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파편을 그리는 작가, 성립 [사람]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이 폭발했다.
글 입력 2020.07.1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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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왜 이 전시에 온 저 옆 사람이 내 편인 것만 같은지.”


“우리의 많은 선들이 면으로서 함께 읽히길 기도합니다.”


“조각들이기에 이곳저곳에서 반짝일 수 있음을, 어두울수록 더 빛날 수 있음을”


“묵직하고 단조로운 선들이 모여 큰 파도를 이루며 다가오네요,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떤 환경 속에 살고 있던, 우리 모두 닮아있음을 느낍니다.” 

 

 

작가 성립의 개인전 <흩어진 파-편들> 전시장 한쪽 벽면에 부착된 수많은 메모지. 그 크기와 정성에서 느껴지는 장엄함 때문인지 하나의 작품처럼 보인다. 아니, 작품이다. 각기 다양한 자신의 이야기와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글들은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삼십분가량을 서성이게 했다.


왜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그에게 위로를 받고, 고마움을 전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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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은 선으로만 그리는 작가이다. 연필 드로잉, 이를 이용한 영상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주로 인물을 그리는데 그가 그린 인물은 전체가 표현되지 않는다. 망설임 없이 한 번에 그어지는 그의 선에서는 강함이 느껴지기도, 완결되지 않고 흩어지는 탓에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여백이 중요한 그의 그림은 관객에게 여지를 남겨둔다.

 

인스타그램과 출판, 뮤직비디오 등 미디어를 통해 그의 드로잉들이 빠른 속도로 전파된다. 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와 협업을 진행하기도, 드로잉 클래스를 열기도 하며 많은 대중과 소통한다.

 

4.5만 명의 팔로워를 가지며 성공한 예술가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는 작가로서의 생계, 일을 지속하는 것의 어려움, 힘든 시간과 감정들을 솔직하고 여과 없이 써 내려간다. 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질문 칸을 통해 많은 이들의 걱정과 불안과 우울이 모여든다.


그를 지켜보며 성립 작가와 대중과의 ‘소통’의 키가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진 ‘끝없는 불안감’에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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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이 말하는 ‘불안’


 

불안은 익숙해져서 불안하다 

불안이 없어 불안하다 

불안함이 없어 불안하다 따위의 쓸데없는 고민은 참 나를 살아있게 했다 

변하지 않아 불안하지만 분명 난 변하고 있었다 

불안함이 없는 삶은 안일하다


우울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매번 그 높낮이만 달라졌다

나는 매 순간 수십 가지 감정을 함께 느낀다고 생각했다

즐겁지만 하지 않고 행복하지만 하지 않는다

물론 우울하지만도 않다

행복하지만 우울하고 우울하지만 즐겁다

지금은 즐겁지만 우울하고 희망적이지만 절망적이다


그가 말하는 불안과 우울은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이자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는 삶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까?" 자문한다. 작가의 삶이란 그렇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기로 결정하면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 던져진다. 일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언제 일이 끊길지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비어있는 시간을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환멸에 빠지기 쉽다. 환멸은, 내가 열심히 만들어낸 무언가가 좋은 게 아니었을 때, 나아감이 보이지 않고 주변인들과의 괴리감이 느껴질 때 나를 끝없이 잠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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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와 인스타그램


 

이 자기분열적인 불안은 프리랜서라는 직업 특성상 부각되지만 결코 국한되지 않는다.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아우른다.

 

이 세대는 기성세대로부터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꿈을 꾸어야 마땅한 것처럼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하지만 획일화된 수험생활과 입시로 다양성을 증발시켰으며 역대 최고의 대학 입학률과 최악의 청년실업률이라는 현실을 맞이했다. 꿈을 좇아 마땅한 삶은 우리가 처한 현실과 심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동시에 상향 평준화된 이미지는 항상 우리 곁에 있어서 마치 언제든 잡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다. 점점 더 양극화되는 사회라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든 이른바 '핫한' 공간에 가고, 소비로 자신을 드러내며, 라이프 스타일을 전시한다. 일시적이고 환각적인 이미지들이 인스타그램에 넘쳐난다. 부러움과 함께 그런 환각적 이미지에서 너무 멀다고 느껴지면 불안감이 든다.

 

환각의 바다를 배회화다 만난 성립의 공간에는 사각형 피드 너머의 진짜 삶이 있다. 우울과 불안과 행복을 편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적어가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의 전시는 인스타그램 속 이미지가 되며 가고 싶어지는 하나의 '핫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확신하기를 그 공간에 모여든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비록 이미지 소비를 위함이었더라도, 결국 '연결됨'이다.


정지우 문화 평론가는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에서 밀레니엄 세대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이중성'을 주목한다. 우리는 절대적인 정체성을 부여받지 않았다. 상대적인 가치관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서로의 영역을 지키는 개인주의를 당연하게 했지만 동시에 어느 쪽도 답이 아니기에 중심을 잡기 어려운 시소를 탄다. 어딘가 의지하고 싶지만 중심은 나에게 있어야 하기에 쉽게 의지할 수가 없다. 언제나 내재된 불안감, 어딘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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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하나의 파편으로


 

10년간의 입시미술을 했다. 새로운 이상을 좇느라 자퇴도 해봤다. 결국 다시 연필을 잡는다. 어딘가 어려워보이지 않는 이미지들은 나도 가까운 미래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 누군가 무얼 하고 있냐고 물을 때 당당하게 작업을 일로 소개할 수 있을까?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환멸을 견뎌낼 수 있을까? 다른 형태의 이미지들을 욕심내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결정도 쉽게 내릴 수 없는 불안 속에 있다. 불안을 버틴다. 버티다 보면 뭐가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흩어져있는 파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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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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