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법 - 맨체스터 바이 더 씨, 2017 [영화]

글 입력 2020.06.26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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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7

 

감독 : 케네스 로너건

배우 : 케이시 애플렉, 미셸 윌리엄스, 루카스 헤지스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는 어느 날 형인 ‘조’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맨체스터로 향한다. 하지만 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조는 결국 숨을 거두고, 리는 형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패트릭’과 함께 형의 장례를 치른다. 그러던 어느 날, 리는 형이 자신을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잊고 지내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둘씩 떠올린다.

 

***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조사를 마치고 경관 두 명과 함께 한 남자가 골방에서 나온다. 남자의 얼굴은 창백하다. 눈은 텅 비어있다. 마치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그가 경관에게 달려든다. 총을 뽑는다. 머리에 겨눈다. 딸깍. 이런, 장전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다른 경관들이 달려들어 그를 제압한다. 자신의 팔을 부여잡은 경관들과 함께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남자는 간절하게 외친다.

 

“제발...”

 

제발 나를 좀 죽게 내버려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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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영화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자면 그건 아마도 ‘조’의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가족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하다. 신경질적인 반응이라곤 고작해야 주치의의 말을 잠자코 듣다 ‘리’가 내뱉은 ‘Fuck this'가 전부일 뿐이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리‘와 ’패트릭‘은 영화를 통틀어 각각 딱 한 번씩만 눈물을 흘린다. ’리‘에겐 형의 죽음으로 닥친 이런저런 일들이 귀찮을 뿐이고, 패트릭은 여자친구들과의 관계에만 관심을 쏟는다. 심지어 ’조‘조차도 생전엔 시한부나 다름없는 주치의의 선고 앞에서 그녀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여유를 부렸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죽음’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 자체가 중요한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관심은 오히려 ‘죽음이 삶에 미친 여파’에 있다. 비유하자면 이건 여진에 관한 영화였던 셈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죽음이 가져왔던 상처와 상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그런 이유로 이 영화의 회상-플래시백은 ‘리’는 맨체스터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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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리는 과거의 동선을 현재에서도 똑같이 반복한다. 그런 이유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시간 속에는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과거’와 ‘다시 극복하고자 하는 현재’라는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한다. 과거에 리는 자신의 실수로 발생한 화재 때문에 아이들을 잃었고, 그로 인해 아내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형의 적극적인 도움에도 불구하고, 끝내 상처를 이겨내지 못한 리는 고향인 맨체스터에서 낯선 도시인 퀸시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한편 현재에서는 조의 죽음이 배경으로 자리한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리는 마지못해서이지만 퀸시에서 맨체스터로 돌아오게 된다. 리는 형의 장례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그곳을 떠나려 하지만, 형이 자신을 패트릭의 후계자로 지명한 것 때문에 선뜻 떠나질 못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조는 리를 이 도시에 붙잡아 놓으며, 그가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도우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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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느닷없음의 형태(카오스)로 우리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이 잉태한 상처 역시 느닷없이 터져 나와 사람들을 바닥에 주저앉힌다. 아버지의 장례 내내 무덤덤하던 ‘패트릭’이 냉동실 속에 보관되어 있던 닭고기를 보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듯, 패트릭이 아버지의 배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며 이제 겨우 과거를 극복했다고 믿은 ‘리’가 전 아내와의 갑작스러운 재회 후 무너져 버린 것처럼.

 

상처란 본래 그런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아졌다고 생각하다가도 갑자기 튀어나와 선명한 통증을 남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로, 나름대로의 답을 찾으며(그렇다고 믿으며) 묵묵히 견뎌내야 할 뿐이다. 고로 상처를 마주한다는 건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끝에서 결국 리는 맨체스터를 떠난다. 상처를 마주하려는 그의 시도는 이번에도 실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결말이 곧 베드 엔딩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시 퀸시로 돌아온 리는 원래 살던 집을 떠나 방이 딸린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다. 새로 마련한 방은 어디에 쓰려고 하느냐는 패트릭의 물음에 리는 ‘네가 찾아올 수도 있잖아’라고 대답한다. 과거의 그가 한 줌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면, 현재의 그는 패트릭이라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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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패트릭’은 곧 ‘과거의 리’다. 그는 ‘과거의 리’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을 잃었고 맨체스터를 떠나야 할 수도 있는 상황과 직면한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리’와 달리 맨체스터에 남기를 택한다. 모터가 수명을 다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배를 포기할 것을 권유하는 ‘리’의 말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그와 함께 모터를 새로 마련해 프롤로그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좇아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간다.

 

그러니까 어쩌면 산다는 건, 상처를 끌어안고 나아간다는 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초반부에 보여주었던 패트릭과 리, 조가 함께 보트 위에서 낚시를 하던 행복한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조가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겨진 두 사람은 끝내 망가진 보트를 수리하는데 성공하고, 그것을 몰고 나가 낚시를 즐긴다. 비록 셋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복원할 순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비슷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영영 잃어버린 실낙원을 생각하고 대하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패트릭은 앞으로도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하키를 하고, 아버지의 배를 몰며 계속 살아갈 것이다. 문득문득 상실을 떠올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에디터 이중민.jpg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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