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단하지 않은 사랑의 낯선 포착 - 체호프 ② '사랑' 테마 단편소설 편 [문학]

글 입력 2020.06.2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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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대단하지 않은 사랑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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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메이어 감독의 영화 <갈매기>(2018) 스틸컷


 

우리의 삶은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멋있지 않다. 운명적인 만남도,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버릴 만한 사건도 일생에 한 번 경험할까말까 하고, 삶은 썩 파란만장하지 않다. 체호프는 이러한 ‘진짜 같은’ 인간들의 일상을 포착한다. 체호프가 포착한 삶의 장면 속 인물들 역시 이제껏 있어왔던 수많은 하루들 중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을 살아간다. 가끔 사랑의 열병을 앓기도 하지만, 결코 ‘안나 카레니나'처럼 격정적이지 않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연인들의 고백에도, 체호프는 흥분하여 그들의 사랑에 한껏 다가가 유난을 떨지 않는다.

 

체호프의 소설 속에서 연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무심히 존재해 왔을 풍경 속에 녹아든다. 그는 마치 무엇이 새삼스럽냐는 듯이 무덤덤하게, 멀리서 거리를 두고 이들의 사랑을 그린다. 그들의 사랑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희망찬 앞날을 예견해 주지도 않는다.

 

소설 속에서 체호프가 보여준 사랑을 대하는 무심한 태도에, 어쩌면 그에게 있어 사랑이라는 테마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선입견과는 달리 체호프의 작품들 속에서는 심심찮게 연인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그의 주요 작품들은 특히나 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미지근한 사랑의 온도에도 불구하고, 체호프의 작품에서 사랑과 여성의 테마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항재, 2007: 193) 물론 그의 작품에서 사랑은 더이상 신비롭거나 낭만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이전의 ‘고고한 사랑’들을 일상의 영역으로 데리고 온다. 사랑은 인물들의 삶을 단번에 바꿀 수 있는 드라마틱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찾아온 하나의 신비로서, 그래서 더더욱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들의 일상을 뒤흔든다. 그들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아주 신비하게. 그러나 일상 속에 갑작스레 던져진 이 작은 돌멩이가 언젠가는 파장을 가져올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속에서, 이 대단하지 않은 우리네와 같은 사랑 속에서 ‘체호프 식’으로 던져진 파장과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이토록 미지근하고 일상적인


 

체호프의 사랑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산문적이다. 흔히 사랑이라는 테마를 다루는 많은 소설들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 마치 둘만 존재할 것만 같은 ‘뜨거운’ 사랑을 하는 연인을 마주하게 된다. 대개 그들은 격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하거나, 커다란 장애물이 있어서 어딘가로 도피를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우리와는 조금 다른 격렬한 사랑을 한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하는 사랑이 소설 속에 그대로 들어온다면, 얼마나 추잡하고 찌질하고, 별 볼 일 없겠는가. 적어도 소설 속에 들어오려면 우리보다는 위대한 사랑을 해야만 하지 않을까. 조금 고전적일지라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를 위해 독약 정도는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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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코 제페렐리 감독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1968) 스틸컷

 

 

그러나 체호프의 소설 속에서 사랑은 결코 격정적이라거나,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된다거나 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적어도 사랑을 하는 그 기간동안 인물들의 하루는 온통 열정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을텐데, 체호프는 절대 그 감정들을 ‘드라마틱’한 것으로, 위대한 사랑으로 받아주지를 않는다. 그는 이들의 사랑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다. 이 연인들의 사랑에게 희망찬 미래를 보여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비극적 결말의 조짐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시작해보겠다고 약속하는 그 순간에 “이제야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됐다”는 애매한 말과 함께 작품을 마무리 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속 구로프와 안나는 서로를 운명의 상대라고 느꼈다고 말하지만, 한편으로 체호프는 이들의 사랑이 이전에도 비슷한 것으로 존재했음을, 어쩌면 이들의 사랑은 이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만큼 운명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암시까지 한다.

 

나에게 설령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왔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지금 나의 신경이 온통 그곳에 쏠려있다고 할지라도, 냉정하게도 삶은 이전의 연장선상에서 고요히 계속되고 있으며, 나를 둘러싼 것들은 본래의 자리를 지키며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체호프의 작품들 속에서 인물들에게 찾아온 사랑은 삶이라는 거대한 시간 속에서 일상 속에 위치한 또 하나의 사건이 된다. 체호프는 그것을 함부로 확대하지 않는다. 함부로 “비판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탁한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체호프에겐 이것이 삶과 사랑의 실상이고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항재, 2007: 197)

 

 

 

2. 냉정한 거리두기: 거대한 풍경을 통한 속도 조절


 

우리가 자주 보는 드라마들에서,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 혹은 첫키스를 하는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얼마나 질질 이어지는가. 이미 보여주었던 장면을 굳이 다각도에서 다시 비춰주고, 배경음악까지 깔아주고, 상영시간이 그렇게나 짧은 와중에도 장면 하나에 5분 이상을 할애할 때도 있다. 심지어는 이따금 회를 넘어갈 때도 있다. 그래도 그러려니 한다. 이들의 사랑에 있어 그것은 중요한 장면들이니, 다른 장면들에 비해 차별적으로 길고 독보적으로 세세하다고 해도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체호프는 지극히 무미건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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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영훈 연출의 KBS2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의 한 장면

 

 

체호프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에게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 ‘구로프와 안나의 연애’를 중심 플롯으로 보았을 때, 체호프는 이 플롯에서 중심적인 사건의 진행을 상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둘이 어떻게 만나게 되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그것을 이어나가게 됐는지를 우리는 세세하게 알 수가 없다.

 

그들의 첫 만남. 노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구로프 옆에 안나가 다가오는 것이 고작 한 문장으로 서술된다. 이후 그 순간 안나에 대한 구로프의 ‘추측’이 나머지 문단 전체를 채운다. 이어 구로프가 안나의 슈피츠를 불러, 그들은 대화를 한다. 이어 서로 네 마디 정도의 말이 오고간다. 그리고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체호프는 굳이 구구절절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 식사에서 어떠한 시선이 오고 갔고, 서로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서로 모르는 체 하지만 한껏 상대를 의식하며 어떤 부자연스러운 행동들이 오고 갔는지 등등에 대한 서술은 거의 없다. 식당을 나와 바닷가를 거닐었고, 대화를 나누는 도중 밤이 찾아왔다는 이 중요한 첫만남은 단 세 문장만으로 모두 설명된다.

 

체호프는 이야기의 속도를 높였다가 늘여뜨리기를 반복한다. 작품 속 시간은 별다른 서술 없이 순식간에 몇 주가 지났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시간이 한 순간에 멈춰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문단 이상이 차지되기도 한다. 사건의 서술은 매우 간결하고 빠르게 이루어지는데, 그 사이 어떤 순간들에서 체호프는 이야기를 일시정지시킨다. 그리고 화자의 시선은 구로프와 안나에게서 줌 아웃(zoom out)되어 그들이 머물러 있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단순히 시선을 그들 주위의 공간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 공간으로 확장시키되 여전히 구로프와 안나라는 인물로부터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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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야 무라프스카야(Наталья Муравская)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Дама с собачкой)> 일러스트

 

 

오레안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교회당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말이 없었다. 새벽 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얄따가 보이고, 산 정상에는 흰 구름이 걸려 있었다.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매미들이 울고 있었다. (중략) 바다와 산과 구름과 넓은 하늘이 펼치는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여명을 받아 더욱 아름답고 편안하고 매혹적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와 나란히 앉아, 구로프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안톤 체호프, 2009: 324)

 

 

체호프는 의식적으로 구로프와 안나의 사랑을 먼 거리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그것은 단순히 독자와 인물 간의 거리가 아니라, 얄따라는 거대한 공간에 대비하여 매우 일시적이고 자그마한 피조물임을 바라보게 하여, 세상사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영원의 시공간 속에서 이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찰나에 불과한 것인지를 보게 한다. 이들이 아무리 그 순간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든지간에, 그들이 그 순간 듣고 있는 바닷소리는, 그들이 이후 사랑을 포기하고 설령 아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죽더라 하더라도, 혹은 상황을 해결해나갈 방법을 찾아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더라 하더라도 이와는 전혀 상관없이 ‘완전한 무관심과 변화 없음’으로 끊임없이 울릴 것이다. 냉정한 거리 두기다.

 

 

 

3. 삶의 진실에 던지는 의문, 그리고 여성의 문제


 

사랑에 빠진 체호프의 인물들은 여전히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좀 더 유심히 들여다 보자. 그들을 둘러싼 일상은 그대로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각이 바뀌었다. 타성에 젖어 삶을 살아가던 인물들은, 과연 자신들이 별 불만 없이 살아가던 삶이 ‘진실된 삶’이었는지 의심하게 된다. 새롭게 사랑을 하고 나서야,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마치 이전에 당연히 살아가던 그 삶이 거짓같고, 과연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 의문을 품는다.

 

이 때, 체호프 단편에서 자주 ‘불륜’의 소재가 등장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사랑에 대해 평가를 유보하는 체호프의 태도에서 보여지듯, 흔히 생각하는 신파극이나, 도덕적 잣대가 더해진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을 통해 삶의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 이들 중에, 사랑을 갈구하는 여성 인물 중에 유독 기혼자가 많다는 것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체호프의 여성들’ 중에는 성적 불만에 가득 차있고, 부정을 일삼는 인물들이 많다. (이항재, 2007, 200) <사랑에 관하여>의 ‘안나’, <공포>의 ‘세르게예브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안나’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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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모스크바의 여인(Woman in Moscow), 1912.

 

 

이것은 우선 그 윤리적 문제와는 별개로, 여성들의 욕망에 주목한 적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19세기 러시아 문학에 있어 매우 특징적이다. 기존의 러시아 문학에서 여성은 흔히 신체 부위(발, 다리)에 대한 외적 아름다움, 혹은 “정신의 아름다움과 여성성(모성애, 희생)에 대한 강조” 속에서 대상화된 채로만 등장했다. 그러나 체호프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지배 했던 남성의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 식의 이미지와 단절”한다. (김세일, 2009: 279)

 

체호프는 이 여성들이 가진 개개인의 성적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은 결코 비난하기 위한 부정적 인물로 등장시키는 방법이 아니다. 이 여성들은 새롭게 찾아온 사랑을 경험한 후, 본래 속해 있던 가정을 낯설게 바라본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사랑 없는 결혼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러시아에서 여성들은 지참금을 받기 위해 부모에 의해 10살 차이는 예사고, 몇십 살은 차이나는 남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속 중심 사건을 촉발 시킨 것은 ‘그루셴카’와 결혼하기 위한 3천 루블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한 ‘드미트리’와 ‘표도르’ 사이의 다툼이었다) 그러한 사회에서 여성들의 욕망이나 권리 따위는 당연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한 점에서 체호프가 다루는 ‘사랑’은 당대의 여성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를 고려했을 때, 비록 삶이 전복적으로 바뀌지는 않더라도 기존의 삶에 의문을 품는다는 것이 그 자체로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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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시프 브라즈(Иосиф Браз), 안톤 체호프, 1898.

 

 

체호프는 뚜렷한 메시지를 주는 작가 역시 위대하지만, “더 뛰어난 작가들은 사실적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쓰며, “위대한 예술가는 문제를 제기할 뿐 답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오종우, 2003). 체호프 작품들 속 연인들의 사랑이 얼마나 운명적인 것인지, 그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와 같은 문제는 체호프에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삶을 인식했다는 것에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제까지의 나의 삶이 진실된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의 삶에서 진실된 것은 과연 어떤 것인가.’

  

삶을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 그 인물이 바라본 세상은 그 자체로 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 구로프가 안나를 처음 만나던 순간, 구로프는 “그 여자에겐 어쩐지 애틋한 데가 있어(319)”라며 자신의 삶에 이전에 느끼지 못한 어떤 것이 찾아온 것을 인식한다. 그 인식으로부터 구로프는 자신이 유지해온 삶 전체를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공포>의 ‘세르게예브나’는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음을, 사랑한 적이 없음을 인식하고, 여태껏 살아온 인생을 그제서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나’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체호프는 인물들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 사랑을 호들갑 떨며 응원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단지 이들의 진실이란 것을 흔들어 놓고, 이후의 삶에 대한 주체적인 결정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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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오종우 옮김, 열린책들, 2009.

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 박현섭 옮김, 민음사, 2002.


김세일, 「1880년대 체호프의 창작에 나타나는 여성문제」, 『노어노문학』 21(4), 한국노어노문학회, 2009.

오종우, 「안톤 체홉과 문학의 진실」,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14』, 한국러시아문학회, 2003.

이항재, 「뚜르게네프와 체호프: 사랑의 개념과 여성상을 중심으로」, 『러시아어문학연구논집』 24, 한국러시아문학회, 2007.


 



[장은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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