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릴라는 3월이면, 열여섯의 나이에 남편을 얻고 1년이 지나 열일곱이 되면 아들을 낳고, 또 아들을 낳고, 그 후로도 줄줄이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내 자신이 의미한 그림자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절망했다. 울음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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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라의 결혼 소식을 들은 레누의 심정이다. 선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가장 친한 친구인 릴라는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의 삶보다 릴라의 삶이 더 우월할 것이라고 확신을 한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와 레누의 일생에 거친 우정 이야기,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의 첫 번째 책으로, 여기에는 유년기와 사춘기를 다룬다. 1950년대 배경으로, 두 여자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가난한 집에서 자란다. 릴라는 구두수선공의 딸이고 레누는 시청 수위의 딸이다. 릴라는 마르고 똘똘하고 강인한 아이인 반면, 레누는 통통하고 성실하고 조용한 모범생이다. 릴라는 중고등학교를 포기한 반면, 레누는 계속 학교를 다니며 공부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럼에도 릴라는 똑똑하기 때문에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독학하며 레누와 함께 공부한다.
어떻게 보면, 릴라는 가난한 집안 탓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에 레누를 질투할 것 같았다. 그리고 레누는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길 것만 같아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레누는 릴라에 대해 열등감을 갖고 있으며 노력에 비해 비범한 릴라를 보면서 자신이 가고 있는 면학의 길이 무의미하다고까지 한다.
게다가 레누는 성적이 좋아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데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나를 칭찬하기는 했지만 마지못해 하시는 것 같았다’라며 스스로를 낮춘다. 그녀의 모습을 보아하니 마치 어렸을 적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칭찬을 받아도, “내가 불쌍한가?” 라고 그 칭찬을 부정하곤 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가장 친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녀는 이혼가정에서 가난하게 자란 친구였다. 상대적으로 높은 성적과 해외 경험이 많은 나는 은근히 우월감에 살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못 누리던 그녀를 질투했었다. 그녀는 내가 따라잡으려고 해도 도저히 잡히지 못한 점들이 있다.
그녀는 내가 갖지 못하는 화려한 외모, ‘잘난’ 이성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그리고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는데도 갖고 있는 높은 이해력과 독해력, 그리고 나의 장황한 고민을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있는 포용력이 있다. 그녀는 고가의 호텔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본 적이 있다는 소식에 나는 ‘너만큼은 그런 결혼을 하지 않길’ 내심 바라는 내 자신을 보니 스스로 놀랐다.
친한 친구에 대해 ‘그녀가 참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가 더 잘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누구나 마음 깊이 갖고 있는 인간의 본능인 것일까?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녀를 동경하는 것 만큼 그녀도 나를 질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450여 페이지의 장편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를 단숨에 읽을 만큼 레누의 심리묘사가 섬세하고 긴장이 가득한 호흡이 빠른 책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앞으로 2, 3, 4권에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고 성장하는지 궁금하다.
‘나폴리 4부작’ 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는 전 세계 인기를 휩쓸면서 HBO가 제작하게 되었다. HBO가 이탈리아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한 첫 번째 외국어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더욱 더 화제다. 왓챠플레이는 지난 4월 29일 시즌1~2를 공개하여 시즌1은 2018년 11월에 방송했으며 시즌 2는 올해 2월에 제작 방송했다. <나의 눈부신 친구>는 시즌 당 8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러닝타임은 약 55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