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여성의 목소리로 외치는 작가, 바바라 크루거

글 입력 2020.06.1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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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기고를 통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평소 내가 지녀온 미의식과 연관 지어 조형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만든 작가를 꼽아야 할지, 혹은 보다 폭넓은 차원에서 미적인 작품을 꼽아야할지 망설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가장 나의 작업관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미술과 사회에 유의미하고 조형성이 있는 작품을 만든 작가로 선정하게 되었다.

 

내가 선정한 작가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미술 작가이자, 개념미술과 설치미술가로 손꼽히는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1945~,미국)이다. 나에게 바바라 크루거가 큰 감동이자 여러방면에서 지표가 되어준 이유는 크게 3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맥락의 작품으로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환기했다.

둘째, 상업 디자인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전개했다.

셋째, 사회 경험과 우여곡절을 겪었던 여성작가로서 지금의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무엇보다 미술사조에 기록된 유명 작가의 작품들을 한국에서 실제로 만나볼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 지난 2019년 6월부터 12월까지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에서 직접 감상하며 무척 강한 인상을 받았기에,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전시 작품들과 함께 소개하고자 한다.


 

1. 대중을 대변하는 목소리 : 쉽게 읽을 수 있는 시의적인 메시지

 

1980년대 초기 콜라주 시리즈부터 대형 설치와 영상작업을 포함한 43점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카이브 룸에서 관람할 수 있던 작가의 삶과 작업관을 소개하는 한 편의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바바라 크루거는 자신이 어릴 적 갤러리에서 느낀 압박감을 솔직하게 언급하며 어떤 의미의 작품인지, 작가가 어째서 이 재료를 사용했는지 알기 쉽지 않은 작품들 앞에서 느낀 부담을 고백한다. 반드시 갤러리에 걸려있는 캔버스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감상하고 어울릴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스케이트장 전체를 래핑하는 식으로 다양한 실험을 한 것을 소개하는데, 이리저리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스케이터들의 모습이 갤러리와 대중의 공공장소를 오가는 작가의 모습처럼 느껴져 무척 통쾌했다.

 

텍스트를 강조한 개념미술 작업방식은 다양한 국가에 전시될 때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됨으로서 작가의 대중친화적인 성향을 크게 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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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크루거는 소비지상주의와 욕망에 대한 환기와 사회비판을 하고자 ’Plenty should be enough‘라는 문구를 작업에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다. 이 슬로건이 한국에서는 ’충분하면 만족하라‘는 문구로 번역되었다. 특히 ‘제발 웃어, 제발 울어’는 영문 텍스트 없이 한글로만 이루어진 작품으로 고립과 정서 억압에 대한 메시지를 강력하게 표출한다. 작가가 텍스트로 담는 주제들은 주로 젠더와 계급문제,소비사회,대중매체 속 권력과 욕망 등으로 대다수가 80년에 만들어진 작품임에도 그 문제의식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시의성을 가진다.

 


2. 매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 : 상업디자인과 순수예술 사이에서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가장 나를 괴롭혔던 것은 ‘상업 미술과 순수미술은 공존할 수 없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평소 회화와 일러스트,디자인을 모두 할 수 있을만한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수업을 듣다보면 늘 그것이 근본적으로 구분되며 절대 함께할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수미술은 작가로부터 나오는 창작인데, 상업미술은 소비자나 대중의 니즈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그 시작점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게도 바바라 크루거는 현대미술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순수미술작가임과 동시에 잡지사 에디터이자 디자이너였고, 아트디렉터였다.

 

바바라 크루거의 이력 중 가장 특이한 것은 ‘마드모아제’ 매거진에 세컨드 디자이너로 입사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리드 디자이너로 승진한 것이다. 잡지 편집디자이너로 일하기 전 콘데 나스트 출판사에 디자이너로 취업했던 경력이 밑받침이 된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이 이력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양식과 방법론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잡지는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요구된다. 바바라 크루거는 디자인한 지면을 통해 대중매체로서의 메시지 전달에 많은 시간을 들였고, 텍스트와 이미지를 조합해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연구를 다양한 직업과 커리어에서 해온 것이다. 개념미술에서 중요한 텍스트와 언어자체의 힘이 유독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작가가 디자인 실무를 통해 주목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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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애용하는 폰트인 헬베티카(Helvetica)체는 대표적인 산세리프(sans serif)폰트이자 많은 디자이너들이 애용하는 글꼴이다. 산세리프의 불어 ‘sans’는 ‘with out’라는 의미로, 서양문자의 삐침을 일컫는 ‘serif’가 없다는 뜻이다. 산세리프 체 특유의 강한 명시성과 부피감을 강조하고, 폰트 패밀리가 다양해 기울이거나 늘리는 등의 편집이 용이한 것이 이 서체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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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바바라 크루거의 모든 작품엔 헬베티카 서체가 쓰였는데, ‘눈에 잘 보이도록 전시’하는 주목성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자인에 있어 주목성이 강한 폰트는 순수미술에 있어 메시지를 강조하는 개념이 되었다. [그림 1]은 작가가 오랫동안 작품을 기고해온 영국 잡지 ‘Dazed and Confused’에 실린 1996년 작업인데, 상업 패션지에 작품이 실렸다는 것에서 상업미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완벽하게 허문 선례라고 느꼈다.

 

바바라 크루거는 잡지사에서 일하면서도 누군가의 소비를 촉구하는 잡지라는 대중매체와 소비사회에 대해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림 2]의 ‘Face it’이라는 작품엔 브랜드 상표 대신 ‘이 값비싼 옷은 당신을 부유하거나 아름답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적었다. 잡지매체의 양식을 차용하면서도, 언어로서 시의성 있는 비판을 한다는 점에서 개념미술의 성향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다양한 매체에 대한 연구와 실험은 매체와 공간을 막론하고 적극적으로 전개 되었다. [그림 3]은 4개의 벽면 전체에 영상이 랜덤으로 이어지며 상영된 전시 공간 중 일부의 이미지로, 서라운드 스피커와 4면의 화면 때문에 관람자가 소리가 들리고 이미지가 보이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도록 한다. 이것은 미디어에 영향을 받고 이끌리며 사는 인간의 삶을 은유하는 작품이자, 작가가 프린트 이외의 매체로도 동일한 맥락의 작업을 전개했음을 알게한다.

 

 

3. 80년대에서 외쳐온 페미니즘 미술 : 여성에게 전하는 소통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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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바바라 크루거의 행보를 응원하고 따르고 싶어하는 이유는, 작가가 페미니즘 이슈를 자신이 사회에 던지고 싶어하는 메시지 중 가장 큰 데시벨로 외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시의 이름이기도 했던 ‘Forever’와 동명인 이 작품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자기만의 방」에서 발췌한 문장을 담고 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여성은 남성의 모습을 원래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마력을 가진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는 문장은 대형 전사지에 출력되어 거대한 공간 전체에서 천장을 제외한 앞뒤좌우와 바닥까지 래핑되어 있다. ‘YOU.’라고 적힌 곳 앞에 서면 머리가 문장 전체의 중간까지도 못 미친다. 이 압도적인 공간에 있다 보면 작가가 ‘갤러리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싫어서’ 대중을 위한 작업을 하게 되었던 것과 기묘한 대치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백색소음만 존재하는 화이트 큐브에 단지 흑백의 텍스트들이 지나갈 뿐인데, 서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온몸에 와 닿는 느낌이 든다.

 

나는 바바라 크루거의 메시지가 누군가에는 고압적일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청으로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제발 울어,제발 웃어’가 청유로 시작해 명령으로 끝나는 것처럼. 누군가는 이 텍스트를 불편한 소음처럼 느끼겠지만, 누군가에겐 수 세기 여성들이 겪어온 삶을 대변하는 강력한 구호이자 작가가 여성들에게 남기는 소통이 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바바라 크루거의 이력만 보고 편집 디자인에 탁월한 재능이 있던 사람으로 여기지만, 아카이브 룸에 고스란히 남겨져있던 작가의 삶은 너무나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었다. 작가가 태어난 뉴저지는 미술 교육을 하기에 유리한 지역이 아니었고, 80년대에 여성들은 전업주부를 제외하곤 자신의 적성과 재능을 살린 직업을 갖지 못했다.

 

작가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 들어가 처음으로 직업여성이었던 다이안 아버스를 만나게 되는데, 사진작가이자 대학교수였던 다이안 아버스는 우리가 잘 알고있는 보그,하퍼스 바자 등의 유명 잡지사에서 사진가로 활동하는 작가였다. 나는 종종 ‘유리한 환경적 조건이 없는 아시안 여성이 작가로 생존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하곤 하는데, 바바라 크루거가 청구서 발행 업무나 전화 교환원 같은 미술과 무관한 일을 하며 돈을 벌다가 배움의 터에서 다이안 아버스를 만났을 때 얼마나 큰 자신감을 느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페미니즘 담론에서 여성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삶을 통해 영향을 주고 발전시키는 것을 임파워링(Empowering)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바바라 크루거는 다이안 아버스에게 큰 임파워링을 느꼈으리라.


바바라 크루거에 대해 알아보고 정리하며 내가 작가에게 영감을 받고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인생관과 작업관에 있어서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대중이 쉽게 의미를 읽을 수 있고 전시를 편하게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은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과 실험,‘여성으로서 작업을 해나가는 삶’ 이 3가지를 바바라 크루거의 삶 전체에서 꾸준히 외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작가의 강한 뉘앙스의 작품 앞에서도 묘한 벅참과 감동을 느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게 있어 바바라 크루거가 ‘다이안 아버스’의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어떤 작가가 되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무척 고민이 많았는데, 작가의 삶을 조사하며 그 답의 힌트를 얻은 것 같다. 

 

 

[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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