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주변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 -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도서]

글 입력 2020.06.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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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9월, 국내에서 새벽 배송 1등 업체로 평가받는 ‘마켓컬리’가 ‘올 페이퍼 챌린지’를 시작했다. 이름 그대로 상품 포장에 사용되는 모든 포장재를 100%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로 전환하는 친환경 프로젝트다. 냉동 제품 포장에 사용되는 스티로폼 박스는 친환경 종이 박스로, 비닐 완충 포장재는 종이 완충 포장재로, 비닐 파우치와 지퍼백은 종이 파우치로, 박스테이프는 종이테이프로 바꾸는 등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비닐 사용을 최소화하였다.

  

이를 위해 김슬아 대표와 마켓컬리의 직원들은 1년을 열 개가 넘는 절기로 나누어 각각의 포장 법을 달리 연구하고, 하루 동안에도 발생할 온도별·시간별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103회의 실험과 1550여 회에 달하는 모니터링을 거치는 등 무려 1만 시간 이상의 노력을 쏟아부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종이 포장재를 개발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마켓컬리는 기존 사용량 기준, 연간 750톤의 비닐과 2130톤의 스티로폼 감축 효과를 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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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아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다. 단순히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마켓 컬리는 포장과 배송에 막대한 비용을 쏟기로 유명하다. 올 페이퍼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그 비용은 더욱 증가했다. 작년 한 해 마켓컬리가 포장에 사용한 비용은 무려 503억 원으로, 이는 2018년에 비해 194%가 늘어난 수치다. 이윤의 창출을 최대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경영활동 치고 마켓컬리의 이러한 행보는 다소 의아하다. 안 그래도 마켓컬리 안팎에서는 재무구조에 대해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마켓컬리가 올 페이퍼 챌린지를 시작한 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서울대 김난도 교수와의 대담에서 그 물음에 김슬아 대표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의 존재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면 안 되니까요. 소비자가 원한 것도 있지만, 환경에 대한 고민은 생산자 입장에서도 피부로 느껴지던 것이었습니다. 한 해가 다르게 농사짓기가 힘들어지고 특정 작물은 아예 우리나라에서 기를 수가 없을 만큼 기후변화가 심해졌습니다. 즉, 더 많은 비료와 농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더 이상 작물을 기르지 못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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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중국의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처음 발견된 코로나19는 2020년 6월 현재, 전 세계를 휩쓸며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며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의 원인에 대해 다양한 가설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돌연변이 바이러스를 보유한 박쥐, 뱀, 천산갑 등을 불법적으로 거래하는 과정에서 감염이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말하자면 환경에 대한 무지와 파괴가 오늘날 코로나19 사태를 불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 이후,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중국 정부에 야생동물 거래의 전면적인 금지를 촉구했다고 한다.

 

환경 오염, 혹은 환경 파괴로 인한 문제는 코로나19뿐만이 아니다. 지구온난화,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 사라지는 빙하, 파괴되는 생태계, 사막화 현상 등 이미 예전부터 꾸준히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봄이 되면 하늘을 뿌옇게 만들었던 황사는 이제는 미세먼지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우리나라의 고유 특징이었던 사계절의 경계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해 정부에서는 갈수록 심해지는 폭염을 아예 재난 상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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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환경부


 

바야흐로 필환경시대다. 이젠 환경보호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세상이다. 2018년 전 세계 폐기물의 50%를 수입하던 중국이 플라스틱, 폐지 등 재활용품 24종의 수입 중지를 선언했다. 이 영향으로 서울과 경기도의 일부 재활용 업체들이 낮은 수익성을 이유로 비닐과 스티로폼 등의 수거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덕분에 주요 아파트에서는 일명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 ‘쓰레기를 어떻게 배출하고 처리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졌다. 환경부에서도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제한,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 등 생활 쏙 쓰레기 발생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한편 기업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과거엔 기업 이미지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환경과 관련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면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환경 관련 CSR을 진행한다.

 

앞서 말한 마켓컬리가 대표적인 예시다. 2014년 창업한 마켓컬리는 건강하고 신선한 식재료를 소비자의 문 앞까지 배달하는 것을 목표로 전날 주문한 식재료를 새벽에 배송해주는 샛별배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쇼핑할 시간은 없고, 하지만 가족들에게 좋은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은 워킹맘들이 유용하게 마켓컬리를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까다로운 그들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마켓컬리는 신선하고 건강한 식재료를 확보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농사가 어려워지고, 나아가 재배가 불가능한 작물들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마켓컬리로서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농사가 어려워지니 더 많은 농약과 비료를 투입할 수밖에 없고, 이는 재료가 가진 본질적인 건강함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작물이 재배 가능한 지역이 줄어들면, 이를 공급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운송거리를 감수해야 한다. 수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식재료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지는 것은 둘째 치고, 재료의 신선함도 담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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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마켓컬리가 추구해오던 가치들이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켓컬리의 올 페이퍼 챌린지는 단순히 환경 보호의 차원을 넘어 다가올 미래에도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투자의 일종이었던 셈이다.

 

필환경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노력은 비단 마켓컬리만의 것은 아니다. 특히 의류업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세계 섬유 산업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12억 톤이라고 추정한다. 세계적인 환경 평가 수행 기관인 ‘콴티스(Quantis International)’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에 의류 산업과 신발 산업이 배출한 온실가스의 양은 약 40억 톤으로, 전 세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8%를 차지한다고 한다.

 

스웨덴의 의류 브랜드인 ‘H&M’은 재활용 플라스틱 등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든 친환경 의류제품인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을 2012년부터 꾸준히 선을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헌 옷 수거 프로그램을 전 세계에서 진행하고, 세계적인 환경단체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등 에코 관련 CSR에 열정적이다. 2035년까지 자사에서 생산하는 의류의 35%를 재활용 소재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포부도 밝혔다.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 페이스’도 페트병 약 370만 개를 재활용한 ‘에코 플리WM 컬렉션’과 페트병 리사이클링 원단과 천연 울 소재 등을 적용한 친환경 신발과 페트병 리사이클링 원단을 적용한 ‘에코티 컬레션’ 등을 출시하며 플라스틱 재활용의 긍정적 가치 전파했다.

 

국내 기업도 뒤지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효성티앤씨가 제주도와 협약을 맺어 제주도에서 수거되는 페트병을 가지고 리사이클 섬유인 ‘리젠 제주’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애슬레서 브랜드 ‘안다르’는 지난 5월, 500ml 페트병으로 만든 리사이클링 원단을 적용한 에어사이클 티셔츠를 선보였다. 친환경 섬유인 텐셀을 생산하는 렌징 코리아와 함께 지속가능한 컬렉션 출시 계획을 밝히는 등 환경까지 생각하는 기업으로서 행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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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르 에어사이클

 

 

한편 이렇듯 수많은 기업들이 에코 관련 CSR을 진행하는 와중에, 아예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제품을 제발 사지 말아 달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이본 쉬나드’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덕분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활동으로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매를 훈련시키는 ‘팔콘리 클럽’에 소속되어 활동했는데, 그곳에서 한 등반가를 만나 그에게 레펠링을 배우며 암벽 활동에 푹 빠지게 된다. 이후 암벽 등반가로 활동하던 이본 쉬나드는 등반 장비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사업을 의류 분야로 확대하면서 1973년 ‘파타고니아’를 설립하였다.

 

이본 쉬나드는 등산 장비를 만드는 사업을 하던 초기,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피톤이 바위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알루미늄 초크로 제품을 변경했다. 바로 이것이 그가 환경보호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철학은 파타고니아까지 내려와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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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파타고니아는 돈을 벌기 위해, 이윤을 내기 위해 사업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업을 이용하고, 자원을 투자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때로는 상상력을 활용한다. 파타고니아는 이러한 자신들의 철학을 ‘알피니즘’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파타고니아의 제품들은 단순한 옷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파타고니아의 고객들은 파타고니아의 옷을 입고 자연 속에서 모험을 즐기며 특별한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파타고니아의 옷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개인의 영광적인 순간을 성취한다.

 

하지만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이 ‘알피니즘’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는 사람들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 자꾸만 줄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지구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파타고니아에겐 존재 자체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파타고니아가 자신의 고객들에게 ‘제발 우리 제품을 사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이유다. 매년 자사 매출의 1%를 환경 보호를 위해 기부하는 이유다. 옷을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고, 직원들을 교육하고, 옷을 물려 입은 경험을 공유하는 원 웨어 캠페인 등을 통해 소비자와 브랜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공유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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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당시, 파타고니아는 다음의 광고 사진을 실었다. 파타고니아는 이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다른 브랜드와 달리, 재킷을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로 다음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재킷을 만들려면 목화 생산에 물 135리터가 필요하다. 이는 45명이 하루 3컵씩 마실 수 있는 양이다. 둘째, 이 제품의 60%는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생산됐지만 이 과정에서 20파운드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다. 이는 완제품 무게의 24배나 되는 양이다. 셋째, 이 제품을 아무리 오래 입다가 버린다고 해도 완성품의 2/3만큼의 쓰레기가 남는다.

 

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는 자신의 책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큰 회사가 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 우리는 최고의 회사가 되기를 원하며, 최고의 대기업보다는 최고의 작은 회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제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다른 부분의 성장을 위해서 회사 한 부분의 성장이 희생될 수 있다. 이런 ‘실험’의 한계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그 한계 밖으로 빨리 확장해 나갈수록 우리가 원하는 유형의 회사는 더 빨리 사라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그 한계에 맞추어 사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성장 중독자’들이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에 따르면 직장인 81.1%가 자기계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하듯 벌써 몇 년째 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 항목은 자기 계발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주 52시간제, 워라밸 트렌드도 비슷한 이유를 가졌다.

 

이렇듯 요즘은 자신의 꿈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로 추앙받는다. 한편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와 <코코>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묵직하고도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가족의 화합을 위해 화산이 폭발하길 바라는 소년. 성공을 위해 하나뿐인 파트너에게 독약을 먹인 가수. 꿈을 꾸는 건 모두에게 허락된 평등한 권리지만, 꿈을 이루는 것까지 평등하진 않다. 꿈을 이룬 누군가가 있다면,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한 누군가도 반드시 존재한다. 나의 꿈과 타인의 꿈이 맺는 기묘하고도 오묘한 관계. 바로 이것이 꿈이라는 아름다운 목표 뒤로도 끝내 감출 수 없었던 불편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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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파타고니아’가 기업 활동을 통해 이야기하는 건, ‘이본 쉬나드’가 자신의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건 단순한 성공과 성장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건 더불어 사는 삶이다. 이를 통한 더 나은 세상이다.

 

나 하나의 맹목적인 성공을 쫓는 성장은 도리어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진정한 성장을 하고 싶다면 오히려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바로 이게 오늘날 수많은 기업들이, 브랜드들이 필환경 시대에 에코 관련 CSR을 시도하는 이유다. 더불어 산다는 것. 그것은 더 이상 성공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는 도덕적인 선택 따위가 아니다. 필수다.

 

 

[이중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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