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독박 돌봄이 주는 지옥, 장녀들

시노다 세츠코의 장녀들을 읽고
글 입력 2020.07.02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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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여자, 뭉크의 절규가 연상되는 표지다. 제목은 장녀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장남에게 시집가면 안 된다는 말을 여자 어른들에게 들어왔다. 장남이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 그 안에는 장남에게 시집가면 그 무게는 모두 며느리가 짊어지게 된다는 섬뜩한 말이 들어있다.

 

난 그 말을 초등학교 때부터 똑바로 이해했다. 우리 엄마는 종갓집에 시집을 가 아빠의 부모며 조부모며 한식이며 명절이며 시도 때도 없이 제사상을 차렸다. 엄마를 돕는 착한 딸로 인정받으며 나도 엄마와 같이 괴로워 해야 했다. 그 괴로움은 어떤 거였냐면, 우리 엄마는 직장을 다니면서 유일하게 쉬는 날을 바쳐 개고생을 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봐오고 식혜를 안치고 나물을 삶고 무치고 사골을 우렸다. 동그랑땡, 꼬지, 동태전 등 각종 전을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부쳤다. 6시 이후에는 청소를 했다. 명절이 죽도록 미웠다.

 

아빠는 밤 하나 깐 걸로 으스댔고 오빠는 아침 일찍 피시방에 가서 밤에 돌아왔다. 내 나이 무려 초등학생이었다. '남자들은 원래 다 그렇다'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방관은 용인됐다. 국이 짜네. 고기가 없네. 하는 말을 듣고 손님들이 돌아간 뒤에서야 밥을 먹을 때 도대체 명절이라는 게 왜 있는 건지, 얼굴도 모르는 아빠의 조상 제사를 왜 엄마와 내가 치러야 되는지,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밥상이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어느 하나 알지 못한 채 증오 가득한 채로 제사를 지냈다. 제일 우스운 건 절을 할 때 여자는 자신이 차린 제사상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구석에 있어야 했다.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직업을 갖고 비혼을 선택하면서 며느리가 해오던 일을 이제는 비혼 여성인 딸이 하게 됐다. 더 이상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착한 며느리가 사라지자, 이제 사회는 아들 낳아야 소용없다고 딸을 낳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곱씹을 수록 섬뜩하다. 소설 『장녀들』에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단편 형식으로 3명의 장녀가 나온다. 그중 두 명은 어머니를 독박돌봄을 하고 있고, 한 명은 독박돌봄에서 도망친 후 죄책감을 느낀다.

 

얼마 전까지 봤던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에서 치매에 걸린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 김혜자는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걸 알자마자 아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자진해서 요양원에 들어간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고 이 소설은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집지키는 딸」의 나오미는 40대 여성이며 독신이다. 나오미의 엄마는 치매에 걸려 혼자 있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요양시설 입원은 차치하고 치료까지 거부하자 결국 21년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24시간 내내 엄마의 수중을 들어준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동생은 시집을 갔다. 엄마는 헛것을 보며 쉴 새 없이 정체불명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데이트하는 남자의 집에 찾아가 불을 지른다.

 

퍼스트레이디」 게이코 역시 비혼 여성이며 30대이다. 게이코의 엄마는 당뇨병에 걸렸다. 이미 당뇨병이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살에 파묻혀 작아진 눈과 두터운 손으로 케이크를 찾는다. 매 끼니 엄마의 식단을 차리는 게이코와 몰래 케이크 한판을 먹어 치우는 엄마의 지긋지긋한 싸움이 의사가 신장 기증 이야기를 할 때까지 계속 된다.

 

엄마는 "누가 신장을 줬으면"이라고 딸에게 말한다. 이 돌봄에서 남자인 동생과 아버지는 제외된다. 게이코는 결국 신장이식을 결심한다. 그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심히 충격적이다. "네 거라면 제일 좋지"라고 말한다. 섬뜩한 스릴러를 보는 것과 같다. 이어서 "너는 내 몸이나 마찬가지니까. 혼자서 낳아 혼자서 키운, 내 일부와 같은 것이니까", "그 아이(동생)에게 이식 같은 얘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닌 몸에 칼을 대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니. 누가 자식한테 그런 짓을 시키고 싶겠니. 앞으로 무슨 병에 걸릴 지도 모르는데." 게이코는 증오를 삼키지 못하고 언덕에서 잡은 휠체어를 잠시 놓았다가 잡고, 엄마는 사람을 죽일 생각이냐며 자신의 착한 딸의 단순 실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게이코는 어머니를 병실에 데려다 놓고 뒤돌아 도망친다.

  

「미션」의 개발도상국의 의료원인 요리코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치고 아버지가 죽은 뒤 문명이 발달되지 못한 곳에서 의료봉사를 한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오빠 가족은 본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아버지는 "네가 시집가면 나는 어쩌냐"며 난로에 등유도 안 넣은 채 얼어붙을 듯 싸늘한 실내에서 깜빡이는 텔레비전의 희미한 불빛을 받으며 그녀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요리코는 아빠를 독박 돌봄 하는 대신 저축한 돈을 털어 모든 비용 지불과 수속을 끝내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의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집에서 수 백개의 파리 사이에 잿빛 시체로 혼자 죽어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내내 아버지의 얼굴이 맴돌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독박 돌봄의 대상이 엄마일 때, 우리는 더 도망치지 못한다. 바로 엄마가 우리를 독박 육아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돌봄에서 도망친다고 한들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여성이 독박을 쓰는 흐름이 반복되고 곳곳에서 지옥이 만들어 진다.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는 게 뭐가 어렵냐고 쉽게 말하는 이들은 욕망만이 남아 있는 육신을 간병하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일 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제 힘으로 아무것도 못하지만 욕구는 있는 사람 옆에서는 사랑도 소용 없다. 더 이상 우리는 모성애를, 여성의 희생을 우월시 여기지 않아야 한다. 희생은 말 그대로 희생이며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보다 사랑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육아든 돌봄이든 이제 우리는 남자를 빼놓고 말해서는 안된다. 여성은 희생하지 않을 것이다. 도망칠 것이다.

 

결국 많은 노인들이 존귀하게 삶을 마무리하지 못하게 된다. 모두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사회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노인 부양은 결코 결혼과 출산장려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나는 꿈을 꿨다. 초등학생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데, 발표 시간은 다가오고 내가 아는 무서운 이야기는 하나도 없으며 노트북이건 핸드폰이건 작동조차 되지 않는,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는 답답한 꿈이었다. 이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알게 됐다. 오로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모두 버리고 몇 십 년을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이야기.

 

옮긴이인 안지나는 이 소설을 통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를 제시한다. "노년의 부모와 비혼 딸이 가족 내에서, 개인과 개인 간 관계속에서만 풀어야 할 문제일까? 사회의 불안과 절망을 해소하는 것은 사회적 과제가 아닌가? 사회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장녀들
-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 -


지은이 : 시노다 세츠코
 
옮긴이 : 안지나

출판사 : 이음

분야
일본 단편소설

규격
135*200

쪽 수 : 340쪽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정가 : 14,800원

ISBN
978-89-93166-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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