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악몽일까 환상일까, 알프레드 쿠빈이 그려낸 자화상 [시각예술]

글 입력 2020.06.2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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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쿠빈(Alfred Kubin), 1877~1959

 

 

알프레드 쿠빈은 1977년 라이트 메리츠에서 태어난 체코 태생의 오스트리아 삽화가로, 1898년 독일 뮌헨으로 이주해 1년 후인 1899년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그러나 학업에 집중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고, 당시 독일에서 명성을 얻고 있던 막스 클링거의 동판화 연작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것을 계기로 쿠빈은 자신의 유년 시절의 아픔, 악몽과도 같은 환상적인 내면세계를 표현할 예술적 수단을 고안해낸 뒤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한다.

 

1900년경부터 흑백 에칭 기법을 이용한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들을 창작한 그는, 동시에 뮌헨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미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07년, 쿠빈은 처음으로 책의 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잉크와 펜을 이용한 새로운 기법을 발전시켰다.

 

2년 후, 그는 동료였던 칸딘스키와 프란츠마르크를 주축으로 한 청기사파의 전신인 '신미술가협회'의 조직위원으로 참여해 첫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그는 특히 고야와 뭉크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환상과 환각의 세계, 세계 종말의 음울한 분위기를 독특한 화풍과 기법으로 표현해냈다.

 

 

 

쿠빈과 청기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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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빈이 속했던 청기사파 그룹은 독일 표현주의 사조에 속해있다. 독일 표현주의는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전후에 독일을 중심으로 발흥한 미술운동이다. 고도로 산업화, 도시화됐던 20세기 전후의 유럽 사회는 '인간성의 파괴'라는 위기에 직면해야만 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방황하는 인간 정신을 표명하며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염원하는 표현주의 미술사조가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직시한 채 고통과 가난, 폭력 등을 통찰하려 했다. 따라서 자연을 모방하는 게 아닌, 자아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인 미의 개념을 무시하고 회화의 선이나 형태, 색채 등을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써 사용했다. 그렇게, 뮌헨 신미술가협회에 속해있던 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돼 독일 표현주의의 한 유파로 자리 잡게 된 청기사파는 '푸른 기사'라는 명칭을 띠며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끌어내려 했다.

 

그렇게 청기사파 그룹은 인간 정신의 피폐함과 기계문명에 대한 회의로 내면적인 표현을 강조함으로써 독일의 낭만주의적 심상을 형상화했는데, 그중에서도 괴기스럽고 환상적인 내용을 담은 쿠빈의 화풍은 가히 독특하고 이색적이었다. 특히 쿠빈은 이색적인 그림에 '촛불'을 그려 넣기도 하였는데, 촛불에서 퍼져나오는 잔잔한 빛은 그림의 주제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듯하다.

 

 

 

독일 표현주의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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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19

 

 

북독일의 시골에서 온 칼리가리 박사는 체저레라고 하는 남자에게 최면술을 걸어 예언자라고 하여, 동네를 돌게 한다. 그는 몽유병자인 케사르를 넣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죽음을 예언하고, 그 예언을 적중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결국 그의 정신병자적인 면모가 밝혀진다.

 

 

쿠빈의 촛불 그림을 살펴보기에 앞서, 당대 독일 표현주의의 사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낸 대표적인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는 당시에 인식되었던 빛의 의미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색채가 철저하게 배제된 흑백 영화이므로, 각 장면에서 조명효과는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지배적인 빛으로 공간을 만든 괴기적인 분위기의 세트 장치와 극적인 명암대비를 창조하는 조명, 이로써 선보여진 죽음과 무질서의 상황 등, 독일 낭만주의의 오랜 전통을 포함하고 있는 모습이다. 따라서 영화의 전반에는 표현주의의 특징인 특유의 조명 연출이 돋보이는데, 회색 벽에 비치는 그림자와 명암의 강한 대비, 장식을 단순화하면서 가장자리를 날카롭게 처리하여 빛을 면으로 투영하는 기법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듯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표현주의 실험의 성공적인 완성을 위해 치밀한 조명을 도입하고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효과를 시도함으로써, 가장 핵심적인 요구였던 '빛의 처리'를 형상화하여 인공적인 무대장치와 연극의 효과를 자연스레 구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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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스틸 컷

 

 

영화는 당대 독일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주제로서 다룬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 직후, 경제·사회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폐허가 된 상황이었기에 사람들은 늘 공포와 불안 속에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한 삶을 표명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영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통해, 당시 독일인들의 정서를 드러내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이성과 불안, 혼란 속의 현실을 그 자체로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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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rror, 1902년대(왼) / 무도회의 유령, 1900년대(오)

 

 

영화에서 표현한 독일의 현실처럼, 지금 보는 쿠빈의 그림들 또한 속속들이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나 역시 그림을 마주한 순간, 어둠 속에 휩싸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그를 둘러싸고 있던 혼란스러운 사회와 개인의 상처까지 덧입혀진 결과물이 바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했음을 알고 나니, 화가의 그림은 '알프레드 쿠빈'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 후에 더 빛이나 보였다.

 

또 한편으로는 화가를 단편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 순간이기도 했는데, 더 나아가 쿠빈의 자화상인 촛불 그림에 있어서는 특히 이보다 더한 심리적인 고찰을 부여받았다.


 

 

촛불을 들고 있는 난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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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들고 있는 난쟁이, 1901-02

 

 

앞서 살펴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드러난 독일 표현주의의 사상적인 맥락을 파악한 뒤 쿠빈의 그림을 바라본다면, 빛의 의미가 보다 명확히 다가온다. 쿠빈의 회화에 나타난 빛의 의미는 상징적인 환상을 부각해 보이는 빛으로서 환상적이고 음울하지만, 종래에 볼 수 없었던 심리적 묘사의 표현양식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빛은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자아, 내면세계를 표출해주는 조명의 요소로 이용되기에, 알프레드 쿠빈의 회화에서의 '빛'은 강렬하고 불안정한 느낌의 표현주의 양식을 돋보이게 해준다. 더하여 비현실적인 세계와 인간의 내면을 대변하는 빛은 쿠빈의 억압된 심리를 극대화해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을 부각한다.

 

비록 화풍의 전반은 기괴하고 잔혹동화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가 처했던 현실은 그림보다 더 비참하고 아팠을 것이다. 쿠빈의 그림은 자극적인 이미지들의 강렬함이 주를 이루는데, 사실 그 안에는 여리고 상처 입은 한 인간의 나약함만이 자리해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당대의 사람들은 그의 잔혹한 환상을 표현해낸 그림으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강렬한 겉모습, 그와 반대되는 내면의 상반된 구조가 한 화폭에 공존해있기에 알프레드 쿠빈의 그림은 아직도 미술사에 있어 의미 있는 방향으로 서술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1901-02년 작, <촛불을 들고 있는 난쟁이>는 그의 대표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배경의 묘사도 없고 색도 화려하거나 다양하지 않은 이 그림은 나를 집중하게끔 했고, 보면 볼수록 신비한 매력이 있으면서도 잔잔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앞서 말한 상반된 구조의 공존이 명확히 담겼기에,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인 듯하다.

 

쿠빈의 자화상이라 칭해지는 이 그림에서의 촛불은 그의 불안한 심리와 동시에 유일한 빛이라는 신념과 희망의 암시가 함께 드러난다. 마냥 어둡고 흑백에 가까운 치장을 한, 어른인지 아이인지에 대한 파악도 불가능할 정도의 두 속성을 함께 지닌 한 사람의 모습은 촛불에만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는 듯 그것에만 눈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한 발자국을 내딛는 발걸음 또한 무척이나 조심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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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와중에도 의지할 곳이 있기에 심리적인 불안감을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그림 속의 사람을 보며 쿠빈의 자화상이기도 하지만, 곧 모든 이들의 자화상 같기도 했다. 비록 살아간 시대는 천차만별일뿐더러 각자가 처한 상황과 개인사도 모두 다르겠지만, 불안함을 내포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려는 모습은 같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쿠빈의 회화는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미묘한 감정의 울림을 준다. 여러 철학자가 말했듯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그런 감정을 필수적으로 가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쿠빈은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 트라우마로 얼룩진 내면의 심리를 드러냈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을 담아낸 듯했다.

 

그러면서 인생의 종착점에 놓인 행복을 위해 나아가는 인고의 과정이란 걸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며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달리, 그림을 보면 볼수록 그러한 의미가 더 깊이 새겨졌고 마음속에서 오랜 시간 남아있을 것 같아 힘들고 지쳤을 때 다시금 꺼내 보고 싶은 그림이라 정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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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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