바하며 알게 된 손님에 대한 이야기다. 자주 식당을 찾았던 한 커플이었지만 어느 새부터 여자 혼자 와서 레몬차 한 병을 주문한다. 잘근잘근 레몬 조각들을 씹듯, 그는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내는 듯하다. 그렇게 13잔을 비우고 그녀는 사라진다.

 

그녀는 무슨 이유로 이 조그만 태국 식당을 찾아와 혼자서 레몬차 13잔을 마셨던 것일까. 그녀와 항상 함께였던 남자는 어디에 있을까? 화자가 만난 그 여자의 마지막 모습은 눈이 충혈된 채로 이 조그만 식당에서 사람들이 잘 시키지 않는 레몬차를 13잔이나 마시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고 더 사연이 궁금해진다. 화자는 그녀가 떠난 이후, 직접 레몬청 만드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우연히 스치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내가 그에게 더 관심을 두고 그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면 '우리'가 되고 익숙한 사람이 된다.

 

이 책 속 화자에게도 그녀는 분명 알바생과 손님의 신분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낸 사람 중 한 명이다. 일상과 달리 눈이 충혈된 채로 갑자기 레몬차를 한 병이나 주문하는 그녀에게서 당연히 이상함을 느끼고 무엇이 문제임을 궁금해하게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레몬차를 갖다줄 뿐, 그녀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레몬차를 갖다준다. 그녀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그녀를 보내고 그녀가 마셨던 레몬차의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혼자 생각하다가 서서히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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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녀가 떠난 후, 직접 레몬청 만드는 법을 배우는 행동이 그녀에게 건네지 못했던 도움의 손길이나 질문을 던지는 것을 대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레몬청을 만들면서 무심코 레몬 한 조각을 맛보면서 그녀가 그 마지막 하루 동안 씹었을 레몬 조각엔 무엇이 들어있었길래 13잔이나 마셨을까 유추해본다. 나는 그가 그녀에게 어떠한 관심이라도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나를 스쳐 가는 수많은 인연, 사람들과 '우리'가 되는 기회는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 이야기 속 화자처럼 사실 남에게 관심을 두고 실제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무관심이 관심이라는 듯 살아가는데 그러다 보면 지나간 한 명 한 명이 문득 생각나는 밤이 있다.

 

화자가 레몬차를 타 마실 때면 그녀에게 레몬청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처럼, 나도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아쉬움이 담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레몬청 만드는 법>은 내 마음속 깊이 다가왔다.

 

<핑거라임>에서는 의사와 상담자의 신분으로 핑거라임 요법 시술을 환자에게 해주는 의사가 화자로 그가 만난 환자와 거래를 하며 그가 가진 또 다른 세상으로 가게 해주는 귀마개를 얻게 된다. 그가 현실의 소리를 완전히 죽여주는 귀마개를 통해 누구를 만나고 어떤 평화를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도 그 귀마개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왜 그토록 핑거라임과 귀마개를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중심으로 얽혀있는 복잡한 세상을 끊어내고 평화를 맛보고 싶은 현대인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나 또한 핑거라임 요법이나 신비의 귀마개를 통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상담자는 현실과 단절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귀마개를 끼고 기쁨을 잠시 맛보지만, 결국엔 더 큰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래서 결국 핑거라임에 의존하게 되는 것처럼 현실과 연결고리를 끊어내고자 다른 환각제를 하나둘 찾게 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

 

두 가지 이야기는 같은 책으로 묶여있지만 상반된 듯, 닮은 듯 오묘하다. 나는 이 책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좀 더 주변을 바라보며 타인을 우리로 바꾸는 모습과 현실을 끊어내기보다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태도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느낀다.

 

삶에 벽을 하나둘 세워가도 결국엔 내가 내 손으로 무너뜨려야 할 장벽들이라는 것을 느끼며 달콤하지만 씁쓸하고 짜릿한 맛을 전해주는 레몬처럼, 라임처럼 우리 인생도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고자 한다. 가벼운 책이면서도 우리의 삶을 담아내고 있는 책 <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 라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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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청 만드는 법, 핑거라임
- 나는 레몬 조각에 이를 깊이 박았다 -


지은이
김록인 글, 노경무 그림

출판사 : 바다는기다란섬

분야
한국소설

규격
118*177mm, 양장본

쪽 수 : 112쪽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정가 : 11,000원

ISBN
979-11-961389-2-9 (02810)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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