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댄싱퀸', 아시아와 여성의 교차점 [시각예술]

글 입력 2020.07.0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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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에서 거론하는 동시대 이슈 중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탈경계, 난민, 미디어, 공동체, 젠더 등이 그것이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여성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그것이 여성 미술가의 활약이든, 작품에 내재된 여성주의적 성향이든 간에 이 모든 작품은 여성이라는 하나의 구성틀로 묶을 수 있다. 이에 더해 지금껏 세계 미술사에서 밀려났던 아시아 미술과의 접합점을 찾아,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아시아의 여성 작가들’을 부제로 <댄싱퀸>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10월 11일까지 이어지며 참여 작가는 강서경, 구지윤, 김순기, 김아영, 날리니 말리니, 노부코 와타나베, 니키 리, 량만치, 리나 S. 칼랏, 바티 커, 박세진, 박영숙, 박윤영, 백현주, 부지현, 심래정, 아사미 키요카와, 원성원, 이불, 이승애, 이지현, 이진주, 인시우전, 정강자, 정희성, 제럴딘 하비에르, 좌혜선, 파트리시아 페레즈 에우스타키오, 후마 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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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시우전, <생각>, 2009
옷, 금속, 340 x 510 x 370m
 
 
2층 전시실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인시우전의 <생각>이다. 푸른 섬유로 뒤덮인 거대한 뇌는 전시실 한가운데에서 존재감을 내뿜고 있다. 인시우전의 중국 베이징의 설치예술가이자 조각가로, 그는 사람들이 사용했던 천을 재활용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의 손길이 오고 간 천으로 제작된 거대한 뇌는 각 개개인의 기억을 품고 있는 장소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안쪽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구조로 제작되었으며, 온전히 분리된 공간에서 푸른 천의 안쪽을 바라보면 잠깐이나마 머리 아픈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실제로 들어갈 수 없게 막아 놓은 점은 아쉬우나, 그 안에서 느낄법한 안도감과 위로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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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딘 하비에르, <세계의 무게>, 2013
캔버스에 유채, 레진 페이퍼 마쉐, 레이스
183 x 152 x 91cm
 
 
제럴딘 하비에르의 <세계의 무게>는 오랜 시간 동안 서구 사회에서 그려지는 ‘죽음의 신’의 이미지를 재해석한다. 해골과 검은 망토, 낫을 든 모습은 전형적인 사신의 모습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의 해골은 개의 해골로, 검은 망토는 천으로 짜여진 망토로 대체된다. 그리고 사신이 들고 있는 묵주는 뜨개질된 해골들로 꿰어져 있다.
 
이렇듯 제럴딘 하비에르는 레이스나 자수 등과 같은 공예 요소를 회화나 조각 등의 매체에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이질적인 각기 다른 요소의 혼종은 기존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서구 전통 사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여성 억압의 문제까지도 끌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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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아마릴리스>, 1999
폴리우레탄, 알루미늄, 와이어, 에나멜 코팅
210 x 120 x 180cm
 
 
여성의 신체나 여성을 향한 편견 등을 주제로 작업해 온 이불은 이번 전시에서 <몬스터> 연작의 하나인 <아마릴리스>를 선보인다. 이 작품은 명확한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갑각류나 두족류를 닮아있다. 무어라 규정지을 수 없는 기이한 촉수나 돌기들로 뒤덮인 괴물의 외양에는 여러 유기체의 특성이 한데 뒤섞여 있다.
 
작가가 <몬스터> 연작에서 창조해온 형상들은 인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설계된 것으로 남성중심적 시각 안에서 곡해되어온 여성의 신체가 아닌, 탈경계적이고 무한히 자유로운 인간상을 보여주지만 이와 동시에 기술 문명의 불완전성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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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경, <그랜드마더 타워 #4-1>, 2013-2016
모터, 알루미늄 와이어, 실, 가죽끈, 금속 구조물
132 x 110 x 197cm
 
 
3층 전시실의 한쪽 모서리에 전시된 강서경 작가의 설치작품들은 대부분 <그랜드마더 타워> 연작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작가가 임종을 앞둔 할머니가 벽에 몸을 지탱해 간신히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시작된, 그의 가장 오래된 연작들 중 하나이다.

각 작품들은 버려진 공업용 접시 건조대에 실을 감고 쌓아 올림으로써 완성되는데, 각각의 조형물은 접착제 없이 실이나 천, 가죽 등으로만 서로를 지탱해 하나의 탑을 형성한다.

탑은 무게중심이 안정적으로 잡히지 않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지만 하나의 결과물로서 완성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역할은 ‘중재자’이자 ‘수행자’처럼 느껴진다.

미술과는 동떨어진 듯 보이는 사물과 예술적인 공간 사이의 대립을 완화하며 오브제들 사이의 불균형과 균형 사이를 조화시키고, 지속적인 수행 없이는 금세 휘발되어 버릴 할머니에 대한 감각을 끊임없이 재시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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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 커, <아리오네의 여동생>, 2006
혼합매체, 185.5 x 127 x 76cm
 
 
베티 커는 인도계 영국 출신의 작가로, 영국에서 성장했지만 결혼 이후 인도에서 살면서 서구 사회와 아시아 사이의 다양한 차이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그는 가정이나 집, 성, 사랑 등 페미니즘을 주제로 작업하는데 이번 전시에 출품된 두 작품 중 <아리오네의 여동생>은 쇼핑백을 잔뜩 든 누드의 여성 마네킹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하이힐을 신은 다리는 말굽이 달린 말의 다리이며, 여성의 두상은 외계인과 같고 배와 가슴팍에는 정자 모양이 비늘처럼 다닥다닥 새겨져 있다.
 
작가는 이 모습에 대해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강요당해온 모든 여성들이며 이질적인 모습이 혼재하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벌거벗은 몸이지만 높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쇼핑한 물건을 잔뜩 들고 있는 모습은 타자화된 현대 여성의 스테레오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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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주, <성북구 성북동>, 2014
단채널 비디오, 퍼포먼스, 20분 23초
 
 
특정 집단을 향한 스테레오타입은 백현주의 <성북구 성북동>에서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연기자들을 섭외해 그들이 성북동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에 바탕해 특수한 인물들을 연기한다. 과하게 영단어를 섞어 쓰고 보석을 수집하는 여성, 취미 삼아 꽃꽂이를 하는 여성, 앤틱한 전화기로 여러 사람들과 통화하며 업무를 처리하는 중년 여성이 있으며, 이들을 창 밖 너머에서 지켜보는 관객은 가정부 등의 또 다른 캐릭터로 설정된다.
 
아침 드라마에서 볼 법한 전형적인 말투와 고급스러운 옷차림은 얼핏 ‘성북동’이라는 특수성에 가려져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이들의 대화 또한 그럴싸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후반부에 들어서자 연기자들은 특정 순간의 상황을 계속해서 로봇처럼 반복한다. 이로써 연기자들의 연기와 함께 고착화된 ‘성북동 주민’의 이미지는 점차 붕괴된다.
 
*
 
이번 전시는 아라리오 갤러리 천안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기획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개인전들에 비해 규모가 크고 작품 수가 상당했으므로 전시된 작품들 중 극히 일부만을 소개했으니, 다른 작품들이 궁금하다면 찾아가길 바란다.
 
'아시아의 여성 작가들'이라는 부제 그대로 동시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으며, 그 범위 또한 굵직한 원로작가들부터 활발히 활동하는 중견작가까지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아시아 곳곳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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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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